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영희의 '멋대로 고른 책'] 불행한가요? 철학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철학을 잘 모른다. 서른 넘어 인생이 어디로 가나 싶어 조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철학을 공부하려면 일단 원전을 펼치라'는 많은 이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시작과 동시에 난독증 발병을 호소하며 포기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서다. 대신 어떤 이가 누군가의 사상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서 써내려간 글들을 좋아한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 직접 맛은 보지 않고,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먹방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상상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계속 군침을 흘리다 보면 언젠가 먹어볼 용기를 낼 수 있는 날이 오겠지(라고 믿고 싶다).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프레데리크 시프테 지음, 문학동네)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는 프랑스 고등학교 철학교사인 저자가 사상가 10명의 생각을 '슬픔'이라는 주제로 해석해낸 에세이다. 저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할 뿐 아니라 부정적'이라는 평을 듣는다고 고백한다. 서문에서 아예 "나는 어릴 때부터 유쾌한 자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며 "열광하는 자, 출사표를 던지는 자, 의욕에 불타는 자를 나는 멸시하는 눈으로 바라본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 배우는 본질적인 것은 전부 불행의 경험에서 온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 페르난두 페소아, 마르셀 프루스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미셸 몽테뉴 등은 이런 삶의 불행과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한 사람들이다. 니체는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라 했고,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항상 고통의 이야기다”라고 말했으며, 심지어 몽테뉴는 “우리 생애의 목적은 죽음이다”라고까지 했다. 철학자들의 실제 삶이 늘 환희에 찬 것이었다면 이런 극단적인 언설을 남겼을 리 있겠는가. 저자는 이들의 실제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그 안에 자신의 경험담을 녹이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시크하게 결론짓는다. "내가 이런 통찰력을 갈고 닦아 더 잘 살게 되지는 않았다. 기분 전환이 좀 됐을 뿐이다."



『바람난 철학사』(혼다 토오루 지음, 애플북스)
너무 우울해서 읽기 싫다고? 그럼 좀 웃어보자. 일본 '오타쿠 사상가' 혼다 토로우의 『바람난 철학사』는 박장대소하며 읽을 수 있는 드문 철학책이다. 이 책의 일본어 원제는 ‘인기 없는 남자들의 철학사(喪男の哲學史)’다. ‘모단(喪男)’이라는 말은, 한국의 ‘디씨갤’과 비슷한 일본 사이트 ‘2ch’에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인기 없는 남자’를 뜻하며 한국어판에는 ‘폭탄’으로 옮겨졌다. 일본 위키피디아를 뒤져보니 ‘모단’의 조건으로 이런 것들이 나온다.



1. 여성과의 교제 경험이 전무(이른바 '모태솔로')

2. 고백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

3. 애인 말고 친구인 여자도 없다

4. 진성동정(眞性童貞·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정)

5. 위의 사례에 맞지 않더라도 어쨌든 간에 인기가 없다 등등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프로이트에 이르는 인류의 철학사라는 게, 사실은 이성에게 처절하게 무시당했던 모단들의 끝없는 고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성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나 폭탄이기에 겪게 되는 괴로움의 수수께끼를 밝히려는 사색 활동이 철학으로 이어졌다는 거다. "애당초 현실이 만족스러운 자, 지금은 불만족스러워도 언젠가는 반드시 만족스러워 질 것이라고 믿는 자는 이 세계의 의미나 기원에 대해 묻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 따라서 현실과 세상의 의미를 굳이 탐구하려는 자는 모두 폭탄인 셈이다. 도저히 현실 속에 풍덩 빠져 적응하기가 힘드니까 한 발짝 물러서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묻는다. 내가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



그는 구체적인 사례로 인형에게서 여자의 이상향을 발견한 데카르트, 사랑에서 도망치기의 달인 괴테, 루 살로메에게 버림받고 자신을 신격화해 ‘초인’ 개념을 만든 니체 등 철학자·예술가들의 생애를 폭탄의 관점에서 돌아본다. 철학을 바깥의 세계(3차원)와 우리 머릿속 세계(2차원)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본 그의 통찰은 기발하면서도 논리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리고 저자는 외친다. "영혼에 상처입은 자만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있다. 폭탄 에너지는 상상력으로 변환된다. 그러므로 모든 폭탄들이여. 홀로 서라!!"



어떤가. 조금 힘이 나시는가. 그러니 우울하고 인기없다고 절망하지 말기로 하자. 당신은 철학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철학자 같은 거 안 되어도 좋으니 인기가 많았으면, 연애나 잘했으면 좋겠다 싶을 땐 이런 말로라도 위안을 삼아보자.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불안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공존해보려는 두 고독의 행복한 만남에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가는 느낌, 이별의 불안, 언젠가 찾아올 상실의 확실성이 지체 없이 끼어든다. (…) 사랑이란 불편한 삶의 가장 세련된 형태다."(『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229~230쪽)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