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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수요사장단회의, 삼성의 미래 가늠자

10일 오전 7시50분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39층 회의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임원들이 곧 시작될 강성춘 서울대 교수의 강연을 기다리고 있다. 참석자 40여 명 모두가 계열사 사장과 그룹 팀장 등 사장급 이상이다. 이날 회의가 바로 삼성그룹 별들의 모임인 ‘수요사장단회의’. 이 회의는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올해 강연 주제 분석해 보니
위기극복·성장·혁신 주제 늘어
사물인터넷 등 경영에 반영도
진보 학자, 재벌 저격수도 초청
다양한 소리 듣고 사회적 책임 고민

 이 회의의 모체는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부터 시작된 ‘수요회’다. 초창기 수요회는 실질적인 의사결정 기구였지만 그룹 규모가 커지고 참석자가 늘면서 사장들의 ‘정기모임’ 정도로 느슨해졌다. 협의 기능도 거의 없어졌다. 그러다 2008년 ‘삼성 특검’을 계기로 ‘사장단협의회’라는 상설기구로 탈바꿈한다. 당시 이 회장이 물러나면서 사장단협의회는 약 2년 동안 그룹 경영을 이끄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다. 사장단협의회는 2010년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와 맞물려 ‘수요사장단회의’로 불리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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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 제외하면 한 번도 안 걸러



 회의는 1년 내내 여름 한 차례 휴가철을 제외하고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법이 없다. 심지어 지난 5월 10일 이 회장이 쓰러져 입원했을 때에도 나흘 뒤인 5월 14일 회의가 열렸다. 그만큼 삼성그룹 경영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다.



 회의는 1시간 동안 외부강사의 초청 강연을 듣고 이후 30분 동안 사장단이 토론을 하거나 의견을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학습을 통한 혁신’이 회의의 본체다. 최종 의사결정보다는 그룹 내 정보 공유나 현안에 대한 토의가 이뤄진다. 하지만 종종 이재용 부회장 등 수뇌부의 경영전략이나 의중이 전달되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입원과 스마트폰 사업의 실적 악화, 삼성테크윈 등 4개 계열사 매각 등 그룹 차원에서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끊이지 않아 이 회의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매번 초청강연이 이뤄지는 건 이 회장의 지론이 영향을 미쳤다. 이 회장은 평소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그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직접 강의를 듣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 진정한 혁신은 지식에서 나오고, 최고경영자(CEO)라면 다양한 지식이나 주요 이슈, 경영트렌드를 학습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지론이다.



 이런 이유로 삼성 미래전략실의 전략1팀은 해당일로부터 최소한 한두 달 전부터 시의성·적합성 등을 면밀히 고려해 강연주제와 강사를 고른다. 수요사장단회의를 두고 ‘대한민국 경제의 바로미터’ ‘강연주제를 보면 삼성의 어제와 오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보인다’고 하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삼성의 수요사장단회의는 그 어느해보다 긴장감 있고 진지한 주제를 많이 다뤘다. 미래전략실 전략1팀을 총괄하는 김종중 사장은 “올해는 경영환경이 힘든 면이 있지 않나”라며 “사장단이 경영감각이나 위기의식을 유지하려면 강연주제를 고를 때 이슈나 상황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수요사장단회의 강연은 ‘혁신을 통한 위기극복’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분기 스마트폰 어닝쇼크(예상보다 나쁜 실적) 직후인 지난 7월 이호욱 연세대 교수는 ‘선도기업의 딜레마와 극복전략’이라는 강연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우량기업의 경영진들은 누구보다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무너지는 사례도 많다”며 “이는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파괴적 혁신, 지속적 혁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세계 1위이면서도 어닝쇼크를 피하지 못한 삼성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지난 10월 박남규 서울대 교수는 ‘새로운 경쟁법칙을 창조하자’란 주제로 삼성 사장들 앞에 섰다. 그는 “삼성전자 IM(IT·모바일) 사업부가 ‘시장진화의 법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돌직구’를 던지면서 “명품그룹 LVMH가 다양한 브랜드로 명품시장에서 성공한 것처럼 삼성도 ‘갤럭시노트4’ 등 개별 제품 차원이 아닌 브랜드 차원의 경쟁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 관계자는 “담당 부문장인 신종균 사장에겐 뼈아픈 말이었겠지만 많은 사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했다.



이건희 회장 “독서보다 강좌가 효과적”



 스마트폰 이후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주제도 자주 등장했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7월 ‘사물인터넷 시대의 넥스트 10년을 준비하라’는 강연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사물인터넷은 삼성전자가 ‘위기극복’을 위해 가장 역량을 집중하는 분야다. 최 교수는 “모든 기기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물인터넷 시대는 본격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 열 것”이라며 “삼성은 매출 우선 중심의 기업 운영에서 벗어나 애플의 아이폰처럼 매니어층을 형성하는 제품을 내놓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삼성은 최근 정기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소프트웨어 부문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강연주제도 ‘당장 써먹을 수 있도록’ 점점 구체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주제가 ‘저성장기의 경영전략’ ‘세계적 브랜드 구축과 관리’ 등 다소 광범위했다면 올해, 특히 하반기 기업경영 강연은 ‘온실가스 감축전망과 기업의 대응’(10월·윤진순 서울대 교수), ‘기업의 정보보안, 신 패러다임 및 대응전략’(11월·임종인 고려대 교수), ‘스타인재 영입 및 육성전략’(12월·강성춘 서울대 교수) 등으로 보다 정교해졌다.



 임종인 고려대 교수는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모든 것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보안위협이 인명 피해나 물리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보안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인텔·시스코·IBM·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삼성의 경쟁자들은 보안기업 인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며 보안 업체를 인수하거나 삼성 에스원의 자회사인 ‘시큐아이’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천했다. 당시 에스원 사장이었던 윤진혁씨는 즉석에서 “몇년 전부터 관련 부서도 만들었고 앞으로 창의적인 보안 인재를 많이 영입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진솔한 ‘외부와의 소통’은 올해 수요사장단회의가 다룬 특징적 주제 중 하나다.



 지난 9월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소설가 복거일씨의 강연 말미에 “앞으로 삼성이 나아갈 길이 뭐라고 생각하시느냐”고 의견을 구했다.



 이에 복씨는 “큰 조직은 관료주의와의 싸움”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조직이 커지면서 조직원들은 승진경쟁이나 내부의 역할에만 집중해 외부의 시각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면서 “관료주의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 뒤 조직을 쪼개거나 외부의 역량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삼성 내부에서도 조직 규모가 클수록 ‘잘 나가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깨지고 있다. 전에 없이 기업 인수(M&A)에 박차를 가하고, 최근 방위산업과 화학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등 ‘핵심역량 사업’에 집중하려는 모습 등이 이를 방증한다.



 삼성에 소통은 사업 외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해졌다. 국내 재계 1위 그룹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맞춰 삼성의 강연진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든다. 올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룬 강연도 5번 있었다.



 삼성은 지난 10월 1일 삼고초려 끝에 진보성향 학자로 꼽히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초청했다. 신 교수는 “삼성그룹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변방에 충실하는 것이 옳다. 창조는 변방에서 나온다”고 조언했다.



삼성식 학습경영·외부소통 창구 역할



 ‘재벌 저격수’라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강연도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삼성은 놀라운 경영 성과 때문에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변해서 스스로를 한국 사회 밖의 예외적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삼성의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강연 덕분에 삼성 안팎에선 “삼성이 변했다” “파격이다”란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강연 도중 사장들은 궁금한 점을 질문하기도 하고 의견이 다를 때에는 강연자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수요사장단회의는 사장들이 만나 업무를 조율하고 삼성이라는 유대감을 지키는 내부 회의체인 동시에 외부의 의견을 듣고 공부하는 중요한 소통창구”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기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한 삼성은 2015년을 ‘차세대 글로벌 IT 리더’의 입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수요사장단회의 역시 ‘삼성식 학습경영’과 ‘외부소통’을 실현하는 기구로 그 역할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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