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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우울한 모스크바와 평양의 포옹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모스크바는 우울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데 설상가상으로 국제원유값이 올 상반기 배럴당 110달러에서 80달러로 폭락했다. 루블화 가치도 3개월 만에 23% 떨어졌다. 러시아 경제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이코노미스트 11월 22일자). 경제적 어려움보다 모스크바의 자존심에 더 큰 흠집을 내는 것이 외교적인 고립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러시아 부활의 큰 꿈이 유럽과 미국에서 돈키호테의 만용으로 조롱당한다.



 평양은 더 우울하다. 유엔에서 시작된 국제사회의 고강도 인권 압박이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최고지도부를 정면 겨냥한다. 북한은 유엔 총회 기간 중 이수용 외상을 보내 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을 막아보려고 그들 나름의 안간힘을 썼지만 인권결의는 총회를 거쳐 안보리 회부까지 가는 코스를 밟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만은 막을 수 있어도 그들의 인권 문제가 국제정치의 주요 의제에 오른 것은 불쾌하다.



 김정은의 특사로 노동당 비서 최용해가 11월 17~24일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우울한 모스크바와 더 우울한 평양의 뜨거운 포옹이다. 최용해는 모스크바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부터가 러시아의 특별한 북한 배려로 생각된다. 그가 가지고 온 김정은의 친서도 대통령 비서실이나 외무성을 통해 하지 않고 푸틴을 만나 직접 전달했다. 북한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국제기관이 재판·검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용해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 고위 관리들과 기업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러시아는 북·러 경제협력과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러 3각 경제협력에 적극적이다. 북한도 적극적이다. 한국만 이 핑계, 저 핑계 뒤로 빠진다. 남북한을 20회 이상 방문한 기업인은 한국에 구체적인 3각 협력사업을 제안하면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고는 감감무소식이라고 불평했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러 대화의 언론인 토론에 참가한 한국 언론인 11명을 만난 고위 소식통은 거칠고 날카로운 혀끝으로 한국의 비협조를 비판했다. (1)한국과 미국은 합동군사훈련과 요격 미사일 사드의 배치 계획으로 북한에 충격적인 강펀치를 휘두른다. 그걸 러시아는 묵과 못한다. (2)한국은 너무 높은 6자회담 재개의 조건을 걸었다. (3)3각 경제협력에 러시아와 북한은 준비가 돼 있는데 한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서 문제다.



 서울과 모스크바의 인식의 갭은 심각할 만큼 컸다. 어느 때보다도 한·러 협력이 절실한 시기에 모스크바에서 듣는 이런 파열음은 뜻밖이고 불편하다. 그가 한 말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것은 동북아시아판 헬싱키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발언이다. 헬싱키 프로세스가 실현된 1970년대 유럽과 오늘의 동북아 사정이 유사하다는 그의 전제는 과장됐지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동북아에 평화·안정을 가져오는 데 헬싱키 프로세스 같은 다자기구가 필요하다는 비전은 환영할 만하다.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묶을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과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의 북·러 경제협력과 남·북·러 3각 경제협력에 관한 기대와 구상은 구체적이다. 두 사람 다 지난달 24일 러시아 석탄 4만5000t이 하산에서 나진항을 거쳐 포항에 입항한 것은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첫 결실로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KTR(남북종단철도)과 TSR(시베리아 횡단철도)을 잇는 역사적인 사업의 첫걸음으로 평가했다. 동감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자든 3각이든 경제협력이 북한의 국내 사정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방해를 받고 후퇴할 수 있는 가능성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국 언론인들이 그 점을 지적해도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김정은·푸틴 회담이 성사되고 실질적인 북·러 경제협력이 강화·확대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북한에 러시아 같은 기댈 언덕이 있으면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고립무원의 절망감은 과격한 행동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러시아의 북핵 불용의 태도도 확고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유지에서는 미국이나 다른 기존 핵보유국들과 이해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도발을 견제하면서 대화의 장으로 등을 떠밀 수 있는 나라가 하나라도 있는 게 좋다. 3각 협력의 공동 추진이 북핵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라는 러시아 고위 소식통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김영희 대기자<모스크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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