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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十常侍<십상시>

1990년대 중반 한 중국 학자는 한·중 관계의 가까움을 ‘사근(四近)’으로 표현했다. 두 나라는 ‘역사가 가깝고, 지리가 가깝고, 문화가 가깝고, 감정이 가깝다(歷史近 地利近 文化近 感情近)’는 것이었다. 그 말처럼 양국 관계가 정말로 가깝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 보도 사건과 관련해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국정을 농단했던 10여 명의 환관(宦官)을 일컫는 ‘십상시(十常侍)’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십상시는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말로 한(漢)나라 영제(靈帝)를 모시던 측근 환관 10여 명을 가리킨다. 정확하게는 장양(張讓)과 조충(趙忠), 하운(夏惲), 곽승(郭勝), 손장(孫璋), 필람(畢嵐), 율숭(栗嵩), 단규(段珪), 고망(高望), 장공(張恭), 한회(韓悝), 송전(宋典) 등 12인이다. 우두머리는 장양과 조충으로 황제를 완전히 장악해 영제는 “장양은 내 아버지요 조충은 내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제의 관심을 정치 바깥으로 돌리고 주색(酒色)에 빠지게 한 뒤 이들 십상시는 매관매직(賣官賣職) 등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했다. 십상시의 부모와 형제는 중국 전역을 무대로 횡포를 일삼아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환관들은 곧잘 황제의 외척과 권력다툼을 벌이게 된다. 십상시도 마찬가지다. 서기 189년 영제가 사망하자 하태후(何太后)의 소생이 보위에 오르고, 이에 따라 새 황제의 외삼촌인 하진(何進)이 장군으로서 권력을 쥐며 십상시와 갈등을 빚는다. 외척과 환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하진은 환관 제거를 위해 동탁(董卓)을 불렀으나 동탁이 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십상시의 꾀에 걸려 죽임을 당한다. 그러자 격분한 하진의 부하들이 십상시를 포함해 2000여 환관을 살해하면서 외척과 환관의 싸움은 모두의 패배로 막을 내린다. 이른바 십상시의 난(亂)이다. 한국판 십상시로는 현재 정윤회씨와 몇몇 청와대 공직자가 거론되고 있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이런 말이 회자되는 것 자체가 청와대 인사의 불투명성을 방증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올겨울 추운 게 다 이유가 있나 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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