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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BH 목장의 결투, 그 이후

강원택
서울대 교수
정치외교학
뭐라고 해야 하나. 잘 만든 흥미로운 정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BH 목장의 결투’라고 부를 만한 권력 내부 두 세력 간 다툼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죽어야 끝이 날 싸움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든 결국 최대 피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12년 만에 국회 예산안이 제때 처리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연금 개혁이나 경제 회복 등 중요한 국정 과제에 대통령이 힘을 쏟아야 할 상황에서 이런 기가 막힌 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박 대통령 5년 단임 임기 중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부터 내년 중반 정도까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분란의 타이밍은 무척 안타깝다. 그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국정 운영의 경험도 쌓였고 선거 등 정치행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모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에 전념해 볼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서다. 내년 후반이 되면 그 이듬해의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들썩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편한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굳이 지금이 아니라고 해도 이런 사건의 발생은 결국 시간 문제였을 뿐 불가피했을 것 같다. 예전 정부를 생각해 봐도 대통령이 소수의 비선 인맥에 의존하는 경우 이와 유사한 사건이 꼭 생겨나곤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일찍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은 그만큼 비선 중심의 폐쇄적 국정 운영의 정도가 이전보다 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세간에서 수군수군하는 말이 다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명목적 지위가 실질적 권력이 아니라는 말도 사실인 것 같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이 아니며, 더욱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정윤회씨나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 모두 어떤 공직도 맡고 있지 않다. 이와 달리 청와대 비서실장을 포함하여 수석비서관들이나 국무총리 혹은 장관이 이번 권력 투쟁에 연루되었다는 말은 별로 나오고 있지 않다. 결국 공식적 지위와 별개로 이른바 비선 조직이 인사 문제를 포함하여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실권을 휘둘렀던 셈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이 공식 직위와 무관하게 권력 행사의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유출된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누구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하든 간에 이번 권력 다툼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사실 걱정스러운 점은 검찰 수사보다 그 이후의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분란의 중심에 놓인 이들을 오랜 기간 믿고 의존해 왔다. 그들이 떠나야 한다면 그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남을 쉽게 잘 믿지 못한다는 박 대통령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이제는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소수의 비선에 의존해 국정을 이끄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수의 측근에게 폐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결국 대통령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 될 것이고 권력은 그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소외된 세력은 불만을 갖게 될 것이고 이번과 같은 분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권력 다툼이 생겨난 데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으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게 만드는 해결책도 결국 박 대통령이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 서류로 대신 보고하도록 한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짧은 분량의 보고서가 세상 인심의 흐름이나 사안의 절박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줄 수 없다. 더욱이 보고서의 전달 또한 그 통로를 틀어쥐고 있는 이들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선별과 왜곡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공식 라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참모와 각료뿐만 아니라 집권당 및 사회 각층의 인사들과 얼굴을 자주 맞대고 듣기 싫은 ‘쓴소리’를 포함하여 다양한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레임덕은 권력 외부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 주변에서 소리 없이 생겨나는 내부 균열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큰 위기다. 개방적이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통치 스타일을 변화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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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