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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쿠데타 혐의 찾았나 … ‘양봉음위’ 거론하며 이례적 숙청

지난해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나란히 앉은 저우융캉 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왼쪽)과 시진핑 주석. [중앙포토]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이후 중국의 통치 구조는 집단지도체제다. 공산당 총서기를 겸하는 국가주석이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주석이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공산당의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이뤄진다. 13억 인구 중 정치국원은 25명, 그중에서도 상무위원은 단 7명뿐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상무위원 개개인이 갖는 권력이 얼마나 막대한지 어림할 수 있다.

사법처리 결정된 저우융캉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켜져 온 불문율이 있다. “한 번 정치국원이 되면 재임 중 비리 사실이 드러나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사형을 당하진 않고,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권력 핵심인 상무위원이 되면 모든 처벌을 면제받는다”는 것이다.

상무위원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통해 중국의 권력 이양은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어 왔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만 하면 이런저런 혐의로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거나 위기에 몰리는 한국적 현상이 중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다. 권력 최상층부의 부패가 공개되면 공산당 통치 자체의 기반이 휘청거려 공멸할 수 있다는 공통의 위기의식이 이런 불문율을 지탱시켜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불문율은 2014년 12월 1일을 기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과거 완료형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날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에 대한 당적 박탈과 검찰 이첩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미 비해 中 언론은 간단히 보도
이처럼 막대한 정치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을 전한 중국 언론의 보도는 의외로 간단했다. 대부분의 신문은 6일 자정을 기해 배포된 신화통신의 기사와 인민일보 평론원의 짤막한 해설 기사를 실었을 뿐이다. 저우의 혐의로는 ▶직무를 이용해 불법적 이익을 얻고 본인이 혹은 가족을 통해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 ▶직권을 남용해 친지나 정부(情婦), 친구에게 사업상의 이익을 도모해 줘 국유재산에 중대한 손실을 끼친 혐의 이외에도 ▶권력이나 금전으로 여러 명의 여성과 간통한 혐의 ▶당과 국가의 기밀을 누설한 혐의가 적시됐다. 하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육하원칙은 결여돼 있다. 저우에 대한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로이터통신은 그의 가족과 측근들로부터 최소 900억 위안(약 16조2000억원)의 자산을 압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항간에서 풍설로 나돌던 여성 편력도 사실로 확인됐다. 어느 날 갑자기 중국 국영방송 CC-TV 화면에서 사라진 미모의 여성 앵커들이 저우의 정부였다는 루머들이 올봄 중국의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이런 드러난 혐의 말고도 이번 발표문에서 특별히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 있다. “조사 과정에서 다른 범죄 혐의가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부패 혐의가 아닌 다른 혐의를 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은 드러나지 않은 저우 사건의 또 다른 본질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정변 기도설’이다.

북도 장성택 처형 때 ‘양봉음위’ 거론
중국 정가에선 저우가 시진핑(習近平)의 집권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기도하다 적발됐다는 사실이 꽤 오래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중국 언론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던 얘기다. 올봄 한 중국 국가기구의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 주석이 저우를 잡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시진핑이 1인자인 국가주석이 되는 건 이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인 2007년 17차 당 대회 이후 굳어져 있었다. 남은 문제는 다른 자리를 어떻게 갖느냐는 문제였는데,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 서기가 상무위원이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상하이방(上海幇) 세력이 그를 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우는 자기가 맡고 있던 정법위 서기를 물려줘 사법 및 공안 분야를 보에게 맡기고 싶어했다. 심지어 리커창(李克强)이 유력하던 총리 자리를 보에게 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런 구도는 보의 심복이었던 왕리쥔(王立軍)의 미국 총영사관 망명 시도와 뒤이어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살인사건 개입이 드러남에 따라 물 건너 가버렸다. 그러자 다급해진 저우가 서열상 군부 2인자인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결탁해 정변을 기도했다. 그들은 2012년 봄 허베이(河北)성에 주둔하고 있던 모 부대를 동원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실행 직전에 한 휘하 장교가 밀고하는 바람에 발각돼 버렸다.”

쉬는 수백억원대의 수뢰 사실이 드러나 지난 4월 당적이 박탈된 상태에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무렵 쉬가 동원하려 했던 부대의 구체적인 명칭까지 나돌았고 거사 날짜가 언제였다는 소문까지 번져 “뭔가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국의 공식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저우의 ‘다른 혐의’가 발견됐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다른 혐의’가 정변 기도임을 암시하는 단서는 함께 발표된 논평에도 등장한다. 인민일보 평론원은 ‘당의 통일단결’이란 표현을 두 차례 사용하며, “파벌을 모으는 행위에 결단코 반대하며 당내에서 어떤 형태로든 비공식 조직에 의지하는 일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봉음위(陽奉陰違)’도 용인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썼다. 양봉음위는 보는 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는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꼭 1년 전 이맘때 북한이 2인자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할 때도 이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일은 법원이 얼마나 무거운 형량을 선고하느냐의 문제다. 이 역시 공산당이 결정할 일이다. 삼권분립이 이뤄지지 않았고, 모든 국가 기구에서 당의 영도를 우선하는 원칙에 비춰 볼 때 실제로 저우의 판결문을 쓰는 건 공산당이라고 봐야 한다. 그 여파는 저우 개인의 문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저우에 대한 단죄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건 개인의 비리가 얼마나 심각한지의 차원을 넘어 중국이란 거대 국가의 권력 향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집단지도체제와 공청단·태자당·상하이방 등 다양한 정치파벌 간의 안배와 타협을 통한 권력균점, 물러난 전임 지도자가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정치의 전통 등 여러 관행들이 저우융캉 처벌을 계기로 바뀔 수 있다. 그 귀결점은 시진핑 1인 권력의 강화다.

후진타오 인맥 완전 제압할지 관심
시 주석은 2012년 11월 18차 당 대회에서 공산당 1인자로 선출된 직후부터 “호랑이와 파리를 다 때려잡겠다”고 강조해 왔다. 고위급이든 하위급이든 직위를 가리지 않고 부패와의 전쟁을 펼쳐나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로부터 큰 호랑이 저우를 잡기까지 만 2년이 걸렸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상무위원을 처벌하는 게 얼마나 지난한 작업이었는지, 얼마나 치열한 권력투쟁을 겪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저우가 장 전 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등의 후광을 입고 권력 기반을 다져 온 인물인 데다, 정법위 서기를 지내면서 수집해 놓은 전·현직 지도부에 관한 불리한 정보를 바탕으로 반격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저우의 재판과 함께 다음 호랑이가 누가 될지도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중화권 언론에서는 다음 타자로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공작부장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그의 형인 링정처(令政策) 산시(山西)성 정협 부주석과 동생인 사업가 링완청(令完成)이 먼저 체포된 것은 사정 당국이 아들과 동생을 먼저 잡아들인 저우 조사 때와 비슷해 보인다. 한때 상무위원 후보감으로도 거명됐던 링지화 부장에 대한 처벌 여부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후진타오 전 주석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그는 후 주석 시절 그의 비서실장 격인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을 지냈고, 후 주석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엘리트 간부였다.

따라서 장쩌민 계열인 저우와 쉬에 이어 후 전 주석의 측근인 링지화 부장까지 처벌한다면, 이는 전임 지도자들이 당·정·군의 곳곳에 남겨 놓은 세력들을 시 주석이 완전 제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공산정권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과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 이후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로 시 주석이 입지를 굳힐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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