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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모든 권력을 거부하는 존재”

저자: 서경식 역자: 최재혁 출판사: 반비 가격: 1만8000원
저술가로서 서경식(63·도쿄 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씨 이름을 한국에 처음 알린 책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다. 1992년 창비교양문고로 초판을 찍은 이 책은 기존 미술 감상기와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서씨는 한국으로 유학와 있던 형님 두 분이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고, 그 충격으로 부모님을 잇달아 잃고 난 뒤였다. 누이와 떠난 첫 외국 여행길에서 유럽 미술관을 홀린 듯 돌아본 그는 작품들에 자신을 짓누르는 가족사와 시대 상황을 겹쳐놓는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의 ‘빈사의 노예’ ‘반항하는 노예’를 만난 그는 대리석 조각 앞에서 쓴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지상의 숙명에 묶여진 인간의 고뇌라느니, 육체의 어두운 뇌옥에서 벗어나 영원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혼이라느니, 그럴싸한 수사학이야 왜 없으랴. 하지만 그런 것을 쓰고 있겠는가. ‘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형들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한 서씨의 활동은 이후 펴낸 『시대를 건너는 법』『디아스포라의 눈』등 20여 권의 책에 녹아있다. 그의 삶이 책을 낳았으니 글은 그의 무기이자 고발장이며 세상을 향해 촛불처럼 치켜든 희망의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

신간 『나의 조선미술 순례』 또한 그가 견지해온 집필의 신념에 충실하다. 답보다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질문을 세워놓고 타자와, 혹은 자기와 끝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태도”로 ‘우리 미술’을 의심하는 자세야말로 생산적인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책 이름을 짓기 위해 무척 고생했다며 밝힌 저자의 제목의 변은 이러하다.

“‘한국미술’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쓰지 않은 이유는 ‘한국’이라는 용어가 제시하는 범위가 민족 전체를 나타내기에는 협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제는 미술이지만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말하자면 주류의 이야기에 대치하려는 ‘대항적인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한국’이라는 호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물론이고 재일과 재중 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모든 조선 민족에 의한 미술 행위를 ‘한국 미술’로 한데 묶어 부르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게 논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생존 미술가 신경호·정연두·윤석남·미희(입양 이름 나탈리 르무안)와 타계한 화가 이쾌대·신윤복은 이런 관점에 충실한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새로 인터뷰를 하지 못해 부록으로 붙인 홍성담·송현숙 또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향하는 있는가’를 치열하게 작품으로 보여준 이들이다. 현존 작가들과는 대담 형식인데 ‘우아한 미친년’ ‘긍지 높은 촌놈’ 같은 솔직 담백한 인물 표현이 사람과 미술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드러낸다.

서씨가 한국 민중미술운동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홍성담씨의 입을 통해 전한 말은 그가 기성관념에 칼집처럼 빗금을 그어가며 구분하려 의도한 ‘우리/미술’에 대한 한 단초를 제시한다.

“예술가는 원칙적으로 모든 권력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국가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술가는 오히려 허무주의자나 아나키스트에 가깝고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글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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