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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보는 세상 우리 삶은 가면 무도회

뭇여성들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란 궁극의 판타지다. 30~40대 여성들의 소녀시절 필독서였던 이케다 리요코의 순정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1972) 탓이다. 이 ‘순정만화의 전설’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로코코 시대의 극도로 화려한 비주얼과 페르젠 백작과의 금지된 사랑 등 소녀들에게 공주병 판타지를 굳건히 확립하고 모든 대하 역사 로맨스물의 기준이 됐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샤롯데씨어터

그런데 2006년 개봉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그녀를 보는 시선이 좀 달랐다. ‘비주얼 영화’라고 불릴 만큼 18세기 프랑스 왕실의 화려함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도 왕비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한 여인의 외로운 삶을 집중조명했다. 지금 연말 공연 시장을 달구고 있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2015년 2월 1일까지)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갔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엘리자벳’ ‘모차르트!’의 미하엘 쿤체, 실베스타 르베이 콤비의 작품이라 빈뮤지컬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들이 창작진으로 참여한 일본 창작뮤지컬이다. 일본의 대문호 엔도 슈사쿠의 소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981)가 원작으로, 2006년 초연 당시 25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2009년과 2012년 독일에서 공연돼 ‘유럽에 라이선스 판매된 최초의 일본 뮤지컬’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르베이 작곡인 만큼 ‘Enough Is Enough’ ‘Turn, Turn’등 강렬하거나 감미로운 중독성 멜로디가 호사롭게 귀에 감긴다. 한국 공연을 위해 이전에 공개된 적 없는 새로운 넘버를 9곡이나 추가해 마리 앙투아네트의 극적인 인생을 더욱 다채롭게 채색한다. 옥주현·김소현·차지연·윤공주 등 최고의 실력파 여배우들이 펼치는 팽팽한 한판 승부도 볼만하다.

무대는 18세기 프랑스 절대 왕정의 상징 베르사이유의 호사스러움을 충실히 반영했다. 가면무도회, 왕비의 침실과 전원 별궁 등 수십 회에 달하는 장면 전환이 마치 마리의 불안한 인생을 은유하듯 위태로운 각도로 기울어진 채 쉴새없이 돌아가는 회전무대로 완벽히 구현된다. 마리의 의상만 18벌에 달할 정도로 당대 로코코 양식을 반영한 드레스와 탑처럼 쌓아올린 가발의 향연 등, 근래 선보인 대형뮤지컬 중 가장 현란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하지만 비주얼이 이 무대의 미덕은 결코 아니다. 만화 속 판타지의 대상이었던 페르젠이 사랑이 아니라 경고의 역할로 등장할 만큼 로맨스나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 베르사이유의 화려함은 지저분한 파리 거리와 충실히 교차되며 향락에 젖은 귀족의 삶과 가난에 찌든 시민의 삶이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계급의 대립구도를 통해 역사를 치우침 없이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진지한 시도다. 그렇다고 ‘레미제라블’같은 혁명극도 아니다.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를 통해 가면을 쓴 인간본성과 진정한 정의에 대해 던지는 질문일 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거리의 여자 마그리드 아르노는 대립하는 계급을 각각 상징하는 존재다. 마리와 쌍둥이처럼 닮은 것으로 설정된 가공의 인물 마그리드는 ‘목걸이 사건’ ‘바렌 도주 사건’ ‘단두대 처형’ 등 친숙한 사건의 변수로 등장해 역사를 다시 보도록 매개한다. 혁명의 배후인 오를레앙 공작에게 매수당해 ‘목걸이 사건’을 날조하고 마리에 대한 온갖 추문을 퍼뜨린 장본인이지만 혁명의 위선과 공포정치의 잔인성을 목격한 뒤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회의하는 입체적 캐릭터다.

마리의 이복동생임을 암시하는 마그리드의 존재는 결코 ‘출생의 비밀’ 같은 1차원적 막장 코드가 아니라 마리의 분신에 해당하는 상징적 코드다. 마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신분을 떠난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확대경 같은 장치인 것. 그녀의 비중이 마리를 압도하는 것도 그들이 결코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만 보는 세상 껍데기가 전부…우리 삶은 가면무도회”라는 노랫말처럼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면을 썼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기 위한 세포분열인 것이다.

‘왕족이나 시민이나 비루한 인간인 건 매한가지’임을 보여주는 역사 돋보기가 혁명의 거룩한 정신을 왜곡시킨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하지만 고착된 이미지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는 것은 각종 문화 컨텐트의 최신 트렌드다. 차별화된 해석이기에 지금 공연되는 의미가 있고, 가장 판타지에 가까운 소재로 심오한 인간관을 논하는 반전이라 더욱 짜릿하다. 화려한 비주얼을 넘어서는 강력한 텍스트의 힘, 어쩌면 모든 성공 뮤지컬의 공식일 터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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