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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Big Questions'] 현재의 질서는 무질서 향해 가는 우주 속 우연인가

스페인의 낭만주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거인’. 1814~1818년께 작품.
먼 미래 어느 날. ‘아스가르드(Asgard)’의 문지기 헤임달(Heimdall)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할 장면을 목격한다. 인간들의 세상인 ‘미드가르드(Midgard)’와 신들의 세상 ‘아스가르드’를 연결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끝없이 밀려오는 거인들! 그 무시무시한 거인들의 군대를 지휘하는 로키(Loki), 그리고 로키의 자식들인 펜리르(Fenrir)와 요르문간드(Jormungand).

라그나로크는 ‘신들의 말세’
그들이 누구였던가? 신과 거인의 세상을 드나들면서 원인도 이유도 없이 세상을 혼란과 무질서에 빠뜨리던 로키! 입 한 번 벌리면 땅과 하늘 사이 모든 존재를 삼켜 ‘무(無)’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늑대 펜리르! 막강한 신 오딘(Odin)과 토르(Thor)에게 잡혀 깊은 동굴 안에다 절대쇠사슬로 꽁꽁 묶어놓지 않았던가? 쇠사슬을 푼 로키와 펜리르, 그리고 세상을 한 바퀴 둘러싸고도 자신의 꼬리를 물 만큼 거대한 바다뱀 요르문간드는 신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라그나로크(Ragnarok)’라 불리는 ‘신들의 황혼’이 시작된 것이다.

‘라그나로크’라 불리는 ‘신들의 황혼’. 로키의 자손들과 싸우는 오딘과 토르.
그리스·로마·유대교·기독교 신들은 단순하다. 전능하신 기독교·유대교 신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영원히 만물을 통치하신다. 우주를 창조하진 못했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들 역시 적어도 영원히 존재한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 게르만족 노르드(Norse)인들의 신화는 다르다. 세상이 말세가 되면 신들 역시 말세에 이르니 말이다. 아니, 신들의 말세, 고로 라그나로크 자체가 세상의 말세이기도 하다. 최고의 신 오딘은 태양과 함께 늑대 펜리르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다. 번개의 신 토르와 바다뱀 요르문간드는 서로를 전멸시킨다. 늑대와 뱀에게 잡아먹히다니! 무슨 그런 ‘쪽팔리는’ 신들이 있을까!

노르드인들에겐 과거와 현재만 존재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전멸한 세상은 다시 창조되고, 다시 창조된 세상에서 신들은 또다시 세상을 지배한다. 말썽꾸러기 로키는 또 한 번 잡히고, 그가 풀려나는 날 또 한 번의 라그나로크가 벌어진다. 라그나로크와 창조, 창조와 라그나로크를 되풀이하며 세상은 영원히 반복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딘·토르·로키·펜리르·요르문간드 모두 알고 있다. 라그나로크는 끝이 아니란 걸. 그것은 또 한 번의 시작일 뿐이란 걸. 그렇다면 질문할 수 있겠다. 어차피 모든 게 반복된다면 왜 싸우고 찢기고 물고 생고생을 해야 하는가? 늑대 펜리르를 묶는 자신의 손은 어차피 우주만큼 크고 깊은 펜리르의 목에 삼켜질 것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오딘. 그는 왜 여전히 펜리르를 꽁꽁 묶고 있는 것일까?

영화 ‘매트릭스(Matrix)’의 한 장면.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반복된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의 ‘건축가’가 설명하듯, 주인공 네오의 삶과 싸움, 그리고 기계들을 향한 인간의 반란이 이미 수십 번 반복됐다면? 너무나도 많이 반복됐기에 미래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토르가 그의 위대한 망치를 던지는 순간, 어디로 떨어질지 이미 모두 알고 있다면? 미래에 일어날 모든 것들이 결국 신·물리법칙 또는 운명이라 불리는 필연들 간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현재는 미래로 변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유대교·기독교의 시간은 지극히 선형적이다. 현재는 미래를 바꿀 수 있지만 미래는 과거를 바꿀 수 없으니 말이다. 힌두교에서 역시 과거는 변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없는 환상(Maya)이란 사실을 진정으로 느낄 때까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세상에 던져져 다시 시작해야 할 뿐이다.

하지만 노르드인들에게 미래란 무의미하다. 이들에겐 과거와 현재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일까? 그들은 거대한 생명의 나무 ‘위그드라실(Yggdrasil)’이 세상을 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나무의 뿌리는 우주의 우물인 ‘우르드(Urd)’로부터 물을 받고, 신·거인·인간이 사는 9개 세상들은 나뭇가지들에 매달려 있다. 그렇다면 우르드의 물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바로 나무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 모여 우물을 다시 채워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르드인들의 세계관을 이렇게 해석해볼 수 있겠다. 위그드라실 나무의 이슬은 신과 인간들의 피와 땀, 사랑과 희망, 그리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그들의 생명을 통해 만들어진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지만 현재의 미래가 바로 그 과거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나의 미래가 나의 과거가 되기에 독립적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꼬여 있다. 어차피 미래가 없는 세상. 노르드인들이 그렇기에 숙명적으로 싸우고 찢기고 물고 죽어갔는지도 모른다.

“만물은 물리법칙이란 필연의 결과물”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 Simon Laplace·1749∼1827). 만유인력을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뉴턴의 고전역학을 수학적으로 정의한 인물이다. ‘라플라스 변환(Laplace transform)’과 ‘라플라스 방정식(Laplace equation)’을 발견한 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정권 당시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천재적이고 도도하기로 유명했던 라플라스의 공직 생활은 하지만 무척 짧고 재앙적이었다. 그는 수학 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비(非)논리적인 정치에 실망했다. 또 “신은 존재하느냐?”란 호기심 많은 황제의 질문에 “내겐 ‘신’ 같은 가설은 필요 없다”고 짜증 낼 만큼 상황 판단에 어두웠으니 말이다. 결국 나폴레옹은 그를 “쓸모없는 질문만 던지는… 비단옷 입은 똥”이라 욕하며 정확히 6주 만에 퇴임시킨다. 다시 과학의 세계로 돌아온 라플라스는 질문한다.

뉴턴역학에 따르면 만물은 물리법칙이란 필연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왜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혼돈과 우연투성이일까? 코르시카 시골 출신에 키도 작은 나폴레옹. 어떻게 그가 프랑스 황제가 되고 전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의 행운과 승리는 왜 러시아의 겨울과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을까? 이 모든 게 결국 우연과 행운일 뿐일까? 아니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필연의 결과물일까? 그렇다. 우연과 혼돈은 오로지 인간의 미지(未知)에서 오는 것이다! 만약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 존재는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라플라스는 생각했다.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라 불리게 되는 이런 전능한 존재가 과연 가능하다면? 138억 년 전 빅뱅을 통해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 ‘라플라스의 악마’는 이미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예측할 수 있었을 거다. 은하수와 태양계의 탄생, 생명과 인간의 기원. 문명의 발전. 부모님들의 탄생 그리고 죽음. 그리고 나의 탄생, 나의 삶, 나의 죽음. ‘라플라스의 악마’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라플라스의 악마’
물론 ‘라플라스의 악마’는 불가능하다. 단순히 우주 모든 입자들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안다는,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덴마크의 닐스 보어(Niels Bohr)와 함께 초기 양자역학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독일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1901~76). 26세란 어린 나이에 그는 양자역학의 근본적 법칙인 ‘불확정성 원리(不確定性原理Uncertainty principle)’를 제시한다. 이 원리의 핵심은 아무리 노력해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본질적으로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운동량의 불확정도가 커지고, 반대로 운동량이 정확하게 측정될수록 위치의 불확정도가 늘어난다. 라플라스의 꿈은 결국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잠깐! 입자 하나하나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은 측정할 순 없지만, 통계열역학 방법을 응용하면 입자들의 통계학적 위치와 운동량은 알아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우주와 존재의 통계학적 운명은 예언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그 유명한 열역학 제2법칙을 이용하면 “고립된 시스템의 총 엔트로피(entropy·무질서의 수치)는 감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주 그 자체를 하나의 고립된 시스템으로 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는 질서보다 무질서 상태로 변해갈 것이다. 언젠간 모든 입자들이 골고루 분포돼 운동이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고로 ‘자유 에너지(free energy)’가 0이 되는 상태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물리학자 윌리엄 톰프슨(William Thompson·1824~1907)은 우주의 이 같은 종말 상태를 ‘열 죽음(heat death)’이라 정의한 바 있다. 만약 톰프슨의 주장이 맞다면 빅뱅이란 ‘무’에서 시작된 오늘날의 ‘유’는 언젠간 아무 질서도, 정보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하고 완벽한 무질서 상태로 끝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은하수·태양계·지구라 불리는 물질적 질서들. 생명·인간·뇌라 불리는 생물학적 질서들. 그리고 문명·종교·과학이라 불리는 문화적 질서들.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Jacques Monod)가 저서인 『우연과 필연』에서 설명하듯, ‘나’란 존재를 가능하게 한 이 질서들은 결국 “우주는 언제나 무질서를 향해 간다”는 필연 아래 잠시 허락된 우연일 뿐이다. 영원한 무질서 사이에 우연히 존재하는 잠시의 질서이기에 우리는 우리를 다시 무질서의 세상으로 삼켜버릴 늑대 펜리르의 입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외로워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스페인의 화가)의 ‘거인’같이 말이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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