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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출 문화재 전재산으로 모은 사업가

일본 교토에 있는 고려미술관. 이 미술관을 설립한 정조문은 평생 일본 전역을 다니면서 떠도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다. [사진 최재용]


‘고려미술관’. 1988년 한 재일동포가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京都)에 설립한 한국 유물 전시 미술관이다. 교토 도심에서 버스로 30분쯤 떨어진 교외 시치쿠카미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예천 출신 재일교포 정조문씨
도자기 등 1700여 점 수집
타계 1년 전 교토에 미술관
지난달 고향서 사진전시회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소장 유물은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각종 도자기가 주류다. 100여 점은 명품으로 평가된다. 또 회화와 불상·금속공예·목공예·민속품 등 유물 17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 등 세계 유명 박물관에도 한국실이 있지만 고려미술관은 한국 문화유산만을 전시하는 유일한 해외 소재 미술관이다.



 경북도·예천군과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는 지난 주 예천문화회관에서 고려미술관을 설립한 고 정조문(鄭詔文·1918∼89·사진)을 알리는 미술관 유물 사진전을 열었다. 고인은 간송 전형필처럼 일본에서 평생 우리 유물을 수집하고 지킨 문화 애국자였다. 사진전은 생소한 정조문을 알리고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조문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가 고향이다. 1924년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부두 노동자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이 전부다. 재일 조선인으로 온갖 설움을 딛고 파친코와 무역 등 사업가로 성장했다. 그는 40대 때 교토의 어느 골동품상을 지나다가 우연히 17세기 조선 백자 항아리를 발견했다. 항아리의 자태에 푹 빠져든 그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집 한 채 값이 넘는 백자를 살 돈이 없자 매달 갚기로 하고 구입했다. 이후 일본 전역을 다니며 떠도는 우리 문화재를 하나씩 모았다.



 고려미술관 이사장인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 명예교수는 “고인은 괜찮은 물건이다 싶을 때는 손에 넣지 못하면 병에 걸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의 열병은 좋은 미술품이 탐나서가 아니라 일본인의 손에서 되찾겠다는 집념에서 비롯됐다. 미술관은 요즘 ‘보자기전’ 등 연중 4차례 특별전을 열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럼에도 고려미술관이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고인이 이념적으로 친북 성향인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몸 담았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맏아들 정희두씨는 “어머니 친척이 거의 이북에 산다. (남쪽) 고향은 아직 먼 땅”이라며 저간의 사정을 암시한다. 고인은 “남북통일이 되면 유물을 조국에 기증하라”고 유언했을 만큼 통일 조국을 염원했다.



 사진전 개막일엔 고려미술관 소장 문화재를 주제로 학술대회도 열렸다. 고려미술관을 찾아가 수장고까지 조사한 남권희 경북대 교수와 박천수 경북대 교수는 “16세기 담양 용천사 기록 자료와 신라 귀고리 등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사진전에 이어 최근 제작을 마친 다큐 영화 ‘정조문의 항아리’를 시·군을 돌며 상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고려미술관 유물의 지역 전시에 나서는 한편 고려미술관을 전진 기지로 삼아 일본에 소재한 경북 지역 문화재를 찾아내고 환수하는 데 앞장설 방침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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