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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지금은 압축갈등 분출 시대 … 통합 디딤돌 역할에 최선

최정동 기자
정치인 한광옥(72)은 18대 대선을 70여 일 앞에 둔 2012년 10월 5일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맡았고, 새천년민주당 대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던 그였기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에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만들어진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호남 출신이자 범민주당 계열의 핵심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그만한 적임자를 찾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7월에 출범한 대통합위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묻는 ‘국민대토론회’를 열어왔고,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도 해왔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지난 11일 한 위원장을 만나 그동안의 활동 내용과 지금 한국 사회의 갈등과 균열에 대한 처방을 물었다. 그는 “사회적 통합 없이는 경제발전, 정치적 안정을 바랄 수 없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소통과 상생의 사회를 위해 ‘통합의 디딤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다.

 -대통합위 위원장으로 1년 반 정도 일했다. 잘해왔다고 자평하나.
 “1997년 외환위기 시절에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대 의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통합·화합·조정에 나름 전문가라고 생각했는데, 국민대통합은 훨씬 규모가 큰 일이기 때문에 강가에서 바다로 온 느낌이다. 정부·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종교단체 등 사회 각계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통합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끼나.
 “이제 통합 없이는 경제발전, 정치적 안정, 나아가 문화·예술 발전도 어려운 시대가 됐다. 해방 이후 60년 가까이의 세월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도입했지만 민주주의에 이르는 과정은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압축 성장’에 따른 ‘압축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성장의 성과로 갈등을 덮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통합은 은근히 데워지는 구들장 같아”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합위를 만들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여파 등으로 사회적 통합이 더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통합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갈등도 많다. 그래서 통합이 더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단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통합의 디딤돌’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통합의 인프라’를 바닥에 까는 게 중요하다. 통합의 효과는 ‘구들장’과 같은 것이다. 데우기가 어렵지만 한번 데워지면 온기가 오래간다.”

 -‘통합의 인프라’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명박 정부 때 사회통합위원회가 있었다. 그런데 종합계획, 즉 로드맵이 없었다. 기차가 움직일 레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속도가 늦더라도 민관이 협력해 종합계획을 만드는 데 힘썼다. 대통합위 출범 1년 만인 올해 7월 완성했다.”

 -신한울원전 건설 협상이 성사되는 데 대통합위가 막후에서 중재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제일 큰 문제가 협상 상대에 대한 불신이었다. 원전 측과 주민의 대화가 10여 년간 없었다. 우리가 대화의 통로 역할을 했다. 꾸준한 대화로 주민들이 우리를 믿도록 했다. 우리는 약속이 잘 이행되는지 지켜보는 일도 할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국회·정부의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세월호 사건으로 더욱 그런 여론이 커졌다.
 “세월호 사건은 특정인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문제다.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것, 오랜 기간 쌓여온 폐단이 만든 일이다. 요즘의 정치인들이 대화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상대가 적이 아니라 경쟁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지역·이념·계층 간의 갈등 이외에 세대 간의 균열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이에 대한 대책은.
  “고령화와 젊은이 일자리 부족이라는 두 가지 현상은 구조적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다. 우선은 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정교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젊은 층과 기성세대의 대화 단절도 심각하다. 이런 현실을 바꿔보자는 뜻에서 우리는 지난 가을 다섯 차례에 걸쳐 실시한 국민대토론회에 고교생들을 참여시켰다.”

“땅콩 회항은 타인 배려·존중의 문제”
-대통합위의 국민 설문조사에서 ‘상생’이 최고의 미래 가치로 꼽혔다. 어떻게 해석하나.
 “빈부격차와 차별의 해소를 바라고, 계층 이동을 막는 장벽이 높지 않은 사회를 바란다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복지 사회로 가는 길을 원하는 것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복지 국가는 국가의 재정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서로의 양보와 이해가 필요하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을 통합과 상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특정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좀 더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

 -지난 대선 선거운동 때 박근혜 대통령 지지 선언을 했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많았다. ‘변절’이라고 비판한 정치인도 있었다.
 “평생에 두 차례의 중대 결단이 있었다. 초선 의원 시절인 82년 10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광주항쟁 진상 조사, 김대중 석방, 대통령 직선제 등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였다. 그리고 정확히 30년 뒤인 2012년 10월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당시 안철수·박근혜·문재인 후보 중에서 박 후보가 나라를 가장 잘 이끌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지지율은 안 후보가 박 후보보다 높았다.”

 -요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대선 득표율보다 10%포인트 정도 낮다. 실망하는 국민이 많다는 뜻이다. 오늘이 2012년 10월 5일이라고 가정해도 역시 지지 선언을 하겠는가.
 “그렇다. 나의 선택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5년 임기 중에서 이제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나라종금 사건, 중수부서 억지 수사”
-통합·타협에 원래 소질이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많았다. 고등학교(중동고) 때 선거에서 학생 대대장으로 뽑혔고, 대학(서울대 영문과)에서는 학생 운동에 앞장섰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다 보니 성격이 둥글어졌다. 대화하는 것이 몸에 익었다.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받아들여 큰 물을 이룬다는 뜻)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른바 ‘나라종금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정치인으로서 뼈아픈 대목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으나 기각 결정이 났다. 억울한 수사와 판결이었다고 생각하나(그는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에 나라종금 측에서 퇴출 저지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를 받았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내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던 인물이 검찰의 압박에 따른 거짓 자백과 증언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이를 근거로 재심 청구를 했으나 위증에 대한 처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물증 없이 진술에만 의존한 대검 중수부의 억지 수사였다는 진실이 밝혀졌지만 법률적 구제는 받지 못했다. 내 양심에 비춰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정치인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
 “내게 무슨 개인적 욕심이 있겠나.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한광옥 1942년 전주시 출생. 전주북중·중동고 졸업, 서울대 영문과 중퇴. 박정희 정부에서 군정 연장 반대운동 벌이다 투옥. 11·13·14·15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범야권대통령후보(DJP) 단일화협상 추진위원장, 제1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역임.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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