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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의 '고전적 하루'] 예술가 부부의 모범, 백건우 윤정희

김호정 기자의 '고전적 하루'
당신이 백건우ㆍ윤정희 부부의 팬이더라도, 함께하는 산책은 권하지 않는다. 좀체 앞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07년 여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이 부부와 산책을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가 열리던 때였다. “여보, 이리 좀 와 봐!” 피아니스트 남편이 영화배우 부인을 불렀다. 그럴 때는 무슨 일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나도 황급히 달려갔다. 백건우는 오래된 건물의 갈라진 벽에 돋은 새싹을 가리키고 있었다. “너무나 신비로운 생명 아니야?” 부부는 바닥의 물 웅덩이, 거기에 비친 하늘, 모든 것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아름답다. 예술가의 눈엔 세상이 이렇게 비치는구나. 그래도 오르지 못할 경지라는 게 있다. 바로 윤정희가 이렇게 외쳤을 무렵에 느꼈다. “인생이 너무나 아름답지 않아요?” 기다란 우산을 든 채 양팔을 벌리고 외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여기엔 음악이 배경으로 하나 깔렸어야 한다. 프랑스 샹송 쯤?



이 부부를 보면 구름 위의 삶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부부가 되는 운명도 믿게 된다. 윤정희는 타고난 길치다. 한번은 두 사람이 비행기에서 함께 내려 입국심사를 받으러 갈 때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윤정희가 승객 무리를 제치고 성큼성큼 앞서 갔다. 그러나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아무리 복잡한 길이라도 머릿속에 지도가 정확히 들어있는 백건우는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모든 승객이 ‘회군’하는 일이 일어날 때까지.



또 백건우와 인터뷰를 할 때면 윤정희가 조용히 쪽지를 적어 보낸다. ‘좀 크게 말씀하세요.’ 그러다 급기야 끼어든다. “그런 게 아니라, 정확히는 말이에요….” 말 그대로 둘이어야 완전한 부부다. 상대방이 못하는 일을 가장 잘한다. 한 사람은 말이 없고, 다른 사람은 달변이다. 내비게이션과 길치이기도 하다.



1976년 결혼해 거의 40년을 함께 살았다. 72년 윤이상 오페라 ‘심청’의 뮌헨 초연 공연에서 처음 만난 후 삶에서 예술을 떼 내본 적이 없다. 백건우는 클래식 음악의 영감을 오래된 영화에서 많이 가져온다. 윤정희는 남편의 모든 연주는 물론 연습까지 함께한다. 이렇게 서로의 장르를 동경하는 사이다. 어쩌면 예술을 평생 붙들기 위해 서로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백건우가 연주할 때마다 윤정희는 객석 맨 뒷줄에 앉는다. 다음 달 2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서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사람들에게 부부의 모범(환상? 신기루?)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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