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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할머니 수난시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예순 살 순이씨가 늦은 저녁 귀가했다. 그러나 불은 켜지 않았다.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 몇 가지를 꺼내 소박한 저녁을 먹는다. 그래도 불은 켜지 않는다. 저녁을 다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TV를 켜고 우두커니 앉았다. 역시 불은 꺼둔 채로.



 여기서 퀴즈. 순이씨는 왜 불을 켜지 않을까. 요새 도는 말에 따르면 정답은 ‘아파트 옆 동에 딸이 있어서’다. 시집 간 딸이 친정엄마 옆 동으로 이사 와서, 엄마 집에 불만 켜지면 쪼르르 달려온다는 것이다. 더구나 애를 데리고.



 “오죽하면 없는 척했겠니.” 이 얘기를 듣던 친정엄마는 아파트 옆 동을 흘낏 보며 말했다. 나는 그중 한 집을 가리켰다. “저기는 어떨까? 빈집 같은데….” 엄마의 눈이 흔들린다. 17개월 된 아들은 뛰어다니며 놀다가 갑자기 화분의 흙을 파서 던지기 시작했다. “이 동네 집 잘 안 나와. 요새 더 안 나온대.” 엄마의 목소리가 떨린다.



 오늘 아침 출근길엔 아이가 엉엉 울었다. 번쩍 들어 시어머니에게 안기고 나왔다. 어머니는 아이를 달래고, 먹이고, 재웠을 것이다. 그러느라 약속도 취소하시진 않을까. 하고 싶으신 걸 못하진 않을까. 모르는 편이 낫다. 친정엄마 말을 못 들은 체하고 근처 부동산에 연락처를 남기고 왔듯이 말이다.



 결혼과 함께 어른이 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독립도 한 줄 알았다. 이건 오만에 가까웠다. 아이는 스스로 낳았는데, 키우는 건 혼자 못하고 있다. ‘할머니’가 필요했다.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주위에 ‘별일 없는 할머니’부터 찾는다. 육아 도우미와는 별개다. 퇴근이 늦어진 날, 갑자기 출근해야 하는 휴일, 도우미가 갑자기 못 나오는 날에 아이를 맡길 할머니가 절실하다. 할머니는 종신제 도우미에다, 사랑도 무한대고, 5분 대기조라고 믿는다. 불만 켜지면 집으로 달려오는 딸이 괜히 된 게 아니다.



 그런데 최근 내 입맛에 맞는 조사 결과를 발견했다. 민간 기관 엠브레인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아이의 부모들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조부모가 양육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문항에 36.1%만 동의했다. 그런데 조부모들은 65.3%가 동의했다. ‘자녀를 돌봐줄 친가·외가 부모님이 없으면 맞벌이하지 않는 게 낫다’는 문항에는 각각 53.6%, 34.7%가 동의했다. 정리하면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맞벌이를 응원하고 있으며, 아이는 자신들이 보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는 뜻이다.



 자녀 육아가 고되면서 행복한 일인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손주 키우기도 그런 모양이다. 천국과 지옥의 범벅!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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