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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고운지 쓰고 버리기엔 아까운 1회용

와사라(wasara和皿)를 처음 본 순간 놀랐다. 미술관 오프닝 파티의 분위기를 확 바꿔버린 덕분이다. 케이터링 서비스의 요란한 장식 없이도 격조와 품위의 접대가 가능했다.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과 와인을 담은 와사라의 일회용 종이그릇은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촉촉한 듯 매끄럽고 도톰한 감촉의 종이그릇 자체가 예술품처럼 느껴지긴 의외다. 투명 와인 글라스를 대신한 와사라의 종이컵은 낯설었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흰 접시에 담긴 음식을 나무 포크로 먹는 기분도 각별했다. 무심코 흘려버리기 쉬운 그릇까지 신경 쓴 작가의 눈썰미가 돋보였다. 감동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를 채운 정성의 확인이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7> 종이그릇 와사라

먹을 땐 몰랐다. 도톰하고 결 고운 그릇을 버리는 순간 아까운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좋은 그릇을 한 번만 쓰고 버려도 되는 건가? 풍요의 시대에 이런 반성의 마음이 든다면 다행이다. 환경과 미래의 문제를 어렴풋이 의식하고 있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전시 오프닝 파티는 인상 깊게 마무리됐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전시의 내용보단 파티의 그릇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속내를 감추지 않겠다.

유목민 생활서 힌트 얻어 전통을 재창조
와사라는 전통 일본문화를 현재에 되살리는 일에 관심 많은 오가타 신이치로(緒方 慎一郎)의 작품이다. 도쿄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가진 사업가이자 디자이너로 와사라 제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맡았다. 여기에 국제 감각의 패션을 전공한 브랜드 프로듀서 타나베 미치요(田辺三千代)가 합세했다. 이쯤되면 이들이 만들어 낼 물건의 성격과 방향이 짐작된다. 제 나라 전통의 재창조가 세계에 어떻게 통용될지 아는 친구들은 당돌했다.

분야가 다른 전문가들의 결합은 시대의 필요를 정확하게 읽었다. 늘어나는 1인 가구와 연일 이어지는 파티에 주목했다. 어쩔 수 없이 일회용 그릇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란 얼마나 많은가.

단 한 번의 쓰임마저 아름다움과 기품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렸다. 손에 쥐어지는 종이의 질감은 그대로 두고 미소를 닮은 형태를 떠올렸다. 기존 일회용 그릇의 얄팍함을 버리고 일본 문화가 강조하는 선의 간결함을 끌어들인 디자인은 훌륭했다. 종이의 가능성은 지금도 진화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종이의 품질과 독특한 질감은 정평 있다. 최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전통 종이 ‘와시’(和紙)부터 온갖 종류가 다 있다. 일본의 유명 아티스트와 생활용품 제작자들이 이를 흘려버릴 리 없다. 종이로 만들어지는 섬세하고 다양한 작품과 물건들이 그 흔적들이다.

일본인들의 종이 사랑은 각별하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일본의 종이 작품이 있다. 누구나 들렀음직한 일식집 천장에 매달려있는 둥근 조명등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만든 디자인이 아니다. 세계적 디자이너 이사무 노구치(野口勇)의 걸작으로 누가 봐도 일본인들의 정서와 미감을 공감하게 된다.

오가타 신이치로는 종이 소재를 그릇으로 써야 하는 한계의 접점을 고민했다. 종이로 만든 그릇은 내부에 비닐 코팅을 하지 않는 한 액체를 담을 수 없다. 누구나 다 아는 기존 상식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분해되는 데 100년 넘는 세월이 걸리는 일회용 그릇의 환경 파괴도 참지 못했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 했다. 간단해 보이는 일은 모순의 조건들로 복잡해졌다.

용기의 방수 능력은 펄프의 밀도와 두께로 해결했다. 비닐 코팅하지 않은 와사라 컵은 놀랍게도 하루 정도 지나도 물이 새지 않는다. 버려지면 바로 썩어야 했다. 이런 환경친화적 종이의 원료는 버려지는 갈대와 대나무에서 얻었다. 오키나와에서 재배되는 사탕수수 찌꺼기인 ‘바게스’또한 기존의 목재 펄프를 대신했다.

나는 몽골을 17차례나 드나들었다. 몽골의 사계를 두루 겪었고 동서 2000km의 너른 땅을 둘러보았다.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유목민들의 삶은 경이롭게 다가왔다. 세상의 땅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깨끗한 삶의 방식 덕분이다. 그들은 쓰레기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방목한 가축들은 식량이 되고 가축의 대변까지 알뜰하게 연료로 쓴다. 양과 염소, 말이 풀을 먹고 소화시킨 찌꺼기인 대변은 양질의 펄프다. 자연의 순환에선 모습만 달라질 뿐이다.

오가타 신이치로의 아이디어는 유목민의 생활에서 얻은 힌트다. 체험보다 더 좋은 선생은 없다. 종이의 아름다움을 버리지 않고 물을 담아도 새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웠다.

1회용 속에 숨쉬는 도자기의 감각
와사라의 진가는 기능과 아름다움의 동거다. 손에 착 감기는 듯한 형태는 요즘 유행하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연장선으로 보는 이른바 ‘인간공학적 디자인(Ergonomics Design)’을 실천한다. 컵은 도자기의 선을 유기적 흐름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접시는 기존의 둥근 형태를 벗어버렸다. 자유로운 성형이 가능한 펄프의 특성을 다양한 굴곡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해진 까닭이다.

일회용 그릇의 거부감은 어쩔 수 없다. 멀쩡한 물건을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죄책감 때문이다. 내 작업실 비원엔 가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커피라도 끓여 이들을 환대해야 도리다. 난감하지만 와사라 일회용 컵을 꺼내놓아야 한다. 커피가 담긴 잔을 보고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누가 만든 거예요?” “멋있어요.” “어디서 살 수 있어요?”

반응의 90%는 당연히 여인들이다. 이들의 감탄이 싫지 않다. 일회용 컵이라도 마음을 다한 정성이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좋은 디자인의 물건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알고 있는 이 가운데 몇 명은 와사라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씻어서 다시 사용하느냐고? 그건 아니다. 그들의 와사라는 전등이 되고 벽에 매달려 자신만의 예술품으로 변신했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때 필요는 확산된다. 나뿐만이 아니다. 되짚어 보니 독일 뉘른베르크의 행사장에서도 와사라를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유럽의 디자인 회사 제품인 줄 알았다. 훗날 알고 보니 2008년부터 와사라는 유럽에 진출했다.

와사라를 보면 은근히 배가 아프다. 전통 한지의 우수성을 외치면서 국제적 공감을 이끌어낸 종이 제품 하나 만들지 못한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다. 배가 아파야 옳다. 아픈 배를 치유할 방법이 찾아질 테니.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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