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있는 그대로의 뉴욕, 조용하고 느리게 경험해보세요

2001년 9월11일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엔 두 개의 거대한 물웅덩이 ‘부재의 반추’가 만들어졌다. 사방은 9m 높이의 폭포로 이뤄졌고, 그렇게 떨어진 물은 웅덩이 가운데 구멍으로 다시 떨어진다. 사진은 부재의 반추를 찾은 시민들.

11월 14일 뉴욕 타임스스퀘어 인근 지하철역 42번가 입구.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를 도보로 안내해줄 자원봉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굿 애프터눈.”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이는, 청년이 아니라, 77세 할아버지 줄리어스 피몰러. ‘빅 애플 그리터(Big Apple Greeter)’ 소속인 그는 1937년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고,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했다. 어르신이 핫 플레이스를 소개한다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실은 매우 적절했다. 최근 뉴욕이 내세우는 명소는 ‘오래된 곳을 보존하고 재해석한 곳’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뉴욕의 최신 키워드는 ‘기억(memory)’이었다.

관광객 부르고 상권 살린 ‘옛것’의 힘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베이글 이후 뉴욕에서 전세계로 가장 많이 퍼져나간 건 하이라인파크”라고 보도했다. 전세계 도시 관계자들이 재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고, 실제로 이를 모방한 프로젝트가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역 고가와 부산 그린라인은 하이라인을 본뜬 것이다.

지명 미트패킹(meatpacking)이 말해주듯, 이곳엔 수많은 육가공업체가 밀집해 있었다. 시는 1934년 2.33㎞의 고가철도를 건설했다. 하지만 도로의 발달로 쓸모 없게 된 철로는 80년대부터 20년 넘게 방치됐다. 슬럼화된 미트패킹은 범죄와 마약의 온상이 됐고, 범죄와의 전쟁을 결정한 시는 고가 철거를 추진했다. 그런데 몇몇 시민이 ‘하이라인 친구들’이란 단체를 만들어 ‘보존을 통한 재개발’을 제안했다. 이들이 모은 돈은 4400만 달러. 총 공사비 1억5200만 달러의 4분의 1이 넘는 규모다. 2009년 첫 번째 구간이 공원으로 재탄생했고, 2011년 두 번째, 그리고 지난 9월 마지막 구간까지 공원화됐다. 그곳에 가면 약 9m 높이에서 허드슨강을 따라 걸으며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즐길 수 있다.

1 미트패킹 지구를 관통하는 공중보행로 하이라인파크는 뉴욕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2 하이라인파크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멀리 허드슨강이 보인다.
뉴욕관광청의 코디네이터 브리트 히쿱은 하이라인을 “있는 그대로의 뉴욕을 조용하고 느리게 경험할 수 있는 곳(Keep it simple, Slow, Quiet, Wild)”이라고 정의했다. 공원의 모든 식물은 뉴욕에서 자생하는 것을 옮겨왔는데, 이는 그 자체로 뉴욕의 자연을 의미했다. 철로는 그대로 보존해 이곳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줬다.

뉴욕관광청에 따르면 하이라인은 지난해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뉴욕의 10대 명소 중 하나다. 히쿱은 “센트럴파크·브로드웨이·타임스스퀘어·엠파이어스테이트,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이 여전히 뉴욕의 랜드마크이지만 하이라인은 그 이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100년이 넘은 오레오 공장을 리모델링한 ‘첼시마켓’은 하이라인과 함께 이 지역 최대 명소가 됐다.

옛것을 보존함으로써 서울 북촌의 땅값이 뛴 것처럼, 미트패킹의 땅값도 치솟았다. 곳곳에 “최고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분양 광고가 나붙었다. 고급 아파트와 호텔이 속속 들어섰고, 인기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이 자리를 잡았다. 하이라인 3구역은 원래 ‘전철의 차량기지(rail yard)’인데, 이곳엔 제2롯데월드를 연상시키는 마천루 ‘허드슨 야드’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하이라인이 사람을 끌어들이고(누적 방문객 올 7월 기준 2000만 명), 그로 인해 가능해진 거대한 상업시설은 ‘보존이 이끌어낸 경제적 성공’을 웅변했다.

9월 11일 … “그날을 기억하는 건 의무”

하이라인을 모두 걸었다면 강변으로 조금만 더 걷기를 권한다. 페리를 타고 가장 오래된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으로 갈 수 있다. 배 위에서 뉴욕 야경을 즐기고, 석조건축물인 브루클린다리를 지나 유엔본부까지 볼 수 있다. 단기 여행객에겐 효율적인 코스다.

조금은 다른 의미지만, 뉴욕 ‘기억 테마’의 정점은 ‘9·11 메모리얼 뮤지엄’이다. 2001년 9월11일 테러에 의해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붕괴됐다. 뉴욕의 상징인 쌍둥이 건물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는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 사방이 9m높이의 폭포로 이뤄진 물 웅덩이 ‘부재(不在)의 반추(reflecting absence)’가 만들어졌다. 분당 200t의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그렇게 떨어진 물은 웅덩이의 가운데 구멍으로 재차 떨어진다.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이 떨어져 내리는 물은 부재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은 웅덩이 바로 옆에 540m짜리 원월드센터를 세웠다.

공사비 7억 달러 규모의 9·11뮤지엄은 웅덩이 아래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월드트레이드센터의 철골과 콘크리트 구조를 그대로 활용했고, 마지막 생존자가 사용한 계단이 또한 그대로 남아 있다. 참혹하게 부서진 소방차와, 그것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소방관의 보습이 보존돼 있다. 박물관의 한 벽면이 새파랗게 표현돼 있어 물었더니, 박물관 홍보책임자 앤서니 귀도는 “그날 9월의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다”고 답했다. “그날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도 했다. 희생자 2000여 명의 얼굴과 실명, 그들의 일기와 마지막 남긴 말, 가족과 찍은 사진이 보존돼 있었다. 하이라인의 정신 ‘있는 그대로, 조용하고 느리게’는 여기에도 적용되고 있다. 기억을 보존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뉴욕이 전해준 메시지였다.

●여행정보=뉴욕 직항이 있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에겐 일본 나리타를 경유하는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직항은 14시간, 경유하면 대기 시간까지 약 20시간 걸린다. 사계절이 뚜렷한 뉴욕의 날씨는 서울과 비슷하다.

지하철은 구간과 상관없이 편도 2.5달러인데, 7일 무제한 티켓(30달러)이 경제적이다. 최근 뉴욕의 범죄율은 미국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택시는 많지만 교통체증이 심하다. 뉴욕관광청(nycgo.com)엔 요즘 뜨는 지역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은 한국어 사이트도 운영한다.

글=강인식 기자 사진=뉴욕관광청, 9·11 메모리엄뮤지엄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