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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억 비자금설' 밝혀져 재계 필독서 … 연예인 X파일로 된서리

찌라시라는 게 그렇다. 팩트와 루머 사이에 있다. 겉으론 그럴 듯하다. 하지만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경우엔 사람을 죽게 만들 정도로 치명적이다. 요즘엔 SNS를 타고 더 빨리 전파된다.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두고 청와대는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문건의 파문은 커지고 있다. 찌라시는 누가, 왜,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사설 정보지)에 불과하다.”

'정윤회 문건'으로 본 찌라시의 세계
유료 사설 정보지 10여 개 발간 중
구독료 월 20만~100만원 천차만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감찰보고서 관련 보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찌라시를 모아서 만들었다면 납득이 되겠느냐. 말도 안 된다”고 비난했다. 문건 작성에 간여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도 “아무 근거 없이 찌라시 내용만으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찌라시로 인한 사회적 이슈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번에는 청와대까지 찌라시를 언급하고 나섰다.



 이들이 말하는 찌라시는 무엇이며, 대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걸까.



 “찌라시 내용을 얼마나 믿느냐고요? 그냥 참고하는 거죠.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고.”



 “거의 소설이라고 봐야죠. 몇 가지 팩트(사실)를 그럴 듯하게 짜깁기한 내용이 많아요.”



 “저희 회사 이야기도 가끔 찌라시에 나와요. 그런데 너무 터무니없어서 웃고 말아요.”



  찌라시를 보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이다.



 뉴스와 루머 사이. 찌라시는 그쯤에 위치한다. 확인된 내용은 뉴스가 되지만 확인되지 못한 내용은 쓰레기로 남는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찌라시 등장 이후 그 부작용을 근절하려는 노력은 계속돼 왔다. 잘못된 정보가 불러오는 결과가 때론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찌라시의 생명력은 여전하다. 남보다 먼저,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근절되지 않기 때문이다. 찌라시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찌라시를 찾는다.



 ‘○○○○은 보호돼 있습니다. 문서 열기 암호를 입력하십시오’.



 지난 3일, 입수한 찌라시에 여섯 자리 암호를 입력하자 정치·검찰·경찰·경제 분야에 걸쳐 떠도는 소문이나 알려진 사실의 뒷얘기 40여 건이 들어 있는 30여 쪽짜리 문건이 화면에 나타났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폭로로 박근혜 대통령이 레임덕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전망’ ‘모 그룹 사장단 인사 임박’ 등 뉴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만한 소식부터 ‘정부 모 기관의 차기 기관장으로 ○○○씨 유력’ ‘모 기관의 고위직 ○○○씨가 튀는 행동으로 관심’ 등의 인사 동향도 들어 있었다. ‘모 기업, 자회사 매각 추진’ 등 뉴스로 확인된 사실도 적혀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 유료로 발간되는 사설 정보지 형태의 찌라시는 ‘○○○보고서’ ‘주간○○’ ‘○○○뉴스’ ‘CEO ○○○’ 등 10여 개다. 대부분 10~30쪽 분량이고, 정·관·재계를 아우르는 내용을 다룬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싼 것은 월 20만~30만원 정도이고 비싼 건 100만원에 이른다. 발간 주기는 주 1~2회도 있고 매일 나오는 것도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찌라시를 만들어 왔다는 한 찌라시 제작자 A씨를 만났다.



지난 2월 개봉된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찌라시 제작업자(정진영·오른쪽)와 도청 전문가(고창석·가운데), 자살한 연예인의 매니저(김강우·왼쪽)가 소문을 유포한 세력을 찾아내기 위해 도청하고 있다. [사진 CJ E&M]
 “정·관·재계와 언론계 인맥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직접 만나기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보를 받는 일이 많다. 주 2회 찌라시를 발송하는 데 우리 걸 베껴 싼값에 다시 파는 찌라시 제작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찌라시의 주요 수요처는 기업이라고 했다. “찌라시를 발송하고 나면 찌라시에 언급된 기업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불리한 내용일 경우엔 그 내용을 무마할 만한 내용을 다른 찌라시 업체에 제공하기도 한다.”



 또 다른 찌라시 제작자 B씨는 “연간 구독료는 500만~1000만원이고, 기업 경영자들에게 필요한 심층 리포트나 시중 정보를 매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의 술집 종업원 폭행사건을 찌라시를 통해 맨 처음 알렸던 인물이다. 그 일로 경찰이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B씨는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한 경제전문지 기자로 일하다 찌라시 제작을 시작했다는 그는 스스로를 정보분석 전문가라고 자처했다. “찌라시는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시중에 나도는 정보와 그 정보가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 앞으로의 전망을 코멘트해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찌라시 정보를 참고하는 건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위기 때 정보팀의 역할은 막중했다. 당시 한 대기업 정보팀에서 활동했던 C씨는 “당시 한 모임에서 대우그룹이 제일은행에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가 났다는 정보가 나왔다. 그 정보를 들은 한 금융회사는 당장 대우그룹 여신을 모두 회수해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정권 교체기는 정보팀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때였다. C씨는 “과거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기강을 잡기 위해 특정 기업 하나를 정해 망하게 하거나 곤란에 빠뜨리곤 했다. ‘이번 정권에선 어떤 기업이 그 표적이 될 것인가’를 미리 알아내는 것은 각 기업들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상업적인 사설 정보지 업체들이 등장한 것은 증권시장이 요동치던 2000년대 초다. 석사학위 논문 ‘기업 정보팀 유무에 따른 언론의 보도 태도에 관한 연구’를 쓴 이상휘 세명대 석좌교수는 “2000년대 초는 찌라시의 활용도가 가장 컸던 시기”라며 “찌라시를 이용해 역정보를 흘리거나 인사철엔 특정 인사를 의도적으로 띄우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찌라시를 통해 ‘흔들기’가 시작되면 기관장 자격 심사에서 탈락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탈락시키고 싶은 인사를 일부러 언급하는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005년 연예인 X파일 사건으로 번성하던 찌라시 업계는 철퇴를 맞았다. 한 광고회사가 거래처로부터 연예인 특징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아 작성한 연예인 99명의 사생활에 대한 문건이 찌라시 등을 통해 유출되면서 인터넷에 급속히 유포됐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법무부 장관, 정보통신부 장관, 경찰청장이 “사설 정보지를 통해 근거 없는 허위정보가 무분별하게 생산·유통되는 것을 막겠다”는 공동담화문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강경 대응의 배경에는 2004년 한 권력 실세에 대한 루머가 찌라시를 통해 나돌았던 사건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찌라시 제작자들의 활동도 위축됐다.



 찌라시 제작자 D씨는 “그 전엔 소문의 진위는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막 썼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조심하게 됐다. 요즘엔 명예훼손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십성 정보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요즘 SNS를 통해 급격히 유포되곤 하는 유명인의 가십성 정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2010년 스마트폰 등장 이후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SNS를 통해 유통되는 단발성 소문이 늘었다. 업계에서는 이 단발성 소문을 ‘쪽지’라 부른다. 쪽지는 주부나 학생도 만들어 유포할 수 있고, 전달 과정에서 첨삭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2013년 서울 성동구에 사는 주부 최모씨는 엄마들이 모이는 카페에 ‘여성 연예인이 성접대 리스트에 추가됐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이 유언비어는 카카오톡과 트위터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통됐으며, 해당 연예인의 고소로 최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하은수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1국 부국장은 “SNS로 전파되는 찌라시는 서버에 기록이 거의 남지 않는 데다 관련 회사도 협조하지 않아 출처를 찾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찌라시 제작자들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자체적으로 이런 쪽지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찌라시 제작업자는 “옛날엔 연예뉴스를 ‘명랑뉴스’라며 재미로 소개했는데 요즘엔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커지면서 경쟁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륜이나 이혼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쪽지의 유포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다. 최근에는 변호사 강용석씨와 한 여성 블로거가 해외여행에 동행했다는 내용이 일파만파 퍼졌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강용석씨는 “나이 마흔여섯에 스캔들 주인공이 됐다”며 웃었다. ‘가수 비 나체 사진’이라며 유포된 괴소문은 비의 고소로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태다. 한 기업체의 홍보 담당으로 일했던 양모(42)씨는 “ 요즘엔 SNS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찌라시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극적인 내용으로 눈길을 끌려는 유언비어나 루머가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개봉된 영화 ‘찌라시’는 찌라시에 나온 악의적 루머 때문에 한 여배우가 죽음에 이르고, 남자 주인공이 그 죽음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찌라시는 없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숨겨진 비밀이 많을수록, 남보다 먼저 그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다.



 그 대사처럼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찌라시의 형태도 바뀌어 왔지만 기본적인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찌라시의 세계에는 완전한 진실도, 완전한 거짓도 없다.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혜민·김민상 기자 acirfa@joongang.co.k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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