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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자본주의와 창의성의 '잘못된' 만남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나는 이 칼럼을 런던에서 쓰고 있다. 이곳 런던에서는 주변 환경이 나쁜 곳에 위치한 7평짜리 스튜디오도 한 달에 한국 돈으로 150만원을 내야 한다. 지하철에서 교통카드인 오이스터카드(Oyster Card)를 한번 긁을 때마다 3000원이다. 아주 평범한 스파게티 한 그릇은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경영하는 식당에선 3만5000원(세금·팁 포함)이다. 이름 없는 식당에서도 3만원이다.



 최근 우리 어머니 친구의 아들(글자 그대로 그는 모든 의미에서 엄친아다)이 런던을 떠나 고향인 북쪽으로 돌아왔다. 그는 학교 선생님인데 수도 런던에서는 품위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간호사·경찰 같은 직업도 마찬가지다. 잉글랜드 서북부에 있는 맨체스터로 올라가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맨체스터에 사는 우리 부모님은 정원이 있는 좋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집을 팔고 런던으로 이사 간다면, 피폐한 동네에 있는 7평 스튜디오밖에 대안이 없다.



 런던을 특별한 장소로 만든 ‘성공을 위해 분투하는 창의적인 사람들’, 즉 예술가·디자이너·음악가들이 보기에 이제 분투는 참담하게 끝났다. 이제 런던에는 더 이상 ‘끌림’이 없다. 영국에서 가장 정평 있는 제도권 신문인 텔레그래프의 칼럼니스트들까지 런던의 소호(Soho) 지역이 ‘상업화’됐다고 한탄한다. ‘묘하게’ 부도덕하고 보헤미안적인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다 비슷하다. 체인 형식으로 운영되는 수퍼마켓·커피숍이 있고 비싼 레스토랑이 있 다.



 ‘필자는 빨갱이다’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있겠다.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가 아닌, 제대로 된 자본주의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기존 자원을 더욱 잘 활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상상력이 결여됐다. 소호에 술집이나 가게를 개장하려면 황당한 수준의 자금이 필요하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에 소호에 진출하는 것은 이미 성공 가능성이 입증된 그저 그렇고 그런 사업들이다.



 런던의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한국에서도 모험의 대가는 가혹할 수 있다. 연줄이나 재능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개업하는 게 아마도 ‘가장 덜한 바보’가 되는 길이다. 되도록이면 ‘착한’ 프랜차이즈를 만나 평균적인 시장수익률 정도로는 돈을 버는 것이다.



 나는 사실 좀 무모한 길을 갔다. 독립형 크래프트 맥주집의 공동 창업자가 된 것이다. 한 곳에서 시작해 맥주집이 이제 8군데다. 몇 가지 요인 덕분에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좋은 가격과 좋은 품질, 남다른 디자인과 레이아웃, 상당한 정도의 행운과 홍보 덕분이다. 우리들은 또 최근에 세계 곳곳의 비전(秘傳)이 내려오는 맥주 양조장으로부터 수입을 개시했다. 특히 덴마크 맥주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잘되고 있다.



 며칠 전 컴퓨터를 켜고 보니 우리에게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것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게 됐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쟁은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일전에 그 존재를 알게 된 술집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400평이다. 우리가 연 첫 가게보다 20배 더 크다. 게다가 소유주가 대기업이다.



 수년간 재벌들은 맥주를 무시했다. 대기업 술집에 대해 읽은 후 나는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당신네들은 5년이나 10년 전에는 크래프트 비어 분야에 진출하지 않았는지. 왜 우리와 똑같이 덴마크 맥주에 그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지.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험-보상 비율’이 대기업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푼돈’이지만 푼돈을 신나게 성장하는 새로운 시장에 던져놓고 보면 금세 시장점유율을 확 높일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창의성은 어디 있는가. 한국의 시장 환경에서는 대기업이 창의적이어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 또 어차피 뭔가 잘되면 대기업의 급습이 예상되기 때문에 소(小)기업인들의 인센티브 또한 줄어든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이건 런던이건 과연 어디서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겠는가.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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