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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가는 LG맨 이상훈 “유일하게 연락 온 팀”

원더스 선수들은 이상훈 코치(왼쪽)에 존경심을 드러낸다. 마운드에서 자신감을 가지라는 조언이 어떤 기술적인 가르침보다 와 닿았다고 한다. [사진 고양 원더스]


26일. 고양야구장에서는 독립구단 원더스 선수단의 마지막 미팅이 있었다. 지난 9월 11일 팀은 공식 해체됐지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선수들을 위해 11월말까지 훈련은 계속 됐다. 진짜 떠나는 날. 남은 코치와 선수들은 짐을 챙기고 라커룸을 정리했다. 대부분 박스 한두 개를 들고 떠났지만, 이상훈(43) 코치는 1톤 트럭을 불렀다. 그의 짐 중에서 1990년대 초 LG 트윈스 로고가 붙은 액자가 눈에 띄었다. 앨범과 스크랩북도 있었다. 그는 현역 시절부터 팬들이 선물한 것을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 이날도 이 짐들은 트럭에 실려 지인의 창고로 향했다. 그렇게 소중했던 물건들이 창고에서 잠들어 있는 동안 그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그는 다음 달부터 두산 2군 투수코치가 된다.

원더스 마지막날까지 훈련 도와
김성근 감독과 2년간 코치 수업
“추억 쌓인 LG 팬들에겐 미안
난 그저 팀을 옮기는 것일 뿐”



 눈빛 하나로 상대 타자를 제압하던 모습. 마운드에 서면 절대 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핀스트라이프(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긴 머리를 날리며 마운드로 뛰어가던 그는 LG의 상징이자 심장이었다. 그런 그가 라이벌 팀의 유니폼을 입고 2004년 은퇴 이후 10년 만에 프로야구계로 돌아온다.



 원더스가 해체되고 그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모였다. LG 팬들은 그가 돌아와 후배들과 함께 해 주길 바랐다. 그런데 두산에 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상훈은 “1년전 김성근 감독님을 통해 두산과 대화가 오고 갔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두산에서 가장 먼저 전화가 왔다. 첫 마디가 ‘LG에서 제의가 있었냐’였다. 라이벌 구단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고 밝혔다. LG를 포함한 다른 구단에서는 제의가 없었다. 그는 일단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원더스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해체가 결정된 이후 김성근 감독은 “각자 좋은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라”는 말을 먼저 꺼내줬다.



 이상훈은 LG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사실 LG 팬들은 그의 두산행이 아쉬웠다. 그가 2012년 말 원더스 코치로 부임했고, 김성근 감독과 다시 뭉친 것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LG 팬들에게는 2002년을 들썩이게 했던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과 ‘야생마’ 이상훈의 투혼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원더스 선수들과 단체 산행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이상훈 코치(뒷줄 오른쪽 둘째). [사진 고양 원더스]
 이상훈은 “사람들은 한국시리즈 6차전 (이승엽에게 맞았던 동점 스리런) 홈런을 기억한다. LG 팬들은 다르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그 자리에 섰는지를 기억한다”며 “LG가 못할수록 가장 마지막에 강렬했던 추억이 오래 간 것 같다. 그런데 옛 여자친구의 기억처럼 추억은 간직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상훈은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원더스에 부임하기 몇 달 전 중학교 아이들을 지도하면서부터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김성근 감독과 원더스에서 2년을 함께 했다. 그는 “감독님은 원체 말이 없는 분이다. 모든 것을 행동으로 표현한다고 보면 된다. 말과 행동은 늘 일치한다”며 “회식 자리에선 농담도 많이 나누지만 사적인 대화도 거의 없었다. 감독님과 헤어지면서 ‘말없이 그저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그저 던지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코치는 원더스를 ‘놀라운 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누구도 이 정도까지 올라오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더스에는 선후배 관계는 있었지만, 선수단을 이끌 리더는 없었다. 각자 놓인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선수단의 고충을 전달하는 입장에 섰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갑작스런 팀의 해체는 그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마지막 두 달이 자연스럽게 해체를 준비하는 과정이 됐다. 아쉽지만 남아 있는 선수들 중에 프로에 좀 더 가게 돼서 조금 낫다”며 웃어보였다.



 이제 그는 프로야구 코치로 새출발을 한다. 그는 “선수 하면서도 구체적인 목표를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 코치가 되고서도 마찬가지다”며 “코치는 선수가 가진 최대치를 빼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다”고 했다. 이 코치는 “요즘 투수들이 공을 많이 안 던진다. 또 공 하나하나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하다. 마운드 위의 집중력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없다. 본인이 느껴야 한다. 야구를 잘 하려면 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선수 시절 나는 기계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프로에 입단하고 3~4년 정도 일기를 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행동을 글로 쓴 것이다. 계약 협상 테이블에서 일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내가 이 정도로 했다는 걸 보여줬다”고 밝혔다.



 그는 원더스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워낙 바쁜 탓에 개인적인 일을 전혀 못했다고 했다. 비활동 기간인 12월에 편찮으신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려야 하고, 치과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는 요즘도 기타를 친다고 했다. 물론 전처럼 자주 치지 못한다.



고양=김원 기자





LG의 심장이었던 이상훈



● 생 일 : 1971년 3월 21일

● 출신 : 강남중-서울고-고려대

● 소속 : 1993~1997 LG, 1998~1999 주니치(일본), 2000~2001 보스턴(미국), 2002~2004 LG, 2004 SK

● 성적 : 한국 72승40패94세(평균자책점 2.56) 일본 7승5패3세(평균자책점 3.30) 미국 승패 없음(평균자책점 3.09)

● 경력 :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2002)

● 수상 : 다승왕(1994), 다승왕, 골든글러브 (1995), 최우수 구원투수상(1997)

● 별명 : 야생마, 삼손

● 취미 : 기타 연주, 노래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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