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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갑질의 유혹

한비야
구호활동가·이화여대 초빙교수
지난 일요일 저녁,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시선을 끌었다. 식당 주인이 냉장고 수리기사들에게 몹시 심하게 구는 장면이었다. 큰 소리로 반말을 하지 않나, 무릎을 꿇리고 손찌검을 하질 않나, ‘평생 수리나 해먹고 살라’는 등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온갖 모욕을 참으며 일을 끝낸 기사들이 그 식당의 손님이 되면서 둘의 관계는 한순간 역전되었다. 조금 전까지 을이던 이들은 손님은 왕이라면서 식당 주인에게 당한 그대로 막말을 하고 외모를 조롱하고 뺨을 때리면서 신나게 갑질을 했다. 관중은 통쾌한지 크게 웃었으나 내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지만 이 시대의 ‘수퍼 갑’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행기 여승무원에게 자기 입맛에 딱 맞게 라면을 끓여 오라며 생떼를 부린 대기업 상무, 상습적으로 제자들을 성추행하는 대학교수들 ….



 나 역시 수퍼 을로 살았던 기나긴 시절이 있었다. 내 나이 19살,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클래식 다방 디제이, 보습 과외 선생, 관공서 임시 직원 등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다. 관공서에서 일할 때 직속 상사이던 주임이 나의 수퍼 갑이었다. 쥐꼬리만 한 ‘주임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며 모진 소리만 골라 하는 사람이었다.



 업무시간 내에 일로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6시에 일과가 끝나자마자 다음 일터인 서울역 근처 클래식 다방으로 날아가도 될까 말까 한데, 이 사람은 번번이 야근을 시키면서 “고졸인 주제에 클래식은 무슨 클래식이냐?”는 둥, 읽고 있는 책 표지를 보고는 “폼 잡기는. 네까짓 게 이게 뭔지나 알아?”라는 둥,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그렇게 일하면 뭘 하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얼굴 반반하게 가꿔서 나이 많은 사장님 재취로 가면 팔자 펼 텐데” 같은 폭언을 매일같이 들었다. 심지어는 나를 “야!”라고 부르며 서류 뭉치로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다.



 내가 “제 이름은 한비야예요. 이름 끝 자만 부르지 말고 ‘한비야’ 석 자를 모두 불러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화를 벌컥 내며 그렇게 말대꾸하면 당장 잘라 버리겠단다. 그 말이 너무 무서워 그 후 ‘야!’라고 부르면 그쪽으로 가긴 했지만 대답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임시 업무보조 고졸 여직원들을 야단치며 꼭 누구 한 사람을 울려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화장실에서는 수없이 울었으니 그 사람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매일 그가 가슴에 꽂는 비수를 맞으며 피를 철철 흘렸지만 차마 엄마나 언니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걱정할까봐.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둘 수는 더욱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저런 인간은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견디자. 이 고비는 넘어갈 것이고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이렇게 길고 모진 ‘을의 시간’을 보내서일까, 아니면 지금 직업이 난민 등 약자를 돌보는 일이라 그럴까? 나는 사람의 인품과 성숙도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가름된다고 믿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식당 종업원, 택시 운전사, 환경미화원, 아파트 관리인 등 아무 말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못마땅하고 가소롭기까지 하다. 다른 사람 얘기를 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이런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고픈 한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의 범위를 넘곤 하니까. 그러고 나면 곧바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휘두르는 나의 천박함에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들어서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가 딱 내 마음과 같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 집 돼지 같은 주인 년에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째 네 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만큼 적으냐…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해진다. 주말 개그 프로그램에서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언제나 갑으로만 혹은 항상 을로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을일 때 필요 이상으로 쩔쩔매는 것도 싫지만, 주어진 힘과 권한을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가혹한 갑, 재수 없는 갑, 부끄러운 갑, 그래서 초라한 갑이 되는 게 더 무섭고 싫다.



한비야 구호활동가·이화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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