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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따뜻한 편지 보낸다면 …

정갑윤
국회부의장
‘함께하는아버지들’ 고문
“끝까지 책임 못 져서 미안하다. 아빠처럼 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정말로 숨막히는 세상이다. 아빠는 몸건강, 정신건강 모두 잃었다.” 2013년 겨울 인천의 50대 기러기아빠가 남긴 유서 내용이다. 같은 해 겨울 부산에서는 정리해고된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며 폐가에서 지내던 40대 실직가장이 폐지와 짚으로 불을 피우고 자다가 질식사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이 정도까지 극단적은 아닐지라도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중압감과 소외감을 달고 산다. 하지만 아버지들은 쉽사리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저 이사갈 때엔 강아지를 안고 트럭 조수석에 앉아야 버려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는 둥 삼식이가 어떻다는 둥, 쿨한 척하면서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한국 아버지들의 자화상이자 현주소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50~60대 남성의 이혼 상담 건수가 2012년 365건에서 지난해 622건으로 증가했다. 이제 이 땅의 아버지들의 고민에 사회적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이미 미국·일본·영국·캐나다·싱가포르 등의 선진국에선 진작부터 아버지의 역할과 가치를 재발견하려고 하는 이른바 ‘아버지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엔도 2011년 2월 보고서를 통해 정책결정자들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아버지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국 아버지들의 의기소침은 현재진행형이다. 덩달아 아이들에 대한 가정교육도 움츠러들고 있다. “인성교육? 웃기고 있네” “성격이 좋으면 사기를 잘 당한대요. 사람을 잘 믿으니까, 믿었다가 손해를 본대요” “자신은 습관처럼 거짓말, 친구 부정행위엔 강력 항의” “정직하면 바보, 이용만 당해”…. 2013년에 나온 ‘대한민국 중학생 리포트’를 다룬 기사 제목들이다. 이들 제목만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매일 보고 느끼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에는 딸 셋을 둔 무기력한 아버지, 허성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둘째 딸 우희는 “옛날 어른들처럼 스스로의 생각에 자신이 없이, 그저 자식들 눈치나 살피는” 것이 오늘날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하면서 “왜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덕이란, 규범이란, 아버지 노릇이란, 권위란 이해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며 따진다. “상냥하고 다정한 아버지는 자식을 불행하고 게으르게 만든다”는 프랑스 속담에 담긴 지혜에 그녀도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다. 40여 년간 아버지의 영향력을 연구해 온 미국의 심리학자 로스 파크 교수는 아이의 성장발달에 미치는 아버지의 고유한 영향력을 ‘아버지효과’로 개념화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가 이후 자녀의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께 들은 “개를 쫓아내도 나갈 곳을 보고 쫓아내라” “부모 팔아서 친구 사라”는 말씀이 아직도 인간관계의 토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LTE급으로 변해 가는 요즘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소통하고 교육시키기란 쉽지 않다. 초등학생들조차 학원 다니느라 바쁜 세상이니 대화는 그만두고라도 만남조차 어렵다. 휴대전화 문자라도 주고받으면 자녀와 잘 지내는 축에 든다. 여기서 잊혀져 가는 편지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마음을 주고받는 데 편지만큼 좋은 수단도 드물고, 그건 부모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일상 속에서 표현하지 못한 느낌과 생각을 편지로 주고받는다면 아버지의 사랑과 땀이 자녀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아들 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족에게 왕따당하고 불경기에 움츠러든 아버지에겐 최고의 보약이 아닐까?

 마침 여성가족부 등록 비영리단체인 ‘함께하는아버지들’이 주최하고 여성가족부와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제1회 아버지와 함께 하는 행복 한 통(通)’ 공모전이 열렸다. 29일에는 우수작 시상도 한다. 수북이 쌓인 편지에는 이런 대목들이 있다. “친구들이 묻는다. ‘넌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이야?’ 그때마다 내 대답은 “응 난 울 아빠 딸이니까… 울 부모님이 이렇게 키우셨어… 내가 조금만 지면 돼” “갓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아빠는 내게 그랬지. ‘니가 맞더라도 조금만 지고, 니가 할 일 책임지고 하고, 언제나 쌩글거리며 웃고. 알았나?’” 아버지와 아들 딸 사이의 이런 편지들이 우리를 흐뭇하게 만든다.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힘은 가정 교육에서 나왔다. 로마의 전통적인 교육은 학교가 아니라 아버지가 중심이 되는 가정교육이었다. 시민의 권리와 의무, 무기를 다루는 비법 등이 식탁에 마주앉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오갔다. 더 이상 우리도 학교에 모든 것을 맡겨선 안 된다. 이대로 방치하면 ‘아버지의 실종’이 가족 해체와 공동체 해체로 전염될지 모른다. 무너진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출발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따뜻한 편지 한 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정갑윤 국회부의장·‘함께하는아버지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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