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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사람과 세상] 평창 유치 때 직접 표심 챙겨 … 책임감 유별나 ‘과욕’ 평가도

2018 겨울올림픽 IOC 실사단 환영 접견 및 유치위원회 격려 만찬을 위해 2011년 2월 1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강광배 봅슬레이 국가대표 감독(오른쪽)과 함께 드림 프로그램 참가자 선수들의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 [중앙포토]
2009년 들어 체육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강원도가 2018 겨울올림픽을, 부산·경남(PK)이 2020 여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며 경쟁적으로 나섰다. 여기에 정몽준 의원이 가세해 2022 월드컵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7> 겨울올림픽과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은 이 중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줘야 했다. 이미 우리는 88올림픽과 2002 월드컵을 개최한 터라 규모는 작지만 세 번째 도전하는 겨울올림픽에 민심은 쏠리고 있었다.

그러나 PK 측이 워낙 거세게 밀어붙여 정부의 평창 지원 결정은 계속 미뤄졌다. 4월 어느 일요일 오후,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또다시 심의가 보류되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비서관님, 강원도는 청와대가 부산 편에 선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마저 지역 이기주의에 흔들리면 나중에 큰 역풍을 맞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년도 이맘때 말도 안 되는 ‘광우병 파동’으로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가.

다음날 아침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전날 내린 수석회의 결과를 번복하고 평창 지원을 결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잠시 생각하던 정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해하겠는데 다른 수석들은 어떻게 하지?”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대상은 PK 출신의 박재완 국정기획수석과 박형준 홍보수석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선선히 수락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공식 지원이 결정됐다.

“모든 일은 주무부처가 … 청와대는 지원”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 수영연맹 회장을 15년이나 했고, 국제수영연맹(FINA)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해 국제 스포츠계 동향을 꿰뚫고 있었다. 2018 겨울올림픽 개최지는 2년 뒤인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된다. 이 대통령은 110명의 IOC 위원 설득이 관건이라며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청와대는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어떤 지원과 시스템이 필요한가를 항상 고민해라.

둘째, 모든 일은 주무부처(문화체육관광부)가 하게 하고 청와대는 뒤에서 도와줘라.

가장 시급한 것이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구성이었다. 그러나 100여 명의 유치위원 선정을 둘러싸고 문체부와 대한체육회(KOC), 강원도 간에 의견차가 작지 않았다. 더구나 서로 유치위원이 되겠다며 실력자들을 앞세운 청탁이 쇄도했다.

누군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주무부처인 문체부가 하는 것이 순리지만 모두들 청와대만 바라봤다. 결국 청와대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고심 끝에 이런 원칙을 제시했다. 문체부· KOC·강원도 등 세 군데에서 모두 찬성하는 사람은 선정하고, 모두 반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제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후보 명단을 나눠주었다. 이렇게 유치위원 70여 명을 1차로 선정했다.

유치위원장으로는 국제감각이 뛰어나고 대한탁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조양호 대한항공(KAL) 회장과 평창 겨울올림픽을 처음부터 추진해 온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임명됐다. 9월 조양호·김진선 공동위원장 체제가 출범했다.

당시 IOC 내에서 우리 입지는 매우 불리했다. 라이벌 독일 뮌헨의 유치를 주도하는 토마스 바흐(현 IOC 위원장)는 IOC 수석 부위원장일 뿐만 아니라 차기 위원장으로 거명되는 실력자였다.

더구나 겨울올림픽은 철저히 백인(白人)들의 스포츠였다. 총 21번 가운데 19번이 북미·유럽 지역에서, 나머지 두 번이 일본에서 열렸다.

이건희 회장의 사면 이후 유치전 본격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명함을 내밀 처지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 IOC 위원은 태권도 선수 출신인 문대성(현 새누리당 의원) 한 명뿐이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IOC 위원이나, 2008년 김용철 변호사 비자금 폭로 사건으로 재판 중이라 자격이 정지된 상태였다.

관건은 이 회장의 복귀 여부다. 그는 이미 두 차례 유치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 활동을 벌였고 IOC 내 영향력도 대단했다. 그가 복귀하면 해볼 만한 승부고, 그렇지 않다면 승산은 없었다.

그러나 열쇠를 쥔 청와대나 문체부 누구도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주무 비서관인 내가 프랑스 등 외국 사례를 인용하면서 사면을 건의했으나 모두들 화들짝 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왜 우리가 나섭니까. 그러다가 삼성 비호했다는 소리나 들으면….”

이 대통령은 답답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면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새 10월이 됐다. 하루는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불러 평창 준비에 관해 물었다.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주지 않으려는 상황을 그대로 설명했다. 그러자 정 실장이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국민이 사면을 원한다면 대통령께서 안 해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말의 함의(含意)가 느껴졌다.

“알았습니다. 유치위에 여론 조성을 권유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만에 하나 사면과 관련해 정치적 논란이 일어난다면 제 선에서 책임지겠습니다. 실장님과도 상의한 바가 없는 겁니다.”

정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즉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조양호·김진선 공동위원장과 만나 여론 조성에 앞장서 줄 것을 권유했다.

제일 먼저 김진선 지사가 포문을 열었다. 평창·강원도민들의 탄원서에 이어 11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복권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어 조양호 위원장(11월 19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11월 20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11월 24일) 등의 건의가 잇따랐다.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론도 출렁였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이 회장 한 사람만 12월 31일자로 특별사면 복권을 했다.

2011년 7월 6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겨울올림픽 개최 도시 발표식에서 평창 유치가 확정된 뒤 이명박 대통령이 IOC 위원들과 인사하며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위원들과 스킨십 나누며 친분 쌓아
2010년 이 회장이 IOC 위원으로 복귀하면서 유치작전은 급물살을 탔다. 둘째 사위 김재열(현 제일기획 사장·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과 함께 지구촌을 몇 바퀴 돌며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조양호 공동위원장은 88 서울올림픽 유치 때 부친인 고 조중훈 회장이 맡았던 유럽·아프리카 지역을 집중 공략했으며, 강원도 도민회장을 지낸 윤세영 SBS 명예회장 역시 세계 각국을 돌며 국제 스포츠계 실력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유치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총감독뿐 아니라 영업·홍보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

국내외 살인적인 일정 중에도 평창 유치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와도 만나고, 전화하고, 편지를 썼다. IOC 위원의 절반 이상을 직접 만났고, 거의 전 IOC 위원에게 편지를 썼으며, IOC 위원과의 단 한 번 통화를 위해 다섯 차례, 열 차례 전화를 걸기도 했다.

IOC 위원들을 상대로 하는 그의 ‘영업(?)’ 활동은 2011년 7월 초 남아공 더반으로 떠나기 직전 절정을 이뤘다.

경쟁 도시 위원 6명을 제외한 전 IOC 위원(104명)에게 ‘맞춤형’ 편지를 보내 마지막 지지를 호소했다. 위원별로 개인적 관심과 정성이 담긴 내용인 데다 한글 원본에 모국어 번역본을 첨부한 친서(親書)였다. 전달도 우편이 아니라 그 나라 주재 대사나 특사가 직접 전하는 식으로 정성을 다했다.

아직 지지가 불투명한 IOC 위원 열두서너 명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안 되면 자동응답기에 직접 메시지를 남겼다.

“꼭 통화하고 싶었는데 연결이 잘 안 돼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간 평창 유치에 보여준 관심과 지지에 감사드리며 더반에서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시차를 맞추기 위해 심지어 청와대 회의(국민경제대책회의 2011년 6월 30일) 도중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자리를 떠나 IOC 위원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더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17시간 동안 이 대통령은 만사 제쳐놓고 오직 영어 설명회(프레젠테이션) 연습과 IOC 위원들 신상자료 공부에 집중했다. 군사작전 하듯 치러진 현지에서 5박(泊) 동안 점심·저녁은 물론 조찬 뷔페 때도 IOC 위원들과 스킨십을 나누며 친교를 쌓아 나갔다.

IOC 위원들 앞에서 하는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갈라졌으나 이 대통령은 중단하지 않았다. “목이 쉬어야 더 감동을 받아요.”

대통령의 이런 노력과 열성이 결국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7월 6일(현지시간), 당초 박빙 승부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평창은 라이벌 뮌헨을 63대 25라는 압도적 표 차로 물리치고 유치에 성공했다.

쉬지 않고 일하는 리더십 인상적
곁에서 지켜본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두 가지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첫째, 자율권을 중시했다. 대통령과 참모의 일, 청와대와 부처의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범위 내에서 재량권을 인정했다.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유치위의 의견을 존중하고, 청와대는 최소한으로 개입해 아주 중요한 문제만 조정토록 했다.

둘째, 솔선수범했다. 참모나 유치위가 건의하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 체면, 휴식은 다 제쳐버리고 앞장섰다. 너무 열심히 뛰다 보니 때로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 에너지의 원천은 ‘책임감(責任感)’이라고 생각한다. 20대 사원 시절부터 정주영 회장 눈에 띄어 30대에 사장으로 발탁되고, 마침내 일국의 대통령까지 오르게 한 일등공신이 바로 그 책임감이다.

하루 네 시간밖에 자지 않고, 쉬지 않고 일하는 그의 ‘유별난’ 책임감이 때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과욕과 공명심, 독단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자기 할 일을 미루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찾아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전직이든 현직이든 대통령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어느 언론인의 말처럼 대통령을 공격하는 건 강아지를 발로 차는 것처럼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는 법인데 우리 사회는 유독 대통령의 공은 외면하고 과만 쳐다본다. 이 나라 발전에 역대 대통령들의 노심초사(勞心焦思)도 큰 기여를 했을 텐데 사람들은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남의 잘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잘한 점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남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사회가 어떻게 남으로부터 감사받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함영준 조선일보 사회부장·국제부장 등을 역임하고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을 거쳐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 부위원장,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전무를 지냈다. 저서로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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