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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금요일] 헤지펀드 신화 붕괴

“전멸당했다(annihilated).”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경제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최근 한 펀드매니저 실적을 묘사한 말이다. 주인공은 존 폴슨(59)이다. 헤지펀드 운용사인 폴슨앤드컴퍼니(Paulson & Co.)의 대표다. 190억 달러(약 20조9000억원)를 굴리고 있다. 이런 그가 운용하는 한 헤지펀드가 올해 11월 말 현재 본전을 27%나 까먹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문제의 펀드는 인수합병(M&A)이나 기업분할, 파산 등이 일어날 법한 회사에 주로 투자한다”며 “나쁜 성과는 기업과 시장 분석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폴슨의 닉네임은 ‘헤지펀드의 황제’다. 그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때 환상적인 베팅으로 200억 달러 정도를 벌어들여 얻은 별명이다. 그의 황제 등극과 함께 조지 소로스(84) 소로스펀드 회장은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런 폴슨이 고객의 본전을 까먹었다. 어쩌다 한 번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다. 최근 3년 새 그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상태였다. 황제의 불운일까. 아니다. 헤지펀드 전문매체인 알파는 “2012년 이후 3년째 헤지펀드 전체 수익률이 뉴욕 증권시장 평균을 밑돌았다”고 전했다. 헤지펀드 업계 전체가 부진하다는 얘기다.



수익이 시장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헤지펀드는 존재의미가 없다. 헤지펀드 수수료가 시장 평균 수익을 좇는 인덱스펀드보다 몇십 배 많다. 돈 까먹는 헤지펀드는 투자자에게 애물단지다. 본전을 잃은데다 높은 수수료까지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헤지펀드에서 자금을 철수하는 연기금 등이 늘고 있다. 이는 곧 펀드의 청산이다. 헤지펀드 분석회사인 유레카헤지는 “올해 안에 헤지펀드 1000~1200곳이 청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와중인 2009년 이후 가장 많다.



헤지펀드 전문매체인 알파는 “내년은 헤지펀드의 존재의미를 묻는 한 해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투자자들이 새해가 되면 ‘몇십 배나 많은 수수료를 부담하며 헤지펀드에 돈을 맡기는 게 바람직한가?’란 의문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헤지펀드는 일반적으로 '수수료 2-20원칙’을 고수한다. 헤지펀드 매니저가 해마다 원금의 2%를 운용 보수로 떼가고 수익의 20%를 성과 보수로 가져가는 룰이다.



내년은 헤지펀드 탄생 66년이 되는 해다. 1946년 기자 출신 금융가인 알프레드 존스가 10만 달러를 종자돈으로 헤지펀드 세계를 개척했다. 당시 그는 “독(毒)은 독으로 치료하듯 위험한 투자 전략 두 가지를 결합하면 무위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내놓은 펀드는 주식을 공매도하면서 동시에 신용매수해 주가가 떨어지든 오르든 수익을 보는 전략을 폈다.



이후 헤지펀드는 머니 게임에서 늘 선봉이었다. 90년대 초 영국 파운드화나 97년 태국 바트화 공격을 주도해 중앙은행들을 굴복시켰다. 그 바람에 헤지펀드는 ‘금융시장 야수(Wild beasts)’로 불렸다.



이랬던 헤지펀드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미국의 유명한 투자자문가인 데니스 가트먼은 최근 CNBC에 출연해 “양적 완화(QE)가 자산시장을 뒤흔들어 놓은 바람에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예측 능력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글로벌 국채와 회사채 값의 급등이다. 미국·영국·일본 중앙은행이 국채를 마구 사들여서다. 채권 값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이 타격받았다. 다른 이유는 상품시장 붕괴다. 세계적 경기침체로 원유·구리·철강석 등의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상품시장은 헤지펀드 매니저들에겐 안방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홈그라운드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전문가의 말을 빌려 “시장 상황은 모든 펀드에 같은 조건”이라며 “헤지펀드 위기를 시장 악화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헤지펀드만의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WSJ는 “운용 전략의 모방으로 경쟁이 치열해져 뛰어난 펀드매니저가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경쟁은 곧 수익률 평균화인 게 시장의 숙명이다. 미 투자자문가인 고(故) 피터 번스타인은 『투자 아이디어』에서 “헤지펀드 간 투자 전략 모방은 시장의 붕괴를 낳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1998년 롱텀캐피털 파산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수석 매니저 존 메리웨더의 채권 트레이딩 기법이 순식간에 다른 펀드매니저들에게도 퍼졌다. 러시아 위기 순간 메리웨더 컴퓨터의 프로그램이 채권을 팔아치우자 동일한 매도 주문이 많은 헤지펀드에서 쏟아져 나왔다. 결과는 채권값 폭락과 롱텀캐피털의 파산이었다.



요즘은 모방이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아예 잘 나가는 헤지펀드를 그대로 복제한 펀드도 나왔다. 복제펀드의 수수료는 오리지널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 바람에 헤지펀드 수수료 책정에서 투자자의 발언권이 커지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연기금들이 헤지펀드가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을 내지 못하면 수수료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계약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최근 전했다. 비즈니스위크는 “헤지펀드 세계의 구심력은 거액의 보수”라며 “유능한 인재가 헤지펀드 대신 사모펀드 등으로 떠날 수 있다”고 짚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헤지펀드(Hedge Fund)=원래는 위험에 대비해 ‘울타리를 친(Hedge) 펀드’라는 뜻이다. 하지만 위험회피보다는 투기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공모펀드보다는 대규모 자금을 굴리는 소수의 기관 고객을 상대하는 사모펀드 형태가 일반적이다. 원자재와 파상상품 등을 혼합해 고수익을 좇는다. 이와 구별해서 사모펀드(PEF)는 투자대상기업의 경영권 참여와 구조조정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올린 수익을 투자자에 나눠주는 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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