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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안 맞는 비싼 옷보다, 잘 맞는 싼 옷이 훨씬 멋지죠

미국 뉴욕을 주무대로 30년 넘게 패션계에서 일하다 ‘SNS 패셔니스타’가 된 닉 우스터. 서울 한남동한 카페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이 남자, 조금 수상하다. 키 170㎝가 안 되니 작은 편이다. 나이는 쉰을 넘겼다. 팔뚝엔 문신이 잔뜩이다. 깡총한 바지와 팔짱 낀 채 무표정한 얼굴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런 그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진짜 멋쟁이’, 유행 선도자’인 ‘패셔니스타(fashionista)’로 불린다. 추종하는 사람만 수십만 명이다. 그가 입은 옷, 먹은 음식, 돌아다니며 본 사물이 SNS에 등장하면 반응도 즉각적이다. 공감을 나타내는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 순식간에 1만 명을 훌쩍 넘는다. 미국인 닉 우스터(Nick Wooster·54) 얘기다.



50대 단신 ‘SNS 패셔니스타’ 닉 우스터

한국인에게 특히 인기가 많아 패션회사 LF에서 내는 ‘일 꼬르소’에선 올 가을·겨울용 상품으로 ‘닉 우스터×일 꼬르소’를 기획해 선보였다. 그보다 먼저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은 남성용 신제품을 출시하며 우스터를 모델로 내세우기도 했다. 20~30대 남성을 겨냥한 상품 ‘아이오페 맨 에어쿠션’ 모델로다. ‘닉 우스터×일 꼬르소’를 소개하려 한국을 처음 찾은 그는 “내 아담한 사이즈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며 웃었다. ‘SNS 패셔니스타’의 패션 스토리를 들었다.



우스터는 미국 중부 캔자스주(州) 출신이다. 여기서도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살리나(Salina)에서 고교까지 졸업했다. 가족 중에 누구도 패션 분야에서 일했거나 영향을 준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계가 다 아는 패션계 거물이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스터 자체가 브랜드”라고 했고, 패션 잡지 에스콰이어·GQ의 미국·영국판에서도 그의 관심사를 따로 독자에게 제안할 정도다. “5살 때 어머니가 사준 옷을 입기 싫다고 했다. 그때부터 패션에 대한 내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16살 때부터 입고 싶은 걸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네 돈으로 사서 입으라’고 하셔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곤 패션 상점에서 부업을 시작했다. 패션 진로의 첫 걸음이었다.” 방과 후, 방학 기간 등 짬 나는 모든 시간을 투입했다고 한다. 6년 동안 일하면서 그는 “양말 신는 법부터 흰 셔츠를 잘 입는 방법, 색상을 조화 시켜 옷 입는 것 등을 배웠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그는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배웠다. “패션 잡지 기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광고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졸업 후 광고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광고는 그가 가진 패션에 대한 열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옷은 만질 수 있는데 광고는 그렇지 못하니까”가 이유였다. 그는 아예 패션 분야로 진출하기로 결심하고 백화점 면접을 봤다. 중고교 시절 패션 매장에서 일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바이어가 되고 싶었지만 당장 자리가 없었다. 매장 직원부터 시작해 패션계에 본격 입문했다. 이후 바니스·버그도프 등 뉴욕 패션을 선도하는 백화점 바이어로 일했고, 미국 대표 패션 브랜드 ‘캘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 등에서도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의 이력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우스터가 ‘SNS를 통해 어느 날 유명해진 벼락 스타’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30여년 간 패션계 한복판에서 일하며 내공을 쌓은 실력자다.



“2010년 1월, 니먼마커스 그룹의 남성 패션 디렉터 자리를 제안 받아서 뉴욕으로 되돌아 왔다.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방황하다 복귀한 것이다. 그때 SNS가 유행이어서 계정 하나를 만들었다. 대개 오전 4~5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어느 날인가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사진도 있고 해서 시작했다. 첫 번째 사진 1장을 계정에 올리고 샤워를 하고 돌아오니 팔로어(추종자)가 1800명이 됐더라. 1시간만에 말이다.”



미국 주요 백화점 바이어로 세계 패션 현장 곳곳을 누비는 그의 모습을 엿보는 추종자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 사진에 전세계가 즉시 반응하는 시대다. 관심 가질 만한 대상이 스스로 제공하는 무엇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SNS가 성황이고.” 입 소문이 났고, 전통 미디어도 우스터 개인에게 관심을 보였다. 패션 잡지에선 SNS 붐을 타고 ‘찾아보면 좋을 SNS’로 우스터의 계정을 추천했다. 이런 식으로 그의 팔로어는 계속 늘어났다. 11월 말 기준으로 SNS ‘텀블러’에서 그의 팔로어는 60만 명에 육박한다. ‘인스타그램’엔 40만 명 쯤이다. “인스타그램에선 하루에 1000명 정도씩 늘고 있다”고 한다.



우스터가 한국 패션 브랜드 ‘일 꼬르소’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가을·겨울 상품의 카탈로그다.
우스터는 2012년 독립했다. 풍부한 패션계 경험과 SNS로 쌓은 대중적 인지도가 바탕이 됐다. 브랜드 자문과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 등이 현재 그의 일이다. 단신(短身)인 50대 패셔니스타의 스타일에 젊은이들이 관심 갖는 것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 문신 덕분에 젊은이들이 날 비슷한 세대로 여기는 것도 같고. 분명한 건 모두가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뭘 입느냐를 보는 건, 내가 어떻게 입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이니까.”



‘패셔니스타’와의 인터뷰, 상대인 기자도 그를 만날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의 스타일을 참고해 멋을 부려야 하나 생각했지만 어설프게 따라 해 우스워 보일까 싶어 평소 차림으로 우스터를 만났다. 그는 “좋은 선택을 했다. 옷이란 자신의 글씨체 같은 것이다. 바꾸거나 속이기 쉽지 않다. 패션에는 법칙이란 게 없다. 나만의 모습으로 입어야지 모든 사람이 같은 스타일을 해선 안 된다. 그럴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처럼 입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키도, 체형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같은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나. 다 같은 옷을 입더라도 누군 접어 입고, 혹자는 그냥 입고, 어떤 이는 잘라서 입는다.”



그는 비슷한 세대의 ‘아저씨’들이 멋쟁이로 보일 방법을 추천했다. “내 몸에 맞는 옷, 핏(fit)이 훌륭한 옷을 입으면 된다. 안 맞는 비싼 옷을 입는 것보다, 잘 맞는 저렴한 옷을 입는 게 훨씬 멋져 보인다. 잘 맞는 옷이 비싸 보인다.” 주로 기성복을 사서 입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옷’이 무리한 제안일 수 있다고 되물었다. “좋은 재단사, 수선쟁이를 찾아라. 특히 남성들이 자신의 체형보다 큰 옷을 입는 경향이 있다. 몸에 딱 맞게 입어라. 손목, 바지 길이에 신경 써서 수선하라.”



글=강승민 기자 quoiqu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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