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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 정치의 못말리는 통일망각증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 국회가 통일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십시오. 오히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얼마 전 통일 관련 모임에서 토론을 맡은 한 국회의원의 말이었다.

 최근 불거진 개헌 논의를 보면 그 국회의원의 진단이 맞는 것 같다.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정을 맡는 이원집정제식 개헌 논의 어디에도 통일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주요 정책에 있어 정부 부처 간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는 판에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면 정책 조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에 관료의 ‘줄서기’까지 더해지면 대통령파, 총리파로 나뉘어 권력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 만약 통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권력 다툼과 정책 갈등으로 기회의 순간을 붙잡지 못하면 통일이 되지 않거나 되더라도 혹독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통일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조율과 일관성 있는 추진이다. 그러나 이원집정제식 개헌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개헌을 한다면 통치권자의 정책 추진력을 강화시키고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행정부처 사이의 정책 조정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개헌이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다.

 독일 통일은 독일의 의원내각제에 힘입은 바 크다. 행정부의 권력과 의회 권력이 일치하는 의원내각제로 말미암아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 통일이라는 결단을 신속히 내리고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반면 러시아는 체제이행 초기에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옐친 대통령과 공산당 세력이 장악한 국회 사이의 갈등이 극심했다. 이 갈등은 결국 1993년 10월 옐친의 명령에 따라 군대가 탱크 등을 동원해 국회의사당을 포격하고 다수의 의원들을 체포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체제이행기 동안 러시아의 국민소득이 40% 이상 감소하게 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인의 통일망각증이 일과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의 행정부처를 세종시로 이전시킨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통일이 다가올수록 통치권자의 결단과 정책 결정은 신속하고도 정확해야 한다. 대통령과 최고 정책결정자들은 서로의 숨소리까지 느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결정을 내리고 이를 집행해야 한다. 이 중요한 결정이 한두 시간 이내에 내려져야 할 수도 있다. 특히 북한 급변 사태 시 남한과 북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경제정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골든 타임 동안 경제부처 장관이 서울로 가기 위해 허둥대야 한다면 그 기회비용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통일 이전과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세종시 소재 부처 공무원들이 서울을 거쳐 북한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면 그 시간의 기회비용은 얼마나 클까. 그리고 통일 이후에도 과연 세종시가 평양을 상대할 수 있을까.

 시장경제로의 체제이행기 동안 어떤 국가의 국민소득은 15% 이내 감소한 반면 다른 국가는 40% 이상 감소했다. 이렇게 경제성과가 벌어진 이유 중 하나가 경제 주체 사이의 거리(distance)다. 거리가 멀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증가해 경제 효율성의 핵심인 의사결정과 행동의 조정이 힘들기 때문이다. 세종시 이전으로 청와대, 국회와 행정부처 사이의 거리가 늘어난 만큼 통일비용도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통일이 급진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세종시 이전으로 초래된 통일비용은 훨씬 더 높아져 수백조원 이상을 허비해야 할 수도 있다.

 정치인의 통일망각증의 3탄은 보편적 무상복지다.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확대되고 복지제도가 선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복지제도를 나쁜 복지로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무상급식과 대학의 반값등록금이 그 예다. 아마 정치인들은 통일한국 전체에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남한 지역에는 선별적 급식을 해야 북한 지역에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북한 주민을 버려두고 대학교의 등록금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은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평등의식에 익숙한 북한 주민의 근로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선별적 복지가 바람직할 수 있다.

분단 70년 동안 우리는 말로만 통일을 원했지 실제로는 통일을 잊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제도를 바꾸려 할 때 이를 반드시 통일의 관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좋은 통일은 한국 정치의 통일망각증을 치료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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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