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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생명 은인 쿵링쥔이 무슨 일 해도 ‘오냐오냐’

황푸군관학교 교장 장제스와 연애 시절, 쑹메이링은 장제스를 만날 때마다 친정조카 쿵링쥔을 데리고 다녔다. 1926년 가을 상하이. [사진 김명호]
쿵링쥔(孔令俊·공영준)은 어릴 때부터 남자를 싫어했다. 여자들 하고만 어울렸다. 취미도 유별났다.

초등학생 시절, 로마의 검투사들에 관한 책을 읽고 흉내를 냈다. 같은 반 남자애들끼리 싸움을 시키고, 이긴 사람에게 상금을 줬다.

열두 살 때부터 남장을 하고 열세 살 때 자동차 운전과 총 쏘는 법을 익히면서 성격이 포악해졌다. 경찰을 권총으로 쏴 죽인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파업을 선언한 경찰관들이 아버지 쿵샹시(孔祥熙·공상희)의 집을 에워싸고 항의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악행을 막을 사람은 친엄마나 다름없는 이모 쑹메이링(宋美齡·송미령)밖에 없었지만, 쑹메이링은 쿵링쥔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예뻐했다. 이모부 장제스(蔣介石·장개석)도 쿵링쥔에게만은 관대했다. 이유가 있었다.

중일전쟁 초기, 장제스와 쑹메이링이 쿵링쥔을 데리고 부상병 위문을 나간 적이 있었다. 중도에 쿵링쥔이 차를 갈아타자고 고집을 부렸다. “우리가 탄 두 번째 차가 맘에 들지 않는다. 경호원들이 탄 다섯 번째 차로 바꿔 타자.” 쑹메이링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다. 계속 우겨대던 쿵링쥔이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태세를 취하자 잠자코 있던 장제스가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차에서 내린 쿵링쥔은 쑹메이링과 장제스의 손을 끌고 다섯 번째 차로 향했다. 다시 얼마쯤 달렸을까, 상공에 적기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두 번째 차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날을 계기로 장제스도 쿵링쥔이 뭘 하건 내버려뒀다. 아랫사람들에게 무례한 짓만 하지 않으면, 각료들 뺨을 후려갈기건 말건, 부모 믿고 우쭐대는 고관 집 자식들 면상에 침을 뱉건 말건, 나무라는 법이 없었다.

행정원장 시절 독일을 방문, 히틀러의 영접을 받는 쿵샹시. 오른쪽은 괴링. 1937년 베를린.
쿵링쥔의 행각은 ‘비행기 사건’으로 절정에 달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전화(戰火)가 동남아 중부와 남태평양 지역까지 확대됐다. 홍콩이 일본군의 수중에 넘어갈 기미가 보이자 장제스는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시 홍콩에는 상하이가 일본군에 함락되자 피란 가 있던 저명인사들이 많았다. 이들을 전시 수도 충칭(重慶)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전용기를 홍콩으로 보냈다. 구출할 사람의 명단도 직접 작성했다. 평소 자신을 호되게 비판하던 대공보(大公報)의 원로기자 후정즈(胡政之·호정지)도 명단에서 빠트리지 않았다.

비행기가 충칭에 도착하는 날 마중 나갔던 사람들은 쿵샹시 집안의 보모들이 물건 보따리를 들고 내리자 깜짝 놀랐다. 맨 마지막에 쿵링쥔이 애견 17마리와 함께 나타나자 다들 제 눈을 의심했다. 기다리던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공보가 사실을 보도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연일 학생 시위가 벌어지고 거리마다 쿵씨 일가를 비난하는 전단이 굴러다녔다. 쿤밍(昆明)의 서남연합대학 학생들이 ‘쿵씨 일가 타도 위원회’를 발족시키자 전국의 대학들이 호응했다.

쿵샹시와 쑹아이링(宋藹齡·송애령) 부부는 거금을 풀었다. 사람들을 동원해 전국에 나돌던 대공보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장제스도 수습에 나섰다. 언론기관을 관할하던 교통부에 지시했다. “대공보에 정정기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해라.” 대공보는 교통부에서 보낸 서신도 공개했다. “홍콩의 전화사정이 좋지 않아 모셔올 사람들과 연락이 불가능했다. 빈 비행기로 돌아오는 것은 낭비인지라 약간의 물건을 탑재했다. 개는 네 마리밖에 없었다. 열일곱 마리는 오보이니 정정해 주기 바란다.”

사태가 악화되자 감찰원장 위유런(于右任·우우임)이 행정원장 쿵샹시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다. “전 국민이 일본과 전쟁 중이다. 전시일수록 인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들을 개 열일곱 마리만도 못하게 여기는 철없는 여자애는 그렇다 치자. 딸 교육 제대로 못 시킨 쿵샹시는 내각의 수반인 행정원장 자격이 없다. 법적인 잘못은 없지만, 그런 애의 아비를 고위직에 임명한 사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감찰이건 뭐건 할 것도 없다.” 동서 장제스까지 물고 늘어지자 쿵샹시는 당일로 사직원을 제출했다.

전 중국이 떠들썩해도 쿵링쥔에 대한 쑹메이링의 애정은 변함이 없었다. 후쭝난과의 결혼을 서둘렀다. 쿵링쥔도 황푸 출신 중에 가장 많은 병력을 거느린 후쭝난이 싫지 않았다. 직접 만나겠다며 시안(西安)까지 갔다. 남장을 벗고 굽 높은 신발에 몸에 꼭 붙는 치파오를 입었다. 누가 봐도 그럴듯했다.

후쭝난은 쑹메이링의 비위를 건드릴 자신이 없었다. 제발로 나가 떨어지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쿵링쥔에게 산책이나 하자며 반나절 산속을 거닐었다. 숙소로 돌아온 쿵링쥔은 온 발이 물집투성이였다. 이모 쑹메이링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쭝난은 형편 없는 놈이다. 황제가 된다 해도 거들떠보기도 싫다. 정말 나쁜 놈이다.”

후쭝난은 딴 여자, 그것도 황푸군관학교 후배의 연인에게 마음이 있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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