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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올해의 단어는 '총체적 난맥상'

이규연
논설위원
매년 이맘때 올해의 검색어, 올해의 단어가 발표된다. 최근 네이버가 최다 검색어를 발표했다. ‘다음’이었다. 다음도 발표했다. ‘네이버’였다. 싱거운 개그 같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는 느낌이 다르다. 단어 하나로 생각의 빈 구석을 찾아내 찌른다. 올해는 ‘Vape’(베이프)를 꼽았다. ‘Vapour’(증기)나 ‘Vaporize’(증발하다)의 줄임말이다. 전자담배 자체나 ‘전자담배 피우다’를 뜻한다. 유해성 논란으로 대중화의 벽을 넘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 보급이 부쩍 늘어났다. 옥스퍼드는 “단어를 접할 확률이 2년 전보다 30배로 커졌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올해의 단어’는 뭘까. 세월호, 무상, 개조…. 요즘 분위기라면 십상시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을 2012년 ‘올해의 단어’에서 찾았다. ‘Omnishambles’(옴니섐블즈). 모든 곳(omni)과 혼란상태(shambles)의 합성어다. 총체적 난맥상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그해에 영국 정부가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자주 실수를 범하고 BBC가 정치인 성 추문 관련 오보를 내면서 이 단어가 유행했다. 2년 전 영국의 촌철살인이 올해에 우리에게 맞는 단어라니, 묘한 씁쓸함을 던진다.



 2014년 한국 사회 도처가 아수라장이었다. 자기만 살겠다고 침몰 선박에서 도망쳐 나온 선장을 봤다. 안전은 뒷전이고 제 배만 불렸던 기업가의 최후를 목도했다. 네 무상은 악이고, 내 무상은 선이라는 정치권을 목격했다. 청년세대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자기 노후만 지키겠다는 공직자의 목청을 들었다. 시장, 정부, 국회, 개인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게 느껴진다.



 연말에 벌어진 정윤회, 조응천 논란은 또 어떤가. 이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언론은 춤추고 공중어젠다는 요동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직 모른다. 명백히 아는 점은 최상위 공직에서 공공선을 저버리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권력만 추구했지 그 힘을 무엇을 위해 쓸지 고민해보지 않은 자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등 뒤에서 국정에 개입했다.



 총체적 난맥상의 토대는 허약한 공공성이다. 그 위에 경제와 정치, 복지가 작동하다 보니 외부 충격에 정당성이 흔들린다. 최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SBS가 공동으로 한국 사회의 공공성을 조사했다. OECD 33개국 중 33위였다. 이를 4개 구성 항목으로 보면 공익성 33위, 공정성 33위, 시민성 31위, 공개성 29위였다. 이런 낯 뜨거운 수치의 표출이 세월호와 십상시이자, ‘미생 신드롬’이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정의화 국회의장 초청으로 ‘위기의 한국 사회, 인성에서 길을 찾는다’ 세미나가 열렸다. 한 원로 사회학자(김문조 고려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그는 지금의 위기를 가치분열의 전개과정으로 설명했다. ‘수박과 호박’ 간에는 원래 우열이 없는데 이 차이가 차등이 되고, 차등이 단절이 되면서 위기로 치닫는다는 통찰을 제시했다. 전개과정의 개입요인으로 ① 불투명성 ② 불신 ③ 불공정성을 꼽았다. 바로 허약한 공공성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은 ‘흔적’ 가치다. 화려한 경제성장에 눈이 멀어 이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충격파만 전달되면 부실이 난맥상으로 전환되는 사회다. 2014년,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직성, 폐쇄성, 불공정성을 고쳐나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적어도 후진 공익성과 시민성을 솔직히 인정해야 새 출발이 가능하다. 2년 전 옥스퍼드가 던진 ‘Omnishambles’는 우리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올해의 단어는 ‘총체적 난맥상’이자 ‘총체적 난맥상의 발견’이었으면 좋겠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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