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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0)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3) 장창국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한 학생들의 성분과 계급은 구구 각색이었다.
계급으론 중좌에서 하사관까지, 출신도 일군·만군·중국군등 갖가지였고 같은 일군안에서도 일본육사출신·학병출신·지원병출신등이 뒤섞여있었다.
1백10명의 군영출신 임관자들을 성분별로 나눠보면 일본육사출신이 12명, 학병출신이 72명, 지원병출신이 6명, 만군출신이 18명, 중국군출신이 2명이다.
당초 참여가 기대됐던 광복군계열이 불참하는 바람에 군영은 거의 일군출신, 그중에도 학력이 높고 수가 많았던 학병출신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정신적으로 국군창설의 주축이 됐어야할 광복군계열이 불참한것은 큰아쉬움이었으나 나중 광복군 국내지대장오광선장군(신흥무관학교출신·준장 작고)이 육사8기특별반으로 들어오고 중국군등에서 활약하던 김홍일(중국군소장·중장·작고) 송호성(하남군관학교·육사2기·준장) 장흥(황포군관학교·중국군대령·육사7특·소장·대한전선고문) 박시창(황포군관학교·중국군대령·육사3기·소장·대동공업고문) 장군등이 육사특별반이나 특임등으로 속속 국군에 참여, 새나라의 군대창설에 과거 모든 군사경력자들의 「대동참여」를 이롤수 있게됐다.
군영의 교육은 이같이 잡다한 요소를 한데 녹일만큼 충분한것은 못됐다. 설립목적 자체가 통역장교 양성의 「응급」적인 것이었고 이에따라 교과도, 교재도, 교수요원도, 시설도 엉성했다. 일종 간이학교라고나 할까. 대부분 일본군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라 영어를 갑자기 번역해 만든 우리말 구령이 서툴어 구령을 잊거나 일어구령이 튀어나오는등 웃지못할 광경도 곧잘 벌어졌다.
그러나 광복된 조국의 우리군대를 우리손으로 만들게 된다는 기대와 포부와 열의가 모든 이질적인 요소와 애로를 극복하고 우리들을 하나로 묶었다.
46년 1월14일 국군의 모체인 남조선국방경비대창설을 계기로 l월15일자 첫장교임관 이후 군영출신들은 최고대령(이응전장군·전일군대좌)에서 소위까지 계급을 받아 임관했다. 각지에 창설되는 경비대의 기간요원으로 국군의 주춧둘 노릇을 하게됐다.
군영출신 임관자 1백10명중 장성까지 진급한 사람은 절반이 넘는 68명이다.
그중에는 최고계급인 대장까지 오른분이 8명(이형근·정일권·장창국·.민기식·김종오·김계원·백선엽·김용배), 중장이 20명(양국진·최경록·강문봉·박병권·백인엽·김종갑· 함병선·정내혁·송양찬·강영동·박경달·이응준·최영희·이한림·민병권·최홍·김상복·장도영·김일환·최창언) 이며 군의 정상자리인 참모총장을 역임한 분이 13명(이형근·채병덕·정일권·최경록·민기식·김종오·김계원·최영희·백선엽·김용배·장도영·송윤찬·이응전), 합참의장이 7명(이형근·정일권·유재흥·백선엽·최영희·김종오·장창국) 이다.
우리 군과 정치에 큰전기를 이루는 5·16당시의 육참총장이 군영출신인 장도영장군, 합참의장이 김종오장군이었고 5·16후에도 김종오·민기식·김용배·김계원장군이 대를 이어 69년8월까지 육참총장을 맡았고보면 ω년대 후반까지 우리육군은 군영출신·수뇌진이 움직였다고도 할수있다.
군영출신들은 6·25당시 전쟁지휘의 중심역할을 맡았었지만 그후 다수가 군을 떠나 각계에 진출했다. 그중에는 현재까지 일선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다.
정일권장군은 예편후 주미대사·외무장관·국무총리·국회의잠등 관계와 정계에서도 정상까지 올랐다. 5·16후 내각수반·기획원·국방·외무장관을 역임한 송요찬장군, 중앙정보부장·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제3공화국 정치의 한 주역이었던 이후락, 주중대사를 거쳐 10·26당시 대롱령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전유정회의장 최영희장군등이 모두 군영출신이다.
군영출신장관으로는 박경원(내무·체신)·이응준(체신)·백선진(재무) 장도영(국방)·유극흥(국방)·최경록(교통)·박병권(국방)·정내혁(국방)·신상철(체신)·문병권(교통)장군등여러분이며 강문봉·김형일 문기욱장군등은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현재도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분으로는 국회의장 정내혁장군과 최경록주일대사, 강영열주영대사가 있다.
군영출신들은 임관후 진급도 파격적이었다. 건군의 초창기였던 탓으로 몇달새 몇계급씩을 진급하기도 했다.
국군최초 장성은 군영의 끝번으로 대령이 됐던 이응전장군이다. 48년12월15일 정부수립후 초대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하면서 준장을 달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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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