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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키운 파견근로법 16년 … 비정규직 600만 넘어

1998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요구한 첫 주문은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그때까지 한국에선 62년 제정된 직업안정법에 따라 비정규직 채용이 엄격히 금지됐기 때문이다. IMF 서슬에 김대중 정부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당시 이기호 노동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너무 엄격하게 근로자 보호 쪽만 강조하다 보면 일자리 창출이란 순기능이 침해당할 수 있다 ” 고 국회를 설득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파견근로자법은 여야의 졸속 절충으로 애초 취지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윤색됐다.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는 업종을 32개로 제한했다. 여기다 파견기간 2년을 넘기면 자동으로 정규직이 되도록 못박았다. 근로자 보호가 명분이었다.



한국 경제혁신 5대 과제 <1> '인맥경화'부터 뚫자
기업들 2년 마다 교체, 근로자 보호한다는 법 취지 무색
정규직은 노조 앞세워 기득권 … "노동시장 경직화 주범"

 그러나 법이 시행되자 현실에선 엉뚱한 현상이 나타났다. 기업은 정규직을 늘리지 않기 위해 파견근로자를 2년마다 교체했다. 사내하도급이란 편법도 광범위하게 퍼졌다. 원청과 하청 업체 직원이 한 회사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벌어지는 역설이 나타났다. 그 사이 정규직은 노동조합을 앞세워 기득권을 계속 높였다. 채용과 직장이동이 신축성 있게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든 파견근로법이 거꾸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만 벌려놨다. 성균관대 조준모(경제학) 교수는 “파견법이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기는커녕 경직화의 주범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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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5월 타계한 미국 시카고대 게리 베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교수는 2008년 9월 “고용시장 경직성이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부의 규제는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문제의 근원이 됐다”고 진단했다. 올해 8월 말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는 607만7000명이다. 2002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뒤 6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이들의 처우가 괜찮으면 고용 형태는 문제가 안 된다.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55.8%에 불과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사회문제가 된 일본(정규직의 61.8%)보다 벌어졌다.



 비정규직도 실력을 쌓아 정규직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비정규직으로도 오래 일할 수 없다. 임금근로 일자리 1649만6000개 가운데 58.7%가 3년이 채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 국의 노동이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명 가운데 한 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1년 뒤 49.1%, 3년 뒤 69.9%가 정규직이 되는 네덜란드와는 딴판이다. OECD는 올해 한국보고서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지 말고,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를 줄이며, 비정규직에 대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돈을 풀어봐야 돈과 사람이 돌지 못한다. 정규직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다. 그렇다고 비정규직만 양산해선 가계가 소비를 늘리기 어렵다. 정규직에 대한 보호벽을 낮추는 대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게 시급한 이유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이미 이런 방향의 개혁에 착수했다. EU는 2008년 파견근로에 관한 입법지침을 내놨다. 정규직과 균등하게 대우하고, 대상업무와 허가조건 같은 규제는 뺐다. 고려대 박지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고용을 기피하지 않고, 근로자는 이직이나 이동을 겁내지 않게 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85년 파견법 제정할 당시엔 한국처럼 일부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했으나 99년 항만·건설·의료와 같은 일부를 제외하곤 제한을 없앴다.



 그러나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한국 노조는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다. 정치권도 노동경직성 강화에 한몫한다. 경영상 해고 규정을 강화하고,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계약직이나 파견근로자를 사용토록 하는 등의 법안이 국회에서 검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신규 채용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길도 더 좁아지는 파견법의 역설만 더 키울 뿐이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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