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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시간을 낚아라, 지갑은 따라올 테니

그야말로 몰 전성시대입니다. 온라인쇼핑이나 홈쇼핑, 심지어 해외 직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소비트렌드가 국내 유통업체를 괴롭히는 와중에도 유독 몰만은 계속 생기는 추세입니다. 문만 열었다 하면 다들 몰려가니까요. 몰이 대체 어떤 매력을 작고 있길래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걸까요.

안혜리 기자




불황에 다들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백화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롯데백화점은 올 3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1.1%증가하는데 그쳤다. 현대백화점도 같은기간 1.7% 늘었을 뿐이다. 신세계백화점은 1% 감소하며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여기엔 한동안 주력 상품이었던 의류 판매가 감소세로 돌아선 요인이 크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백화점 밖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LF(옛 LG패션)가 지난달 백화점 측에 자사 여성브랜드 모그(MOGG)의 영업 중단을 통보한 건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백화점은 외국 유명 디저트나 지방 맛집을 유치하며 고객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한때 목 빠지게 백화점 입점만 바라보던 브랜드는 물론 백화점을 찾던 고객까지 몰(Mall)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인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로비엔 걷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개장 전 안전과 관련해 말도 많았지만 오픈 한 달 만에 360만 명이나 찾았다. 이날 5·6층 식당가는 모든 식당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20~30대 연인뿐 아니라 유모차 끌고 나온 가족 고객도 많았다. 다음날인 23일 오후 삼성역 코엑스몰도 비슷했다. 점심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테이스팅룸과 피에프창 등 여러 식당 앞에서 각각 열대여섯 명이 대기 중이었다. 코엑스몰보다 한 달여 먼저 문을 연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 지하 파르나스몰에 입점한 영국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는 10월 개점 당일부터 기대치를 넘어서는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코엑스몰에서 만난 직장인 김은수(29·서초동)씨는 “브랜드가 다양한 데다 매장 크기도 커 쇼핑하기 편하다”며 “맛집도 많아 꼭 살 게 없더라도 시간 보내기 딱 좋다”고 말했다. 주부 진선영(37·삼성동)씨도 “여기 오니 다 있다”며 “굳이 가로수길이나 이태원까지 안 가도 돼서 편하다”고 했다.

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몰링(몰에서 쇼핑과 여가를 즐기는 소비행태)에 나서자 유통업계 역시 앞다퉈 몰을 열고 있다. 지난 10월 7만7000여㎡(약 2만3300평) 규모의 롯데월드몰이 오픈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엔 코엑스몰이 2년여의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15만4000㎡ 규모로 문을 열었다. 앞서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운영하는 파르나스호텔은 호텔업계 최초로 파르나스몰을 열기도 했다.

한산한 백화점과 붐비는 몰, 차이가 뭘까.

몰은 고객 지갑을 빨리 여는 것보다 오래 몰 안에 붙잡아두는 전략을 쓴다. 온 가족이 부담없이 오래 머물 수 있어야 결국 지갑도 자연스럽게 연다는 계산이 깔여 있다. 단순히 매장만 빼곡히 배치하는 게 아니라 문화시설이나 휴식공간을 많이 두는 것도 이런 이유다. 사진은 공연을 보는 고객으로 가득 찬 타임스퀘어. [사진 타임스퀘어]

답답한 백화점, 탁 트인 몰

백화점은 일부 럭셔리 브랜드 편집매장을 제외하면 칸막이로 가로막힌 좁은 매장으로 가득 차 있다.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심지어 방화셔터 바로 아래에 매대 놓는 곳까지 있을 정도로 고객 동선만 제외하고는 촘촘하게 물건을 진열해 놓는 게 일반적이다. 다양한 물건이 모여 있어 편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마음 편히 둘러보기도 부담스럽다. 좁은 매장에 두세 명씩 서 있는 점원의 시선을 다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살 목적이 아니라면 쇼핑 좋아하는 여자라도 섣불리 발을 들여놓기 꺼려질 정도다.

양철승 부동산가치투자연구소 소장은 “전문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남성 고객 입장에서 나 역시 백화점에 들어서는 순간 압박감이 느껴져 오래 머물기 힘들다”며 “바로 이 점이 몰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이 백화점에 가면 빨리 나갈 궁리만 하지만 몰에는 얼마든지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몰 공간이 보다 여유롭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굳이 쇼핑을 하지 않아도 시간 보내며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코엑스몰은 리모델링으로 면적을 13만2000㎡에서 15만4000㎡로 16% 늘렸지만 입점 브랜드 수는 331개에서 300개로 오히려 9% 줄였다. 덕분에 휴식이나 문화 공간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매장 크기도 더 넓직해졌다. 규모가 코엑스몰 3분의 1 수준(5만 2892㎡)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무려 650개 브랜드가 들어가 있는 걸 감안하면 공간 차이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예컨대 의류 편집매장 비이커(BEAKER)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 파르나스몰 2곳에 모두 입점해 있는데, 크기는 3배 차이다. 비좁은 백화점에선 5층과 7층으로 나눠 각각 여성·남성 의류를 따로 팔지만 넓직한 파르나스몰에선 한 매장에서 의류와 액세서리 등 이 브랜드가 다루는 모든 품목을 판다. 고객 입장에서 특정 브랜드를 찾는다면 넓직한 데다 물건도 많은 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여의도 IFC몰 개발을 총괄한 미국 부동산개발업체 AIG코리안 안혜주 전무는 “매장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해당 브랜드의 모든 상품군을 보여줄 수 있어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젊은 고객에겐 특히 매력적”이라고 했다.

물건 파는 백화점, 시간 파는 몰

백화점은 철저하게 매출을 쥐어짜는 방식이다. 입점 브랜드 매출이 올라야 그만큼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이 조금만 떨어져도 금세 입점업체를 갈아치우는 것도 이런 이유다. 몰 역시 물건을 파는 곳이라 매출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몰은 백화점과 접근방식이 조금 다르다. 오랜 시간 고객을 붙잡아두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여옥경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다들 바쁘다보니 단순히 물건만 사기보다 함께 간 사람들과 그 공간을 즐기고 싶어한다”며 “몰은 바로 이렇게 시간을 구매할 수 있는 장소”라고 얘기했다. 김민 신세계전략실 수석부장은 이를 타임 셰어(Time Share)로 정의했다. 그는 “과거 유통업체는 월렛 셰어(Wallet Share), 즉 고객 지갑을 어떻게 여느냐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제는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이는 타임 셰어를 점점 중요하게 여긴다”고 전망했다. 파르나스몰 윤여양 팀장도 “백화점에 시간 보내러 가는 사람은 없지만 몰링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한번 몰에 가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며 “몰에 다양한 문화·체험 요소가 많은 게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미 2009년 조사(신세계)에서 몰 체류시간(3~4시간)은 백화점(1~2시간)을 앞질렀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에겐 몰만큼 시간 보내기 좋은 장소가 없다. 최근 몇 년새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이 크게 줄면서 외식 한 번 하기 쉽지 않지만 몰에선 편하게 쇼핑과 외식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백화점이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장점이다.

실제로 몰 안에는 영화관·서점은 기본이고 어린이를 포함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체험공간이 점점 늘고 있다. 롯데월드몰에는 도요타코리아의 자동차 전시공간인 커넥트투를 비롯해 일본 유명 쿠킹스튜디오 abc쿠킹스튜디오,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아이템을 마련한 도토리숲 등이 있다. 코엑스몰도 마찬가지다. 라운지P 바이 뽀로로파크, 카카오프렌즈샵, 건담베이스 등 가족 단위 이용객을 위한 체험형 브랜드를 여럿 입점시켰다.

여 교수는 “몰마다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꼭 만들어 다양한 공연을 상시로 연다”며 “요즘은 이런 볼거리가 없으면 사람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코엑스몰도 5개 광장 중 하나인 라이브 플라자에 계단식 공연장을 만들었다. 박문수 코엑스몰 본부장은 “누구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컬처 플랫폼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타임스퀘어를 운영하는 경방의 윤강열 타임스퀘어 영업판촉팀 차장은 “타임스퀘어 1층 아트리움에서는 매달 새로운 테마로 공연을 한다”며 “공연이 열리는 주말엔 평일보다 고객이 2.5배 더 몰려 매출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본다”고 했다.

반면 백화점은 쉴 공간 찾기도 쉽지 않다. 서점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은 2009년 서점을 아예 없애버렸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 가운데 책방이 있는 건 현대백화점 신촌·목동점과 롯데 청량리점뿐이다.

상위 1% 겨냥하는 백화점, 99% 타깃 몰

패스트패션으로 불리는 중저가 SPA 브랜드가 몰의 인기를 견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민 수석부장은 “타임스퀘어나 디큐브시티 등 2000년대 후반 등장한 몰에 유명 글로벌 SPA브랜드가 대거 들어간 게 사람을 끌어모은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윤여양 파르나스몰 팀장도 “경기 침체 지속으로 값비싼 브랜드 위주로 구성된 백화점보다 SPA브랜드가 많은 몰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이 지갑이 두툼한 VIP고객에게 점점 더 집중하며 후리소매(厚利小賣) 전략을 취한다면 몰은 정반대로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을 취하는 셈이다.

백화점은 상위 0.1% 고객에게 매출의 10%, 상위 1%에게 20%, 상위 10% 고객에게 60%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VIP고객의 매출 기여도가 높다. 점점 이들 눈높이에 맞추고 이들을 위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각 백화점들은 전보다 VIP등급을 더 까다롭게 관리하는 추세다. 그렇다보니 여기서 소외된 다른 고객층은 점점 몰에 몰린다.

백화점·영화관·아쿠아리움·쇼핑몰·서점 등이 모여있는 잠실 롯데월드몰. [사진 롯데월드몰]

맛집 강조하는 건 똑같아

최근 가장 두드러진 몰의 트렌드는 역시 식음업장이다. 코엑스몰은 기존의 유명 프랜차이즈·패밀리 레스토랑과 대신 이태원·가로수길·서래마을에서 이름난 맛집을 대거 입점시켰다.

사실 맛집은 최근 백화점도 정성을 쏟는 분야다. 다만 백화점은 매장 규모에 제약을 받고 계약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백화점보다 몰을 더 선호하는 F&B업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롯데월드몰과 코엑스몰에 잇따라 매장을 낸 피에프창 운영사 에렉스F&B의 황서현 팀장은 “다양한 세대와 취향을 아우르는 몰이 더 매력적인 장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형 몰, 어디까지 진화했나

국내 몰의 역사는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짧다. 그러나 이미 상당히 진화했다. 부동산개발업체가 건물을 우선 지어 분양하는 형태의 초기 몰은 생김새가 비슷했다. 일본 모리빌딩도시기획의 임승희 부장은 “기존의 한국 쇼핑몰은 2핵1몰, 즉 2개의 주요 상점을 잇는 거리에 상가를 입점시키는 기본 형태”라며 “하드웨어적으로는 몰 형태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백화점인지 쇼핑몰인지 컨셉트가 불분명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확 달라졌다. 세계 유명 부동산 컨설팅 회사가 설계 단계부터 참여한 영향이 크다. 파르나스몰이 이를 잘 보여준다. 원래 이 자리는 양복점과 보석가게 등이 입점한 전형적인 호텔 지하 아케이드였다. 하지만 도쿄 롯폰기힐스, 상하이 월드파이낸스센터 같은 굵직한 도심 개발 사업을 진행했던 일본 모리빌딩도시기획이 몰 설계부터 브랜드 구성, 매장 운영, 관리컨설팅을 맡아 프리미엄 캐주얼 쇼핑몰로 탈바꿈했다.

코엑스몰도 몰 디자인을 미국 겐슬러사에 의뢰했다. 겐슬러사는 지하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 채광과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여의도 IFC몰은 미국 부동산개발사인 AIG 글로벌 부동산개발기업이 총괄하고, 미국에서 27개 쇼핑몰을 운영하는 쇼핑몰 전문 기업 터브먼의 자회사 터브먼 아시아가 운영하고 있다.



송정·심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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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