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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인 '트로트' 모은 『시경』 공자도 편집하며 흥얼흥얼했을까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중국문학의 정전(正典)이자 시가문학의 원조인 『시경(詩經)』이 고아(高雅)한 클래식이 아니라 주로 당시의 유행가, 지금으로 말하면 트로트(혹은 뽕짝) 가사를 모아놓은 책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시경』을 편집한 공자는 이 책을 안 읽으면 사람 구실을 못할 것처럼 그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사람으로서 ‘트로트’를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담을 맞대고 서 있는 것과 같으리라.(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歟)”(『논어(論語)』 ‘양화(陽貨)’)



정재서의 종횡고금 <29>

 후대의 유학자들은 더 강하게 나갔다. “귀신과 천지를 감동시킴에 ‘트로트’ 만한 것이 없다.(感天地動鬼神, 莫近於詩)”(『모시(毛詩)·서(序)』) 대충 이렇게 의역해도 될 듯싶은데 젊을 때는 이 말이 잘 납득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7080세대의 대학문화는 이른바 ‘데칸쇼’(데카르트·칸트·쇼펜하워)에 심취하거나 팝송과 통기타 음악이 주류였지 트로트는 저 멀리 있었다. 수준을 낮춰보는 경향까지 있었다. 어떤 이는 “이미자가 우리 음악을 몇 십 년 후퇴시키고 있다”라고까지 극언했다. 엘레지의 여왕에 대한 이러한 신성모독은 당시 대학생들이 우리 대중음악에 관해 얼마나 무식해서, 용감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종횡자(필자) 역시 같은 부류였는데 머지않아 공자님의 말씀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깨닫는 날이 왔다. 그것은 가족적인 큰 슬픔을 겪고 난 후였다. 대학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 되어 부모님이 갑자기 연달아 돌아가신 것이다. 제대로 모시지도 못했으니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것은 물론 돌연한 슬픔 자체를 이기기 어려웠다. 억울하고 슬프고 후회스럽지만 금생(今生)에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현실, 그것이 한(恨)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비탄 속에 지내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남진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나요. (…) 몸만은 떠나 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 오래 오래 사세요. 편히 한번 모시리다.”(‘어머님’) 그 노래를 듣는 순간 고아한 클래식과 세련된 팝송에도 꿈쩍 안 했던 마음이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 가사를 따라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새삼 트로트가 주는 감동의 힘을 실감했다.(물론 이 개인적 체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는 클래식으로, 누구는 재즈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종횡자는 그랬다.)



고대에는 신분제도의 한계, 성적 차별 등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지금 생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 곧 한이 더욱 많았을 것이다.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니체(F. Nietzsche)도 이와 비슷한 감정인 ‘르상티망(ressentiment)’을 말하지 않았던가. 공자는 인간 정신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그 감정을 잘 표현한 것이 일반 민초(民草)들의 유행가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을 이해 못하면 사람 구실 못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리라.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거리에는 흘러간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나 효도 디너쇼를 알리는 광고가 나붙는다. 그 광고를 보고 거리를 지나며 종횡자는 속으로 흥얼거린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유행가! 유행가! 서글픈 노래, 가슴 치며 불러본다. (…) 그 시절 그 노래 가슴에 와 닿는 당신의 노래.”(송대관, ‘유행가’) 오늘따라 돌아가신 부모님이 더욱 그립다.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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