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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이 공연은 왜?'] 안드레이 서반의 춘향은 왜 '다른' 춘향인가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속 몽룡(왼쪽)과 방자. [사진 국립창극단]


변학도(오른쪽)의 수청 들기를 거부하며 고문받는 춘향. [사진 국립창극단]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속 춘향. [사진 국립창극단]


사랑을 나누고 있는 춘향ㆍ몽룡 커플. [사진 국립창극단]


변학도(왼쪽)의 수청 들기를 거부하며 고문받는 춘향. [사진 국립창극단]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에는 현실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이는 양반 사회에 대한 조롱이 곳곳에 등장했던 ‘춘향전’ 원전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진 국립창극단]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의 무대는 현대적이다. 춘향의 감옥을 공중에 매달아 표현했고, 무대 전면 대형 스크린에 슬픈 춘향의 얼굴을 띄웠다. [사진 국립창극단]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71)이 연출한 창극 춘향전이 20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남과 똑같이 연출하면 시간 낭비”라는 연출가의 소신대로 색다른 춘향이 탄생했다. 작품 제목은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어디가 얼마나 다르길래, 제목에까지 ‘다른’을 명시했을까. 새 춘향전의 특징을 짚어본다. 공연은 다음달 6일까지다.

①동시대 배경
춘향전의 배경이 현대로 바뀌었다. 이어폰 끼고 노래 들으며 노트북 펼쳐놓고 공부하는 몽룡. 방자는 염색 머리에 패딩 조끼 입고 등장한다. 몽룡이 춘향의 집에서 ‘사랑가’를 부르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 동안,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줄을 잇고 음성메시지도 2개나 와있다.
주인공들의 대사도 열여섯 신세대 청소년스럽게 통통 튄다. 몽룡의 아버지가 정부 요직에 발령받아 서울로 간다는 소식을 접한 춘향. 첫마디가 “서울? 완전 대박!”이다.

하지만 ‘사랑가’를 비롯해 ‘십장가’ ‘쑥대머리’ ‘갈까부다’ 등 노래는 판소리의 원형을 그대로 지켰다. 같은 상황에서도 소리는 고어로, 대사는 현대어로 진행된다. 춘향이 옥중에서 몽룡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 “야! 어떻게 그동안 전화 한 번 안 할 수 있어?”란 대사로 시작해 “바라건대 서방님은 길이 만종록을 누리시어 후생에나 다시 만나 이별 없이 살겄내다”란 소리로 끝난다. 기묘한 조화다.


②‘안 멋있는’ 몽룡
안드레이 서반은 주인공 춘향에 대해 “사랑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영웅”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그가 해석한 춘향의 사랑은 ‘몽룡과의’ 사랑이 아니다. 삶의 절대적 가치로서의 사랑이다. 그는 “몽룡은 춘향을 잊었다. 그런 사랑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배경이 현대로 바뀌면서 ‘전화 한 통 없는’ 몽룡의 사랑은 더욱 의심받게 됐다.

연출자의 ‘미움’을 사서인지 ‘다른 춘향’ 속 몽룡은 찌질하다. “아들∼ 메시지 확인하면 빨리 집으로 와!”란 엄마의 음성 메시지에 안절부절못하고, ‘S대학’에도 기부금을 내고 편입한 것으로 설정돼 있다. 그네 타는 춘향이를 처음 본 뒤 방자에게 한 대사도 영 탐탁찮다. “기생 딸? 그럼 좀 놀겠네. 가서 같이 놀자고 꼬셔봐”라니, 지고지순한 사랑의 시작이라고 믿기질 않는다.


③비슷한 듯 다른 엔딩
이야기의 흐름은 기존 춘향전의 골격과 비슷하다. 몽룡은 잘 나가는 검사가 돼 금의환향, 변학도의 비리를 파헤치며 춘향을 구해준다. 원작대로라면 몽룡과 춘향은 결혼식 올리고 아들딸 낳고 백년해로 하는 데서 끝이 나야 한다.
하지만 ‘다른 춘향’은 다르다. 백발 할머니가 돼버린 춘향이 휠체어에 앉아있는 채로, “과연 정의의 승리 뒤에, 더 큰 사랑의 승리가 뒤따를까요?”란 내레이션과 함께 막이 내린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란 관점에서 이 작품이 과연 해피엔딩인지 모호하다. 다만,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지킨 춘향 입장에선 확실한 승리다.



p.s. 잃은 것과 얻은 것=춘향전 특유의 애잔한 감성이 실종됐다. 가슴 절절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안 보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사실 자체의 의의를 무시할 순 없다. ‘판소리’라는, ‘춘향전’이라는 우리만의 콘텐트에 안드레이 서반이라는 세계적인 대가가 손을 댔다는 것도 의미있는 도전이다. 서반은 “춘향전은 마치 셰익스피어 작품처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뒤집을 수 있고 실험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열린 재료”라고 했다. 그 첫 시도의 결과물이 비록 기대에 못 미쳤다해도, 춘향이 햄릿처럼 세계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남는다. 어쨌든 첫 걸음을 뗐다.

사진1=‘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속 몽룡(왼쪽)과 방자.

사진2=변학도(오른쪽)의 수청 들기를 거부하며 고문받는 춘향.

사진3=‘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속 춘향.

사진4=사랑을 나누고 있는 춘향ㆍ몽룡 커플.

사진5=변학도(왼쪽)의 수청 들기를 거부하며 고문받는 춘향.

사진6=‘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에는 현실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이는 양반 사회에 대한 조롱이 곳곳에 등장했던 ‘춘향전’ 원전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진7=‘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의 무대는 현대적이다. 춘향의 감옥을 공중에 매달아 표현했고, 무대 전면 대형 스크린에 슬픈 춘향의 얼굴을 띄웠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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