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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 "다른 소리를 듣는 사람"






깊어가는 가을 저녁, 길 위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금씩 다른 풀벌레 울음들이 어우러진, 어떤 음악보다도 맑고 깊은 소리의 길을 오래 걸었습니다. 어떤 소리가 제 마음에서 흘러나와 그 소리들에 섞이기도 했습니다. 미당 선생이 싱긋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시인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저는 시인이란 ‘다른 빛을 보고, 다른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랭보는 ‘견자의 편지’에서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길고 거대하며 논리적인 '착란'을 통해 '견자'가 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을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를 스스로 탐구하여 그 모든 독소를 자기 내부속에서 고갈시켜 그것들의 정수만을 간직하는 자"라고 정의했습니다. 시인이 시적인 순간에 미지의 세계에 닿을 수 있는 것도 영혼의 그런 연마 과정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미지의 세계에서 겪게 되는 인식의 도약이란 얼마간 환영과 환청 같은 ‘들림’의 상태를 동반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미당은 탁월한 견자였고, 누구보다도 잘 ‘들리는’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제가 타향인 광주에 살면서 조선대학교에 몸담은 지도 14년이 되어갑니다. 교정의 오래된 나무들 곁을 지나며 저보다 앞서 재직하셨던 시인들의 얼굴을 떠올리곤 합니다. 해방 직후 교가를 지었던 김기림을 비롯해 김현승, 서정주, 문병란, 김준태 시인들의 정신적 훈기가 아직 곳곳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미당은 한국전쟁때 전라도로 피난을 왔다가 1년 가까이 조선대에서 교편을 잡으며 남광주역 근처에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한 달에 급여로 ‘겉보리 열닷 말’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미당의 뛰어난 생활시편들이 이 시절에 씌어졌지요. 지금도 ‘무등을 보며’라는 시를 읽으면 무등산을 향해 걸어가는 미당의 서늘한 시선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자서전을 보면, 광주에 사는 동안 미당은 전쟁의 불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몸과 정신이 피폐하고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늑막염을 앓아야만 했고, 환청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미당은 그 환청을 “하늘에 울려 들려오는 내 의식과 딴 사람의 의식과의 교환에의 몰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그 후에도 오래 미당을 괴롭혔는데, 저는 그 환청이나 환상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 중요한 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몸으로 지불한 고통이 있었기에 미당 특유의 생생한 감각과 절묘한 표현들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시적인 것’을 발견하는 미당의 눈과 귀는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만, 그는 선천적인 재능이나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미학을 끊임없이 갱신해 나갔습니다. 제가 오래전 『질마재 신화』에 관한 석사논문을 쓰면서도 미당이 새로운 소재와 양식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산문시 양식으로 된 이 시집은 고향 질마재의 설화를 시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이야기꾼’을 화자로 내세워 연행의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 과거와 공동체적 과거를 결함시킴으로써 새로운 원형성을 제시하기 위한 적절한 형식적 선택이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또한 문어체로 된 ‘문자’보다는 구어체로 된 ‘목소리’를 활성화한 것은 구전되는 이야기에 걸맞는 어법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런 변두리 양식의 주류화는 이전에 그가 탐구했던 ‘신라’의 형이상학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마재 上歌手의 노랫소리”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를 명경삼아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 서 있”는 데서 흘러나와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게 울려 퍼집니다. 똥오줌 항아리와 선덕여왕의 황금팔찌 사이, 그 까마득한 진폭을 오르내리며 미당은 유유자적 놀다 갔습니다.

시인이 된 지 25년이 되었지만, 저는 아직 그런 여유나 자유의 한 자락도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했습니다. 미당의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되면 제 안에서도 능청스러운 ‘上歌手의 노랫소리’ 같은 게 흘러나올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 잘 보고 잘 듣겠습니다. 비록 그것이 환영과 환청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 미망의 길에서 뒷걸음질치거나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그런 두둑한 마음을 보태주시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이 상을 운영하시는 중앙일보사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를 늘 시인으로 존중해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가족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와 주신 모든 분들과 ‘다른 소리’를 오랫동안 함께 들어온 동료 시인들께 깊은 우정과 감사를 전합니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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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