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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머문다는 것





[젠틀맨] 전국이 아파트촌이 된 한국에서도 아직 주인을 두고 손님을 받는 한옥이 있다. 이 오래된 집에서 하룻밤 지내는 것의 의미를 찾으러 떠난 여행.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구름에, 경상북도 안동



이름도 오묘하고 생긴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구름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맛없는 국수를 먹고 안동행 고속버스를 탔다. 출근길 고속도로 정체 중 버스 전용 차선에 진입한 걸 보고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안동이었다. 세 시간이 채 안 걸렸다.



도착하자 이헌구 구름에 사무국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상냥한 서울 토박이 말씨로 이 리조트의 건설 과정을 말해줬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기분 좋은 리듬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이헌구는 한옥 리조트 건축을 계획하며 먼저 한옥에 묵었던 사람들을 조사했다. 결과는 재방문율 10% 남짓.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가 화장실이었습니다. 한옥은 방과 사무실이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둘째는 청결과 해충 문제였어요. 이불 사이에서 종종 머리카락이 나오기도 하고, 시골에는 벌레도 있으니까요. 셋째가 식사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자고 나서 할 것이 없었죠. 이걸 염두에 두고 입지를 찾기 시작했어요.”



안동이 최적이었다. 식사부터. 찜닭도 간고등어도 유명하고 경북 산간 지방은 전반적으로 한우가 싸고 맛있다. 프로그램도 좋았다. 안동의 슬로건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다. 하회마을 등 볼거리가 많다. 결과적으로 안동에는 도시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골의 모습이 있었다. 전통과 고요.



위치도 훌륭했다. 구름에는 안동시립민속박물관 부속 전시관이었다. 안동댐을 지을 무렵 수몰될 뻔한 고택을 한군데 모아둔, 사실상 방치해둔 것이었다. 이 무심한 위치 이동이 역으로 최적의 입지가 됐다. “한옥이 이렇게 모여 있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이헌구의 말이다. 청결과 해충은 비용과 노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지는 3년쯤 됐다고 했다. 그의 피부가 이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까맸다.



보통 한옥에서의 숙박은 체험이라고 표현한다. 좀 불편해도 옛날의 삶을 느껴보자는 이야기다. 한옥의 화장실은 밖에 있고 겨울은 춥다. 그 불편도 체험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 구름에는 그 관념을 돌렸다. 대들보와 나무는 수백 년 된 고택의 그것이지만 내부 시설은 모두 첨단이다. 벽 안에는 단열재를 깔고 에어컨은 실외기까지 안 보이는 곳에 숨겼다. 조명을 설치했지만 객실 내부 조명은 전부 간접조명이다. 객실 문은 모두 스마트키로 조절된다. 월풀 욕조를 설치한 객실도 있다. 그렇게 완성한 구름에는 지금 한국에 있는 어떤 숙박 시설과도 다르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경쟁자를 찾을 수 없는 셈인데, 여행을 비롯한 광의의 캐릭터 비즈니스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구름에 뒤에는 대기업이 있다. SK가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안동시와 함께 2012년 설립한 사회적 기업인 ‘행복전통마을’이 구름에 개발의 주체다. 대기업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구름에 앞에서는 아무리 큰 칭찬도 아깝지 않다. 정부만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기업이 잘하는 일도 있는데 구름에는 이 둘이 아주 잘 결합한 경우다.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SK그룹이 자금력과 노하우를 보탰다. 구름에의 건축가인 김찬중은 SK 행복나눔재단 빌딩을 설계해 좋은 평가를 받은 전력이 있고, 스마트키에도 SK의 기술이 들어갔다. 대기업 중에서도 기업 이미지가 세련된 SK의 솜씨 역시 구름에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이 흥미로운 조합이 구름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였다.

구름에가 있는 안동민속박물관 인근은 안동댐 지구라 아침에 안개가 낀다. 분지 지형인 산 중턱에 구름이며 안개가 가득 얹히면 마을이 구름 위에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름이 ‘구름에’가 되었다. 이렇게 작은 요소가 모여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한번 제대로 만들어진 캐릭터는 생각보다 훨씬 생명이 길다. 구름에의 장수를 바라며 다음 한옥으로 향했다. 더 깊은 산속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민속촌길 190

객실 총 7개. 일일 숙박료 12만~38만원(별도의 성수기 요금이 없다). gurume-andong.co



한옥은 한국 사람이 사는 집

남현당,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에서도 한옥에 머무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한옥스테이’의 2014년 10월 검색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는 22개의 한국관광공사 인증 업체가 있다. 모두 종로구에 있는 게 특징이다. 택시를 타고 한남대교와 남산1호터널을 건너 종로3가에 갔다. 교동초등학교 앞에서 내렸다.



이 근처는 흔히 알던 서울이 아니었다. 소형차도 못 들어갈 좁은 골목에서 아구찜 식당과 서예용품 가게를 지나자 남현당의 작은 문이 보였다. 문을 열자 인상 좋은 남자가 일어서서 인사를 건넸다. ‘버선발로 반긴다’라는 속담이 이런 상황에서 나온 거구나 싶었다. 이번에도 이야기를 듣기 위해 툇마루에 앉았다. “우리 집에선 늘 여기서 얘기해요”라는 말이 좋았다.



서울의 한옥은 지방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다 타버렸거든요.” 남현당을 관리하는 이상암이 말했다. “이 집은 좀 오래된 편이에요. 정확한 건립 연도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1910~1920년 사이가 아닐까 추정해요. 공사를 하다 보니 대들보에 수리 연도가 적혀 있었고, 지붕의 흙에서 당시의 담뱃갑이 나왔거든요.” 1910년대라니, 100년 전이다. 지금 이 도시에 100년 된 게 무얼까.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이상암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버릴 말이 없는 달변가였다.



서울의 한옥에서 머무르는 건 한옥형 첨단 리조트에 머무르는 것과도, 고고한 고택에 머무르는 것과도 다르다. 종로에서 한옥 숙박업소에 머무르는 사람은 거의 외국인이다. 우리도 여행할 때는 으레 외국인이 묵기 편한 호텔에 간다. 그런데 ‘한국에 ‘HANOK’이라는 전통 건축물이 있으니까 여기서 한번 자봐야지’라고 결심할 정도의 외국인이라면 보통 이상의 상식과 보통 이상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봐도 된다. 이상암의 남현당은 그 부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한옥을 일러 ‘한국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한국에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싶은 사람이에요.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한국 사람이 됐어요.”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한다. 손님과 청주까지 놀러 간 적도 있고, 여기에만 네 번 왔다는 노르웨이 손님도 있다. 취재하러 간 날도 홍콩 손님이 정동진에 가고 싶어 해서 대신 표를 예매해줬다고 했다. 이상암은 고객이라는 말도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고객 대신 손님인 거죠.”

22개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중 남현당을 취재한 이유는 ‘입양 가족 20% 할인’ 조항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오는 입양아 출신은 거의 생부, 생모를 못 찾고 가요. 그러면서 더 큰 충격에 빠져요. 한국에서는 더 이방인이 되니까. 그 사실을 알고 ‘내가 이 친구들이 아는 한국 사람이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놓고 할인해주는 건 오히려 안 좋을 수 있어요. 그래서 모르게 혜택을 줘요. 방 등급을 올려주거나, 뭘 하나 더 주거나.”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한옥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는 것 아닐까. 이상암에게 남현당은 공간을 매개로 기억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너무 과한 수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야 다시 온 손님들이 편안해할 테니까요.” 트립어드바이저에 등록된 500여 개의 서울 게스트하우스 중 남현당은 20위 안에 든다. 벽 한쪽에는 그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와 손님들이 남긴 메모, 그리고 그가 손님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상암은 그 사실을 말할 때 가장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현당의 성업을 바라며 사무실이 있는 강남으로 돌아왔다. 강남은 너무 새것 같았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46-15

객실 총 5개(1인용부터 가족용까지 있다). 일일 숙박료 5만원~12만원. www.namhyundang.co.kr





집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권진사댁, 경상북도 봉화



2014년 10월 현재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명품 고택’ 48채가 있다. 어디에 갈까 하다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유명 여행지가 아닌 곳, 신용카드와 온라인 예약이 안 되는 곳. 기왕 지방의 한옥에 가볼 거라면 가장 조용하고 외지고 도시 깍쟁이들의 편의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곳에 가고 싶었다. 그런 곳을 찾다 보니 봉화의 권진사댁이 나왔다. 안동에서 버스를 타고 봉화군 춘양면으로 향했다. 한 시간 반 쯤 걸렸다.

봉화가 한층 깊은 산속인 걸 피부가 먼저 알았다. 바람이 조금 차가워졌다. 깔끔하게 포장된 오솔길을 따라 걷다 왼쪽으로 잠깐 들어가자 권진사댁이 나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초로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성암 권철연, 이 집의 이름이기도 한 권 진사의 증손자 권탄웅이었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당이 훤히 보이는 본채에 앉았다.



그는 10대까지 이 집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가 지낸 뒤 6년 전쯤부터 다시 이 집에서 산다고 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빈집이었는데 봉화군에서 이 집을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홈스테이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깊이 고민하다가 승낙했지요.” 딱히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한 번 온 손님들이 계속 찾아오며 집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명 인사도 많이 왔다고 했다.



그럴 만했다. 권진사댁은 멋진 집이다.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항공기 날개처럼 수평으로 넓게 뻗은 사랑채가 보인다. 주택의 건립 시점은 1880년대인데, 나무 기둥이 이 집의 역사를 증명하듯 짙게 변해 있다. 건축적으로도 흥미롭다. 봉화 주택의 특징은 건물을 완전히 폐쇄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안채보다 사랑채가 조금 낮은 보통 한옥과 달리 안채와 사랑채의 높이가 같다는 점이다. 봉화의 길고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함이다. 곳곳에 걸린 현판부터 창틀의 무늬까지, 집만 보면서도 심심하지 않게 며칠은 보낼 수 있다.



사실은 이야기를 나누며 몇 번 한눈을 팔았다. 사랑채 바깥 풍경 때문이었다. 넓은 사랑채 한쪽으로는 큰 은행나무가 있고 그 뒤로는 완만한 능선의 한국 산이 몇 겹이나 보였다. 풍경만큼 진한 것이 냄새였다. 봉화는 전국에 몇 안 되는 금강송 산지다. 이곳의 나무는 춘양목이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 단단한 나무를 짜 맞춰 만든 집에서는 진한 향수의 기분 좋은 잔향 같은 소나무 냄새가 났다. 몇 번이나 숨을 깊이 들이쉬며 그 냄새를 맡았다.



잘 가꾼 집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그는 이렇게 조상님들이 살던 집에 내려와서 집을 가꾸면서 사는 것도 좋다고, 아들도 지금 40대인데 50대쯤 되면 이곳에 내려와 살며 집을 가꿀 거라고 말했다. 권 진사는 조선 말기의 격동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1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 한국이라는 나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권탄웅의 눈에 비친 춘양면도 변했다. “10년 전 춘양에 왔을 때는 지금처럼 시멘트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자체장들이 자기 업적을 쌓으려고 산하를 파헤치고 있어요. 집 근처 냇가도 파헤쳐서 둑을 만들었어요. 가만 뒀을 때 자연 경치가 얼마나 좋았는데….”



하지만 아직 집이 있다. 향기가 나는 소나무 대들보가 있고 군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고 그 집을 지키는 후손들이 있다. 정신을 품은 공간과 공간에 스며든 정신이 그렇게 이어진다. 그 연속성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이 집은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 권진사댁의 영속을 바라며 서울로 돌아갔다. 춘양면에서 동서울버스터미널까지는 세 시간쯤 걸렸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낙천당길 43-3

객실 총 8개(1인용부터 가족용까지 있다). 일일 숙박료 5만~12만원. blog.naver.com/kwonjinsa , hanok.visitkorea.or.kr





글 = 박찬용 젠틀맨 기자, 사진 = 이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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