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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외곽 실세 전횡 막을 방법이 없다”

‘정윤회 동향’ 문건유출 파문이 청와대 전·현직 참모 사이의 진실게임으로 비화됐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보고서 유출 파문] 전직 사정관계자 8명에게 물어보니

정권 출범 2년도 되지 않아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되고, 청와대 내부 문건이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는 왜 벌어진 걸까. 측근 비리를 차단해야 할 국가 사정(司正)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 걸까.

중앙SUNDAY는 역대 청와대에서 사정업무를 맡았던 인물 8명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점이 뭔지 분석해 봤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국가 사정 시스템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경험에 비춰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정권에 해(害)가 될 잡음을 미리 차단하고 내밀하게 움직여야 할 청와대가 오히려 갈등을 외부로 노출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이다.

정윤회 같은 특수관계인은 감찰 제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전제로 ‘특별감찰관제와 연계한 상설특검제도’를 공약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 공약에 맞서 내놓은 권력형 비리 척결 방안이었다. 특별감찰관이 고위 공직자나 대통령 친인척·측근 비위를 감지해 상설 특별검사에게 넘기면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권력형 비리 차단책은 ‘진공’ 상태다. 특별감찰관법과 상설특검법이 제정됐지만 연계성은 사라졌다. 특별감찰관이 포착한 비리 정황은 특검 대신 기존 검찰에 고발·수사의뢰하도록 했다. 감찰대상도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으로 축소됐다. 정윤회씨와 같은 ‘특수관계인’은 애초부터 감찰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그나마 공석이다. 지난 6월 법이 시행됐지만 임명되지 않고 있다. 상설특검 역시 특별검사와 수사팀이 상시 근무하는 ‘기구특검’ 대신 필요할 때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제도특검’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측근으로 분류됐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구속기소했던 대검 중수부는 사라졌다. 박 대통령이 공언했던 권력형 비리 차단책은 출발부터 ‘무딘 칼’이 됐다. 남은 것은 역대 정권에서 실패만 거듭했던 민정수석비서관실뿐이다. ‘도로 민정수석실’이란 개탄이 나오는 이유다.

중앙SUNDAY와 인터뷰한 전직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민정수석실의 한계에 대해 대체로 인정했다. 사법처리보다는 대통령 주변 인물의 위법한 권력행사를 막고 정권 보호 기능에 치중한다는 점에서였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이 최소한 비리 포착과 예방 기능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청와대 내부의 암투 의혹에 대해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정라인 감찰반이라도 제 역할 해야
전직 민정수석실 간부 A씨는 “민정수석실이 결정적인 권력형 비리 차단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은 언론에서도 많이 지적된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A씨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직동팀 같은 비선 감찰 조직을 폐지한 거라면 공식적인 감찰조직이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과 청와대가 파벌싸움이나 벌이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민정수석실 출신 B변호사는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같은 조직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면 대통령 측근들의 전횡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정적 권력형 비리를 차단하지 못했던 건 정권이 초심을 잃게 되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수석비서관, 산하 비서관, 행정관 등의 인선 과정이나 지휘체계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제도나 시스템보다 인적 구성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C씨는 ‘정윤회 동향’ 문건유출 파문에 대해 “정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C씨는 “사정 시스템 자체보다 (현 청와대 비서실 구성원의) 개인적 캐릭터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며 “현 정권 들어 인사검증, 대통령 친인척 및 주변 인물 감시팀 업무가 계속 바뀌었는데 이런 혼란과 개인적 캐릭터가 겹치면서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사정업무 경험이 있는 D씨와 E변호사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D씨는 “민정수석비서관은 사심 없이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고 권력 주변의 잡음을 단호하게 차단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며 “청와대 내에서 비슷한 감찰 기능을 하는 팀들을 조화시키고 일탈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D씨는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에 대해서도 한계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청와대 근무 뒤를 생각하는 사람이 사정 업무를 해선 안 된다”며 “(검찰에) 돌아간 후를 생각하는 인물은 이른바 ‘실세’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E변호사는 “윗사람 눈치 보지 않고 독하게 사정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늘 제도의 취지는 좋다. 상설특검과 ‘김영란법’만 잘 작동해도 권력형 비리 차단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정부는 권력의 누수를 막기 위해, 때로는 정권 보호를 위해 비선 감찰조직을 운영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 있었던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이 대표적이다.

사직동팀은 고위 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첩보수집, 때로는 야당 인사 사찰까지 이른바 ‘대통령 하명 사건’을 내사하는 역할을 했다. 수집된 첩보 가운데 범죄 혐의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나 대검 중수부로 이첩했다.

권력에서 자유로운 사정조직 고민해야
1997년 대선 당시 ‘DJ 비자금 수사’가 논란을 빚자 김대중 정부는 사직동팀을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직속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옷로비 사건’ ‘한빛은행 부정대출 사건’ 등으로 권력남용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 2000년 폐지됐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 기능은 김영삼 정부 때까지 청와대 총무수석실 소관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아들 현철씨의 전횡 논란이 일면서 민정수석실 산하로 이관했다. 이후 민정수석실은 친·인척 관리와 감찰 기능을 모두 갖게 됐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후 정권 역시 ‘비선 감찰조직’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권 보호에 앞장섰다. 2010년 민간인 사찰 사건이 발생한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인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졌고 당시에도 비슷한 사찰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행착오 끝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비선 감찰조직들은 모두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의 참모인 민정수석실에 관련 기능을 모두 맡겼지만 이번엔 내홍에 빠졌다.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한 법조인은 “살아있는 권력에 약하고 죽은 권력에 가혹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대검 중수부만큼 권력형 비리와 싸워 성과를 낸 조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검 중수부가 부활돼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국민만 바라보며 부정부패와 싸울 수 있는 ‘사정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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