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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부모의 마음, 부부의 마음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부부관계를 비롯한 남녀관계는 당사자들 말고는 잘 모를 일이 꽤 많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다. 그래서 TV에 나오는 연예인 부부들이 지나치게 다정하게 굴거나, 반대로 카메라 앞인 데도 너무 허물없이 행동하면 불편한 느낌을 받곤 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에도 좀 걱정스러웠다. 주인공인 노부부의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 커플 못지않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듣던 대로였다. 산골에 사는 이 노부부는 색깔을 맞춰 고운 한복으로 ‘커플룩’을 입는 것은 기본이요, 마당의 낙엽을 쓸다가도 서로 낙엽 더미를 던지며 장난을 치는 게 일상이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98세, 할머니는 89세로 무려 76년을 해로한 사이다. 그 세월을 불현듯 실감한 건, 다큐 중반에 노부부가 여러 자녀들 중에 어려서 제대로 입히지도 못하고 일찍 떠나보낸 아이들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는 대목이었다. 사실 한 세기 가까운 이들의 삶 중에서 다큐에 담긴 건 촬영 기간으로 1년 남짓, 상영 시간으로 86분 분량이다. 그래서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을 더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나이로 추정컨대 이들의 76년 결혼생활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어왔을 건 당연지사다. 그 험난한 시대를 떠올리는 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희로애락을 함께했을 두 사람의 소꿉친구처럼 정겨운 모습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노부부를 혹시라도 지금 시대 부부생활의 귀감으로 삼으려 한다면 언감생심이자 어불성설이 될 터다. 요즘은 황혼이혼이 다반사인 건 둘째치고, 사회가 전문화·분업화되면서 부부도 각자의 삶을 서로 이해하려면 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모 노릇도 그렇다. 특히 학부모 노릇을 하려면 입시 전문가 수준의 정보력은 기본이고 가끔은 기업의 최고 경영진 못지않은 미래 전략이 필요할 정도다. 게다가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는 해도 결혼시기는 갈수록 늦춰지는 마당이다. 할머니 나이로 열네 살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함께한 이 노부부만큼, 그것도 의좋게 해로하기란 이래저래 힘든 일이다. 한데 머리로는 이런 온갖 현실적인 핑계를 떠올리면서도 마음은 이 노부부의 사랑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서로에게 ‘하오’체로 공대하는 말투, 그 말과 행동에 담뿍 드러나는 애틋함과 애정이 부부가 ‘평생을 함께한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이상적 형태의 하나 같았기 때문이다.



 이 다큐는 지난달 말 개봉해 2주 만인 10일 30만 관객을 넘어섰다. 저예산 독립영화, 그것도 다큐로는 이미 놀라운 흥행 성적이다. 앞으로 흥행이 더 잘된다고 해도 이 다큐에 등장하는 이들이나 그 가족들이 세간의 지나친 관심에 시달려 힘들어하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한다. 그게 이 사랑의 진경(眞境)을 카메라에 드러내준 이들에 대해 관객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본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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