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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적 합의 무시하고 해 넘기는 존엄사 법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말기 뇌종양에 걸린 미국 오리건주의 새댁 브리트니 메이너드(29)가 세상을 뜬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는 4월 시한부(6개월) 판정을 받고 치료를 거부한 채 처방받은 극약을 삼키고 숨졌다. 그는 죽기 전 하고 싶은 일을 정해 실행했고 마지막으로 그랜드 캐년을 여행했다. 메이너드는 “캐년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고 중요한 두 가지, 즉 가족과 자연을 맘껏 즐겼다”고 말했다.



 메이너드가 택한 길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의사 조력(助力) 자살(doctor-assisted suicide)이다. 극약 처방은 의사가 하되 약은 본인이 먹는 소극적 안락사다. 의사·가족이 독극물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euthanasia)와 다르다. 근거 법률이 ‘존엄사(Death with dignity) 법’이어서 존엄사로 불릴 뿐 한국에서 논의 중인 존엄사와 차원이 다르다.



 한국의 존엄사는 임종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인공호흡·혈액투석·항암제 투여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네 가지 행위는 현대 의학의 결정체다. 사망 시기를 석 달 이상 늦출 수 있다. 이런 게 없을 때는 편히 임종했는데, 지금은 억지로 연명(延命)해야 한다. 메이너드는 “항암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두피에 1도 화상을 입고 삶의 질이 사라진다”고 선택 이유를 설명했다.



 2009년 5월 대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한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도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328일 연명했다. 미국에서 임종을 앞둔 회생불능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담은 자연사법은 1976년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모든 주에서 합법화됐다. 한국도 지난해 7월 종교계·의료계·윤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연명의료 중단 도입에 합의했고 정부에 법제화를 권고했다. 97년 보라매병원 사건(뇌출혈 환자를 퇴원시킨 의사를 살인방조죄로 처벌한 사건) 이후 16년 만의 사회적 합의였다.



 그런데 1년 반가량 지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 의사 확인 절차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일부에서 “유언장·일기장에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정부가 멈칫거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생명윤리위원회가 가족 2인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환자 뜻으로 인정하기로 해 놓고 이를 무시한다.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이 시각에도 수천 명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고통스레 연명하고 있다. 이럴 것 같으면 사회적 합의를 안 한 것보다 못하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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