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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김영희 대기자, 동방정책의 설계자 에곤 바에게 통일을 묻는다

독일 통일 과정의 90%를 차지했다는 동방정책의 설계자 에곤 바가 김영희 대기자에게 독일 통일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바는 줄담배를 피우면서 통일보다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홍영진 재베를린 예술사진작가]


에곤 바(Egon Bahr)는 독일 통일의 ‘원점’이다. ‘동방정책’이라는 용어와, 동방정책의 핵심개념인 ‘접근을 통한 변화’부터가 각각 그의 1957년과 63년 연설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그를 “브란트의 키신저”라고 불렀다. 바가 설계한 동방정책은 독일 통일의 레일을 깔아 전후 독일과 유럽과 세계사를 다시 썼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의 감동이 넘치던 지난 12일, 베를린 시내 사민당사 4층 그의 연구실에서 독일 통일의 1등 공신으로부터 독일 통일의 과정과 남북한 통일에 관한 통찰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것은 10년 이상 별렀던 감동적인 인터뷰였다.

미·중·일·러 참여 없는 남북통일은 어렵다





김영희=먼저 동방정책의 핵심내용인 ‘접근을 통한 변화’부터 묻겠습니다. 접근을 통해서 무엇을 변화시킨다는 겁니까.



 에곤 바=내가 ‘접근을 통한 변화’를 처음 밝힌 게 1963년 바이에른주 투칭의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였어요. 변화의 대상은 첫째는 동·서독 관계, 둘째는 베를린의 현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우리를 위해 베를린 장벽을 제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어요. 몇 시간이라도 서베를린 주민들이 동베를린으로 가서 가족을 만나는 길을 터 주려면 동독 당국과 협상해야 했고, 그러자면 베를린을 분할 점령하고 있던 미·소·영·프랑스 4대국의 승인이 필요했어요. 소련이 선뜻 동의한 건 서베를린에 직장을 가진 동베를린 주민 4만 명이 1961년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 때문에 직장을 잃어 동베를린 공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죠. 베를린에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거죠. 헤어(미스터) 킴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접근을 통한 변화’는 처음엔 동·서 베를린, 그 다음엔 동·서독, 그리고 마지막에 동·서 관계를 바꾸기 위한 발상이었습니다. 그 말뜻이 워낙 명확하지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베를린 문제에서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가 있었어요.



 김=현상 인정으로 동·서독 관계를 안정시킨 다음 통일을 생각한다는 구상이었습니까.



 바=물론이에요. 내가 1970년 모스크바에서 그로미코 소련 외교부 장관과 협상을 할 때 그가 말했어요. “동·서 경계선에 합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한다. 유럽의 모든 국경선은 상호 합의에 의해서만 변경할 수 있다.” 현상동결의 이 원칙은 그 뒤 헬싱키 프로세스에 계승되었어요.



 김=그러니까 동방정책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현상동결을 전제로 하는 긴장완화 정책이었다는 말이죠?



 바=그래요. 우리는 통일을 위한 협상 같은 건 하지도 않았어요. 오로지 동·서독 관계와 서독·소련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던 겁니다. 통일은 최종 목표이고 긴장완화는 통일의 과정, 방법이었어요. 그때 동·서독 어느 쪽도 주권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독일에 대한 주권은 4대 전승국이 행사하고 있었지요. 1969년 빌리 브란트도 총리로서 최초로 발표한 정부성명에서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고 독일에 대한 4대국의 주권을 존중한다고 밝혔어요. 4대국의 독일에 대한 권리 존중으로 소련과 협상의 길이 열린 겁니다.



 김=한반도 문제로 넘어가지요. 소련 한 나라가 독일 문제에 결정적인 발언권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한반도 문제에서는 미국·중국 어느 쪽도 독점적인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러시아와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북한이 통일에 관한 유일한 협상 상대인데 그 북한이 통일 전의 동독처럼 통일에 반대를 하는 입장입니다.



 바=이론적으로는 북한이 유일한 통일 협상의 파트너지만 실제로는 미국·중국·러시아, 그리고 어쩌면 일본의 참여 없이는 한국 통일은 불가능해요.



 김=바 박사께서는 2013년에 출판한 『빌리 브란트 회고』에서 독일이 한국처럼 민족 분단이 오래 계속되어 분단이 고착되는 비극을 면한 것은 행운이라고 썼습니다. 남북한 통일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십니까.



 바=지금으로서는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김=한국의 통일 준비에 중요한 질문입니다. 통일독일 정부가 동독의 당·군·비밀경찰·정부 간부들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는 남북한 모두에게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특히 한반도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북한의 파워 엘리트들은 한국의 미래나 민족의 장래보다는 자신의 특권적 지위 상실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통일에 강력히 저항할 것이 예상됩니다. 특히 북한 군부는 핵과 미사일까지 가지고 있어요. 통일독일 정부의 동독 파워 엘리트 처리는 어땠습니까.



 바=일관성이 없었어요.



 김=어떤 의미에서입니까.



 바=가령 사회주의통일당(SED) 서기장이었던 에리히 호네커는 모스크바로 갔다가 다시 칠레로 가서 사망했어요. 전 비밀경찰(슈타지) 수장 에리히 밀케는 2년간 복역했지만 그건 슈타지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1930년대에 저지른 살인에 대한 처벌이었어요. 또 한 사람의 슈타지 수뇌 마르쿠스 볼프는 잠깐 감옥에 갔다 풀려나고. 동독 파워 엘리트들을 차별적으로 다룬 겁니다.



 (바는 호네커가 SED 서기장일 때부터 그에게 호의적인 지지발언을 한 사람으로 이런 아쉬움을 토로한 것 같다.)



 김=후유증이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바=25년 전 우리는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라고 외쳤지만 아직도 오시(Ossie·동독인), 베시(Wessie·서독인)라는 구별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내적 통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나는 그 이유를 25년 전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콜이 공유했던 인식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콜은 통일독일 총리로서의 첫 성명에서 “이제 우리는 외적 통일을 이루었으니 우리의 큰 목표는 내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역설했어요. 내적 통합은 오로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해요. 그러나 통일정부는 동독 독재체제 전체의 잘못을 포괄적으로 다루지 않고 개인별 피해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개별심사에 치중했어요. 슈타지의 범행을 주로 파고든 겁니다. 사회주의 통일당의 일당독재가 아니라 슈타지에서 모든 잘못이 비롯된 것 같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슈타지는 하수인일 뿐이었는데도. 한국은 독일이 저지른 실책을 피하기를 기대합니다.



 김=바 박사께서는 가치(Wert)와 화해하라고 충고하시는데 그 가치란 인권 같은 걸 말합니까.



 바=그게 아니고 분단시기 두 국가 간의 화해를 말합니다. 누가 더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가 계산하지 말아야 해요. 통합에 가치를 두라는 말입니다.



 김=통합과 관련해서 바 박사께서는 구세대가 사라지고 신세대가 등장하면 통합이 온다고 말하는데, 통일 후의 통합은 차라리 자연법칙에 맡겨둔다는 겁니까.



 바=맞아요. 매년 조금씩 통합이 진전되는 겁니다.



 김=바 박사께서는 통일을 위해선 큰 담론보다는 작은 조치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동방정책은 당국 간의 접촉과 대화일 뿐 풀뿌리를 위한 작은 실천과는 무관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바=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작은 조치부터 시작했어요. 대표적인 게 동·서 베를린의 통행증 발급을 성사시킨 거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베를린 장벽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어도 장벽을 통과하는 단초는 열었습니다.



 김=통일이라는 역사적인 큰 과업을 수행하려면 콘라트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콜 같은 위대한 정치가를 필요로 합니까.



 바=먼저 지적할 것이 있어요. 통일은 어렵습니다. 둘로 분단된 두 나라가 다시 합치는 통일은 쉽지 않아요. 그리고 통일된 체제는 새로운 체제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새 체제 원리입니다. 한국의 새 체제에는 미국·중국·러시아, 그리고 아마도 일본이 포함될 겁니다. 그런데 아직은 새 질서의 원칙이 안 보여요. 새 체제를 충분히 이해하는 많은 지도자가 나와야 할 겁니다.



 김=통일(Wiedervereinigung)과 통합(Einheit)은 다르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영어로는 Reunification과 Integration의 차이가 되겠는데 둘은 개념적으로 어떻게 다릅니까.



 바=통일은 남한 단독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고, 통합을 위한 준비는 남한 단독으로 또는 북한과 함께 이룰 수 있는 거지요.



 (에곤 바의 이 통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말의 취지는 이런 것이다:정치적·물리적 통일은 한국 혼자는 안 된다. 통일한국은 남북한이 물리적으로 하나로 합쳐진 것 이상의 새로운 체제다. 통일은 주변 4강의 참여로 북한과 함께 실현하는 것. 우리의 민족 동질성 회복과 같은 개념인 통합(Integration)은 정치적 통일의 선행조건인 동시에 통일 후에도 계속될 통일의 과정이다.)



 김=아흔 둘의 고령이신데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데 건강유지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바=좋은 유전자, 아내의 좋은 내조, 식을 줄 모르는 호기심 세 가지요.



 김=참으로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에곤 바는 …



에곤 바(Egon Bahr)는 독일 통일의 ‘원점’이다. ‘동방정책’이라는 용어와, 동방정책의 핵심개념인 ‘접근을 통한 변화’부터가 각각 그의 1957년과 63년 연설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그를 “브란트의 키신저”라고 불렀다. 바가 설계한 동방정책은 독일 통일의 레일을 깔아 전후 독일과 유럽과 세계사를 다시 썼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의 감동이 넘치던 지난 12일, 베를린 시내 사민당사 4층 그의 연구실에서 독일 통일의 1등 공신으로부터 독일 통일의 과정과 남북한 통일에 관한 통찰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다. 그것은 10년 이상 별렀던 감동적인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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