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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말의 공포정치

어제 신문들에 재미난 사진이 실렸다. 우리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탁구를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재미났던 건 대통령의 20대 때 사진이 함께 실려서였는데, 청와대 가족행사에서 역시 탁구를 즐기는 장면이다. 36년의 간극 탓이기도 하겠지만 두 사진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젊은 박근혜는 훨씬 진지하고 힘이 들어가 있다. 결코 지지 않겠다는 승부욕이 느껴진다. 대통령 박근혜는 휠씬 부드럽다. 힘이 빠진 자리에 여유가 넘친다. 승부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아는 얼굴이다.



 경륜의 힘이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따라 번진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이 하는 말을 듣자면 얘기가 달라진다. “적폐는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하는 원흉”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며 우리 몸을 죽여가는 암 덩어리”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규제 혁명을 이룰 것”…. 듣기만 해도 섬뜩한, 과격하고 파괴적인 언어들이 줄을 잇는다. 지날수록 강도를 더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건 백번 말해도 옳다. 개혁에 소극적인 공무원을 일으켜 세우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말의 공포정치’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혁명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프랑스혁명 때 공포정치를 주도한 로베스피에르의 무기는 끓는 피가 토해내는 웅변이었다. 국민공회를 주도한 2년여 동안 871회나 연설을 했고 그때마다 ‘자유의 적들’을 처형하라고 외쳤다. 그는 인민주권이라는 이상에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었지만 끝까지 민중을 상징하는 ‘상퀼로트(긴 바지)’를 거부하고 귀족적인 ‘퀼로트(짧은 바지)’ 차림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어쩌면 그것이 로베스피에르의 한계였을 터다. 커다란 목소리보다 스스로 보여주는 작은 행동이 더욱 강한 힘을 가졌음을 몰랐던 거다.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진정성을 위해서라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탁구 칠 때의 표정으로 말이다.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내 것부터 내려놓아야 그런 표정이 나온다. 내 귀에 닿는 지적은 흘려보내고 남 귀에 고함친들 따를 사람이 누가 있겠나. 소리가 커질수록 귀를 막을 뿐이다.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의 단편소설 주인공 립 밴 윙클은 이렇게 말한다. “까칠한 성격이 나이 든다고 순해지지 않고 날카로운 혀는 쓸수록 날이 선다.” 대통령의 탁구를 보면 앞 문장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뒤 구절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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