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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박근혜의 정면돌파?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리더에게 자기확신은 중요하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강한 확신 없이는 조직이나 나라를 이끌어 가기 어렵다. 하지만 자기확신과 사리판단은 별개다. 자기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분별력을 잃는다면 올바른 리더가 될 수 없다. 그제 당 지도부를 포함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61명과의 청와대 오찬 모임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특유의 자기확신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 이외에는 다 번뇌라는 강력한 자기확신 말이다. 박 대통령은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고 세계 속에서 신뢰받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나에게 겁나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겁날 일이나 두려운 것이 없기 때문에 흔들릴 이유도 없고 절대로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박 대통령의 마음은 진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 내가 하는 건 항상 옳다는 독선과 아집에 빠지는 건 곤란하다. 나는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왜 몰라주느냐는 노여움이나 원망으로 변질돼서도 안 된다. 진정성은 진정성이고 국정운영 능력은 능력이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절실한 것은 나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는 호소가 아니라 왜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는지 그 근본적 원인을 성찰하고 더 늦기 전에 문제를 바로잡는 분별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세상을 온통 시끄럽게 하고 있는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을 한마디로 ‘찌라시에나 나올 얘기’라고 일축했다. ‘근거 없는 일’이란 처음 표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찌라시’라는 음험한 단어를 직접 입에 올렸다. 세계일보의 청와대 문건 특종 보도 이후 언론이 쏟아내고 있는 각종 후속 보도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누가 보더라도 검찰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사실무근’으로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 꼴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한 일이다. 분별력을 의심케 하는 자충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시중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50대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국·과장 인사는 대통령이 하고 장·차관 인사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한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청와대 바깥의 두 비선 실세를 각각 등에 업고 청와대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불과 몇 달 전까지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을 지내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고위 공직자가 대통령 등에 칼을 꽂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야말로 ‘찌라시급’ 국정운영의 방증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검찰 수사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불법 유출된 청와대 문건에 적시된 바로 그 장소에서 비선 실세와 이른바 ‘십상시’의 모임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할 가능성이 99%다. 그걸 확신하기에 박 대통령도 정면돌파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휴대전화 통화기록 조회와 위치추적을 했더라도 차명 휴대전화를 사용했으면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당연히 나올 것이다. 제3의 장소에서 소규모 모임을 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 것이다. 한번 시작된 의혹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게 돼 있다. 종편까지 가세한 언론의 24시간 속보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덮는다고 완전히 덮어질 일이 아니다.



 문건에 등장한 3건의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중 2건은 이미 어떤 형태로든 현실이 됐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아직 현직에 있지만 이정현 홍보수석과 김덕중 국세청장은 올 들어 갑자기 교체됐다. 적중률 66.7%다. “문건 내용이 60% 이상 정확하다”고 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말이 사실상 맞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박 대통령은 당 태종의 ‘황금치세(黃金治世)’ 요체를 담은 『정관정요(貞觀政要)』를 탐독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충신들에게 비수 같은 직언과 고언을 권장하고 아프지만 받아들인 것이 당 태종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 주변엔 위징도 방현령도 두여회도 안 보인다. 둘 중 하나다. 제대로 안 읽었거나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나친 자기확신을 내려놓고 마음부터 활짝 열어야 한다. 최측근 몇 명에 의존하는 불투명한 인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계각층과의 폭넓고 진솔한 소통에 힘써야 한다. 대통령의 실패는 대통령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폐쇄적인 국정운영과 결별하지 못한다면 실패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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