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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리퍼트의 한국 배우기

박보균
대기자
푸트(Lucius Foote) 미국공사와 박정양(朴定陽) 조선공사-. 19세기 말 한·미 양국의 첫 주재국 공관장들이다. 푸트(1883년 부임) 사진은 세종로 미국 대사관에 걸려 있다. 미국 대사관은 푸트부터 역대 공관장을 소개한다. 조선과의 수호조약부터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박정양 사진은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에 없다. 한국은 장면(張勉) 대사부터 기록한다. 1948년 건국 후 첫 공관장부터 따진다. 양국의 다름은 외교의 축적·전통 차이 때문이다. 그런 축적은 외교의 깊이를 더한다.



 신임 주한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Mark Lippert)는 화제를 생산한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 실세다. 그의 대사 선서식 때 오바마는 깜짝 출연했다. 대통령은 얘깃거리를 만든다. 리퍼트의 나이(41세)도 한몫한다. 역대 최연소라고 한다. 미국 대사관 기준은 다르다. 1905년 한국에 온 모건(Edwin Morgan) 공사는 40세다.



 리퍼트의 SNS 외교는 공세적이고 유쾌하다. 그의 블로그에 미국 해병대 무도회 참석 사진이 있다. 미 해병대는 양국 역사의 극적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국립 해병대 박물관이 있다. 장진호(Chosin Reservoir) 전시실이 거기에 있다. 6·25 때 중국군 포위와 추위는 해병대를 압박했다. 전시물은 악전고투를 재현한다. 그것은 한·미 혈맹을 두텁게 한다.



 박물관 한쪽에 신미양요(辛未洋擾) 전시실도 있다. 그때 미군은 강화도에 상륙했다. 진지 점령군은 해병대다. 조선군에 쐈던 대포 3문이 진열돼 있다. 해병대원 6명은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두 전시실은 한·미관계의 곡절 많은 연륜을 드러낸다. 그 속에 강렬한 반전과 파란이 담겨 있다.



 1970년대 후반은 양국 갈등 시기다. 박정희와 카터 대통령의 대립은 커졌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핵무기 개발 문제는 심각했다. 그때 주한미국 대사는 스나이더(R. Sneider)와 글라이스틴(W. Gleysteen)이다. 미국대사는 한·미 간 대립과 우호를 연기한다. 두 대사의 외교 언어에는 오만과 냉소가 담겼다. 77년 10월 박정희는 강화도를 찾았다. 그는 ‘순국 무명용사비’ 건립을 지시했다. 그 비문은 장렬하다. 신미양요 때 숨진 조선군을 기렸다. 그것은 박정희의 자주 국방 의지의 풍경들이다. 자주 민족은 한국인의 대외 정서 뿌리다. 그 자주는 순수하다. 그것은 종북·반미와 다르다.



 한·미 동맹은 특별하다. 하지만 특별함이 보장하는 우호도 한계가 있다. 반감과 갈등의 역설도 작동한다. 주한미국 대사의 경험은 독특해진다.



 2002년 촛불은 반미였다. 그해 6월 미군 차량의 여중생 압사사건이 터졌다. 노무현-이회창이 격돌했다. 대선의 해였다. 월드컵 열기는 미군 규탄 촛불로 옮겨졌다. 11월 말 주한미군 재판이 열렸다. 미군 차량사병들의 무죄 평결 . 촛불 시위는 절정에 올랐다.



 허버드(T. Hubbard) 대사는 곤욕을 치렀다. 평결 시점을 놓고 여러 논란이 있었다. 무죄는 예상됐다. 그렇다면 “왜 평결을 대선 후로 늦추지 않았는가.” 서울의 미국대사관은 상황을 오판했다. 허버드는 한국인 정서에 둔감했다.



 크리스토퍼 힐(C. Hill)은 스타 대사였다. 그는 북·미 협상을 주도했다. 주한 대사와 그 후 국무부 차관보 시절이다. 힐과 북한 김계관의 협상 테이블은 화려했다. 하지만 북한은 최후 순간에 달라졌다. 북한의 핵 포기 협상은 실패했다.



 힐의 좌절은 북한을 몰라서다. 그는 한때 최고의 협상가였다. 옛 유고의 보스니아, 코소보 협상으로 여러 상을 받았다. 그 타협은 종교와 민족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다. 2005년 협상에 나설 무렵 북한은 확고해졌다. 핵무기를 체제 생존 수단으로 삼았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게 됐다. 김계관은 시늉만 했다.



 북한 체제는 절묘하다. 조선 왕조, 기독교, 공산주의에서 통치의 진수를 포착했다. 그것을 엮어 3대 세습의 신화를 만든다. 유교적 왕조 문화를 모르면 북한을 알 수 없다. 힐이 알기 어려운 영역이다. 한국인은 김계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남한 사람은 북한 외교관의 사투리에서 진정성을 분별한다. 한국을 제친 북한 협상은 파탄 난다.



 동북아는 격랑 속에 있다. 중국의 위력은 실감 난다. 한·중 간 경제 밀착은 확대된다. 한·미 동맹은 도전을 맞고 있다. 중국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이냐는 난제다.



 대사의 재량권은 크지 않다. 하지만 서울 주재 대사는 달라야 한다. 동맹의 특수성,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정교한 판단과 순발력을 요구한다. 그 바탕은 한국 알기다. 리퍼트는 “한국의 깊이 있는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겠다”(지난 21일 청와대 신임장 제정)고 했다. 한국에 익숙하면 북한이 실감 나게 보인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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