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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00년 전 조선 청년 "뉴욕은 산맥 같았다"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1916)에 실린 김동성의 삽화. 뉴욕 매디슨 거리를 묘사했다. [사진 현실문화]


미주의 인상

미주의 인상
유학생 김동성의 첫 한국인 영문책
처음 보는 미국의 풍경 생생히 담아

김동성 글·그림

김희진·황호덕 옮김

현실문화, 216쪽, 1만4800원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허헌·최승희·나혜석 외 지음

성현경 엮음, 현실문화

416쪽, 2만1800원




1909년, 김동성이라는 스무 살 조선 청년이 뉴욕 땅을 밟는다. 독일상선 ‘프레데릭 천왕호’를 타고 홍콩·싱가포르를 거쳐 이집트·이탈리아·알제리를 경유해 영국에 며칠간 체류한 후 미국으로 향하는 장장 2개월 여에 걸친 뱃길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런 조국, 그는 여행권을 구하지 못해 한 중국인 가족에 섞여 중국인으로 행세해야 했다. 낯선 나라 미국의 이민관 앞에서 기가 죽을 법도 한데, 그는 재치를 발휘한다. 이민관이 여행권을 요구하자 중국에서 쓰던 한문 여행권을 내민다. “읽을 수가 없다”는 이민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읽을 수 없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오.”



 이민관은 픽 웃더니 통역을 데려오라 한다. 그는 다시 답한다. “당신이 보듯 나는 외국 학생으로 지금 뉴욕에 처음 도착했으니, 통역을 쓰려면 당신이 부르셔야겠소.” 그렇게 무사통과. 이후 그는 회고했다. “아직 까다로운 이민법도 없는 좋은 시절이었다.”



 『미주의 인상』은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조선중앙일보 등에서 활약한 기자이자 국내 최초로 한영사전을 집필하기도 한 문필가 김동성(1890~1969)씨가 영문으로 쓴 책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동양인의 미국 인상기)』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미국 신시내티의 아빙돈 출판사(The Abingdon Press)에서 1916년 펴낸 이 책은 한국인 최초로 발간한 영문 단행본으로 기록돼 있다. 출판사 현실문화가 기획·출간하는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위 왼쪽부터 최승희가 1939년 파리에서 공연한 ‘보살춤’, 베를린에서 귀국 도중 배를 타고 지중해 관광을 하는 손기정. 아래는 화가 나혜석의 그림 ‘스페인 항구.’ [사진 현실문화, 손기정기념재단]
 함께 출간된 두 번째 책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는 1930년대 조선인에게 인기 있었던 대중잡지 ‘삼천리’에 실린 기행문을 모았다. ‘민족 변호사’로 불렸던 허헌(1885~1951), 일제 강점기 ‘한류스타’ 무용가 최승희(1911~69), 시대를 앞서간 화가 나혜석(1896~1948),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 등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지식인과 유명인사의 해외여행기가 담겼다.



 100년 전 조선인의 외국여행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모든 여행기의 첫머리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가족들의 눈물 섞인 당부를 들으며 배에 오르는 장면이다.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여행지의 풍경은 충격의 연속이다. 김동성은 배에서 “저기 뉴욕이 보인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도시가 어디 있다는 건가’ 의심했다. 처음 보는 그에게 뉴욕의 마천루는 그저 길게 늘어선 산맥처럼 보였던 것이다.



 1926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변호사 허헌도 20~30층이 넘는 웅장한 건축물이 늘어선 모습을 ‘가옥의 대(大) 삼림지대’라고 표현했다. “각국 인종이 웍작웍작 따라가다가는 웍작웍작 따라오며, 자동차가 까만 개미떼같이 늘어선 것과 바다와 육지에서 울리는 쇠망치소리, 기적 소리 등 동원령이 내려진 전쟁 지대가 아니면 상상도 못 하리만치 복잡다단한 모습을 솜씨 서툰 내 붓끝으로 그려낼 재주가 없다.”



  놀라운 것을 만날 때마다 조국의 현실과 친구들의 얼굴이 자꾸 어른거린다. 김동성은 미국의 대통령제를 보며 “나라의 최고 책임자를 4년마다 선출하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 평범한 옷을 입은 왕관 없는 왕인 대통령을 볼 기회가 없는 고국의 친구들에게, 교통경찰관이 속도 규정을 어겼다고 대통령을 잡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썼다.



 1937년부터 3년 동안 미국·남미·유럽 등에서 순회공연을 한 최승희는 “국제 무용의 제일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당당히 밝히지만, 한편으론 당시 미국에서 진행된 배일(排日) 운동에 연루됐다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는 데 여행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일제의 검열 때문에 여행기에 자신의 생각을 맘껏 밝히는 것도 불가능했다. 손기정은 여행기 서두에 “여러 사정(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 등)으로 오늘까지 침묵을 지켜오다가 이제야 여행기를 쓴다”며 올림픽 출전 길에 들렀던 모스크바·베를린·파리·나폴리 등의 풍경을 간결하게 소개하는 데 그쳤다.



 다른 세상을 보고 돌아온 이들의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특히 가부장적 사회였던 조선에선 누리지 못할 것들을 경험한 여성들에게 여행의 여파는 더 강렬했을 것이다. 화가 나혜석은 프랑스 여행 중 만난 최린과의 짧은 연애 때문에 귀국 후 이혼을 당하게 된다. 가족과 친구들의 냉대 속에서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은 그는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라고 썼다.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스웨덴에서 유학을 하고, 귀국길 인도에서 4개월간 머물며 여행기를 쓴 최영숙(1905~32) 역시 귀국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콩나물 장사를 하다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는데, 5개 국어에 능통한 엘리트 여성의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사망한 그가 임신 중이었고, 뱃속의 아이는 인도인의 피가 흐르는 혼혈이었다는 사실이 희대의 가십이 되어 조선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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