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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마이웨이] 하늘 날고 벽 오르는 꿈을 이뤄주는 ‘로봇 할아버지’

경기도 군포에 있는 한국신기술연구소에서 오장근 소장이 자신의 발명인생과 발명품들의 성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도형]
처음에는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와보니 군포의 평범한 주택가다. 놀이터와 허름한 가게, 골목이 줄지어 있는 이곳에 최첨단 연구소가 있다니…. 작은 상가에 붙어 있는 ‘한국신기술연구소’라는 팻말도 어찌나 소박한지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때마침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오장근(61) 소장이 반갑게 맞는다. 연구소 소장보다는 쌀집아저씨가 먼저 연상되는 친근한 마스크다.

<10> 발명가 오장근 소장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자 별천지(?)가 펼쳐진다. 한쪽 벽에는 각종 공구들이 줄지어 있고 그 앞에 여자로봇이 서 있다. 오 소장이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 옆에는 ‘탐나는’ 물건도 놓여 있다. 이름하여 인간동력믹서기다. 평범한 다이어트용 실내 자전거처럼 보이지만 바퀴를 돌리면 믹서도 함께 돌아간다. 살도 빼고, 사과도 갈아먹을 수 있으니 주부들한테 인기 만점일 것 같다. 옆의 창고에는 청소기를 개조한 ‘스파이더맨 로봇’이 있다. 몸에 착용하면 마치 영화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척척 올라갈 수 있는 신기한 물건이다.

“이건 예전부터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거예요. 매끄러운 빌딩벽은 물론 표면이 울퉁불퉁한 벽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걸 만드느라 청소기 15개를 사서 직접 분해했지요.”

과학계도 알아주는 재야 전문가
그를 보니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현실로 만들어내는 영화 속 ‘아이언맨’이 떠오른다. 직원 하나 없는 1인 연구소이지만 그래도 오 소장은 과학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베테랑 발명가’다. 30여 년간 만든 발명품만 70종이 넘고 그중에서 호버크래프트, 에어보트, 태양전지보트, 인간동력항공기 등 30여 종은 ‘국내 최초’로 인정받는다.

그의 전문분야는 비행기다. 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했고, 그의 첫 번째 발명품도 87년에 만든 국내 최초 패러 비행기였다. 이후 수십 년간 그는 여러 가지 비행기들을 직접 만들었다. 그중에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위그(WIG)선도 포함돼 있다. 위그선은 바다 표면 위로 낮게 떠서 날아가는 비행기인데 연료비가 일반 비행기의 30%밖에 들지 않아 차세대 운송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20여 년 전에 제가 일본의 항공잡지를 보다가 우연히 위그선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어요.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자료를 구할 데가 없어서 혼자 연구하면서 만들기 시작했죠. 작은 실험기를 만들어 시험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기계연구원에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96년에 국내 최초로 위그선 시험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첨단과학을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비행기를 하나 만든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듯싶다. 비행기야말로 인류가 역사적으로 쌓은 지식의 결정체일 테니 말이다. 부품이 1만 개라면 1만 가지의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이것을 현실로 구현할 기술, 그리고 수많은 실패에서 뽑아낸 경험의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갖고 있다는 게 가능할까? 각 연구소나 대학마다 항공지식에 해박한 박사는 많다. 부품 공장마다 기계를 만드는 뛰어난 기술자도 많다. 그러나 이 둘을 동시에 가진 발명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다루는 분야도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오 소장이 갖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대기업 연구소장직 박차고 나와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하는 그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실력 있는 사람이 왜 대전이나 KAIST가 아닌 군포에 있을까. 그의 능력을 보고 함께 일해 보자는 스카우트 제의가 분명히 있었을 법한데.

“한 대기업에서 연구소장으로 오라는 제의가 있어서 몇 년 일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저랑 맞지 않아서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회사 일을 하느라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저는 혼자 일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만화영화에서 본 하늘도 날고 잠수함도 되는 자동차에 푹 빠진 뒤부터 그의 꿈은 한결같이 ‘발명가’였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학창시절에는 밤을 새워가며 기초과학을 공부했고 서른 중반까지 용접·선반·미싱 등 발명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마스터했다. 30년 내공이 쌓인 지금은 웬만한 물건은 설계도 없이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뚝딱 만들어낸다. 뭔가를 만들 때마다 거기에 구동시키는 장치부터 그것이 어떤 궤적을 그릴 것인지까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그렇게 상상만 했던 무엇을 눈앞에 만들어내는 것만큼 그에게 짜릿하고 행복한 일은 없다. 환갑을 맞은 지금도 그는 매일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저녁 8시까지 꼬박 연구에 매달린다. 일 외에는 아무런 취미가 없을 정도로 발명은 그의 삶 자체다. 굳이 많은 사람이 알아봐주지 않아도 괜찮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운데 어딘가에 들어가서 윗사람 눈치보고, 하기 싫은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길을 외롭게 걷다 보면 알게 된다.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포장하거나 이름 앞에 그럴 듯한 타이틀을 달고 싶은 욕망의 포로가 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특히 나를 인정하는 누군가에 의해 명예로운 자리로 ‘모셔지는’ 유혹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러나 오 소장은 스스로를 다잡고 가르치면서 발명가라는 자신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의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절제야말로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누구나 마이웨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제라는 미덕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과 육체, 내 깊은 뚝심을 스스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연구소는 동네 아이들 놀이터
그는 절제를 통해 벌어놓은 시간 동안 그 뚝심을 받쳐줄 실력을 쌓는 데만 집중했다. 덕분에 고도화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전방위적 연구경험들을 압축할 수 있었고 첨단 과학 분야에 그만의 틈새시장을 만들어냈다. 박사학위나 그럴듯한 명함 한 장 없이도. 세상이 보고자 하는 틀이 아니라 내가 보여주고 싶은 틀로 자신을 보도록 만든 것이다. 덕분에 그는 발명가로서도, 가장으로서도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재야 발명가로 살면 굶지 않느냐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했습니다. 왜냐면 상당수가 의뢰를 받아서 했던 연구들인데 대부분이 ‘안 풀리는 숙제’들이었거든요. 쉬운 거였으면 정부 산하기관이나 대기업에서 다 가져가지 저한테까지 차례가 안 왔겠지요. 대신 연구비는 비싸게 불렀지요(웃음). 덕분에 내 돈 안 들이고 하고 싶은 연구들만 신나게 했습니다.” 요즘 그의 발명품을 가장 열렬히 기다리는 이들은 동네 꼬마들이다. 아이들에게 ‘로봇 할아버지’로 통하는 오 소장의 연구소는 마을 꼬마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놀러와 그의 스파이더맨 로봇을 차고 벽을 오른다. 근육병을 앓고 있는 이웃 청년을 위해 특수 휠체어를 만들어 주고 매번 수리를 도맡아 해주는 것도 그의 일상이다. 어렸을 때의 자신처럼 아이들의 가슴에 꿈의 스위치를 켜주고 싶다는 노(老)발명가의 진심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그가 만든 가장 멋진 발명품은 아마도 그 자신이 아닐까 싶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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