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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구조개혁은 진검승부다

이정재
논설위원
말이야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듣는 내내 왠지 불편했다. 애초 “부실의 늪에 빠진 한국의 조선업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본 게 잘못이었다. 산업은행의 Y부행장은 “왜 그런 거창한 걸 나에게 묻느냐.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럼 누구에게 물어야 했을까. 산업은행은 STX조선해양의 최대 주주다. STX조선은 지난해 1조6000억원의 자본을 모두 까먹고 쓰러졌다. STX조선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줬던 죄로 뒤처리 책임을 맡은 게 산업은행이다. 부실 책임을 물어 강덕수 회장을 쫓아냈고 돈을 더 못 내겠다는 다른 은행들의 코를 꿰어 3조원 넘는 돈을 걷어 지원하고 있다. 국책 산업은행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다. 그런 산업은행 최고 담당자의 말이 “조선업의 큰 그림은 모른다”라니.



 Y부행장이 정말 몰라서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말이 이어지자 그는 속내를 조금 더 내비쳤다. “우리는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STX조선 정상화만 잘하면 된다. 조선업의 큰 그림 같은 것엔 관심도, 권한도 없다. 그런 거 잘못 입 밖에 냈다간 사방에서 욕만 먹는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8월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의 합병설을 거론했다. 성동조선은 수출입은행이 맡아 정상화를 추진 중이다. ‘설비의 성동’과 ‘기술의 STX’, 둘의 합병은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였다. STX 같은 조선사들은 부실로 쓰러진 뒤에도 일감이 없어 저가 출혈경쟁으로 외국 선주들 배만 불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합병은 과잉 설비와 인력을 처리하는 최선의 방책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합병설이 돌자마자 사방에서 돌팔매가 시작됐다. ‘사람은 누가 자를 거냐,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산업은행만 손실을 털자는 거냐’. 급기야 ‘주모자 색출·문책’ 주장까지 나왔다. Y부행장은 그때 상황을 “한 일도 없이 뭇매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이런 게 구조개혁이다. 아베가 쏘지 못한 세 번째 화살이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요즘 부쩍 강조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구조개혁은 진검승부다. 책상머리에 앉아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재정·통화 정책과는 다르다. 때로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해야 한다. 거친 몸싸움과 치열한 생존논리가 부딪친다. 피가 튀고 살이 부서진다. 구체적인 그림과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다행히 우리에겐 외환위기의 교훈이 있다. 그땐 지금보다 더 어려웠지만 역설적으로 지금보다 되레 좋았다. 구조개혁의 원칙이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선(先) 구조조정, 후(後) 채무조정의 원칙이다. 기업들이 먼저 설비·인력을 줄이면 채권단이 맞춰서 자금을 지원했다. 지금은 어떤가. 채권단은 돈부터 넣는다. 그런 뒤 기업을 질질 끌고간다. 구조조정은 딴 나라 일이다. 은행은 충당금 덜 쌓아 좋고, 기업은 뼈를 안 깎아서 좋다. 결과는 뭔가. 좀비 기업의 대량생산이다. 좀비 기업은 다른 건강한 기업에 갈 영양분(자금+인력)마저 블랙홀처럼 빨아먹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좀비 기업만 정리해도 한국 경제가 살아난다는 보고서를 냈다. 현재 15.6%인 좀비 기업 비중을 5.6%로만 낮춰도 정상 기업이 11만 명을 더 고용할 수 있다는 구체적 수치까지 계산해냈다. 국책연구원의 보고서는 정부의 정책 의지를 밝히는 또 다른 통로다.



 다시 조선업으로 돌아가보자. 조선업의 부활 방정식이 가능하다면 한국 경제의 부활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는 마당에 총대는 누가 메겠는가. 사실은 이런 게 한국 경제의 진짜 문제인 것이다.



 이럴 때 경제부총리가 나서야 한다. 보고서나 말의 성찬 뒤에 숨지 말고, 야전복을 입고 구조개혁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경제가 잠시 뒷걸음칠 수도 있다. 이 정부 내내 성과가 안 날 수도 있다. 은행·기업을 다그치고 노사의 팔을 꺾고 조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걸 감내해야 진짜 구조개혁이다. 최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는 과연 그런 준비가 돼 있는가. Y부행장을 닦달했던 내내 왠지 불편했던 이유를 알았다. 애초 나는 최 부총리에게 물어야 했던 거다. 아니면 대통령이거나.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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