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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시간을 먹다 ⑥ - 동대문 생선구이골목

동대문 생선구이골목 호남집 이덕근(72) 사장은 40년째 연탄불을 고집하고 있다. 연탄에 구워야 담백한 생선 맛을 낼 수 있단다. [김상선 기자]

서울 동대문역(1·4호선)에서 걸어서 5분. 생선 굽는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다. 차 한 대 정도 다닐 법한 거리에 이르자 연탄불에 고등어와 삼치를 굽는 손길들이 바쁘다. 노량진도 마포도 아닌 동대문 좁은 골목에 어떻게 생선구이골목이 생겨났을까. 궁금증은 호남집 이덕근(72) 사장을 만나서야 해결됐다. 이씨의 기억은 정확했다. 그는 “백반 가게가 많던 골목에 생선구이 가게를 연 게 1974년 2월이었다”며 “올해로 딱 40년이 됐다”고 말했다. 호남집은 동대문 생선구이골목에 처음으로 문을 연 생선구이집이다.

호남집의 7000원짜리 고등어구이정식.
 전남 나주가 고향인 이씨가 서울 중구 만리동에 자리를 잡은 건 68년. 종이 장사를 하다 동대문으로 옮겨와 튀김집을 연 게 70년 무렵이었다.

 “오징어도 튀기고 야채 고로케 하고 통닭도 팔았어. 점심·저녁으로 주야장천(晝夜長天) 튀김만 먹을 순 없으니 시장에서 고등어를 사다가 구워 먹었어. 튀김 먹으러 온 단골들한테 맛보라고 조금 나눠줬는데 담백하고 맛이 좋다고 해서 업종을 바꾸게 됐지.”

 가스는 물론 전기도 드문 시절이었다. 무연탄에 코크스와 목탄을 섞은 연탄이 유일한 취사 연료였다. 생각지도 못한 생선구이가 사람들을 사로잡자 한 달 동안 굽는 방법과 소금간 치는 법을 연습했다. 그러곤 호남집이란 간판을 단 생선구이집을 열었다.

 생선 굽는 법은 어머니에게 배웠단다. “연탄으로 굽는 방식은 고향에서 해먹었던 그거 그대로야. 어렸을 적엔 숯불에다가 생선을 구워 먹었는데 숯이 비싸고 귀해져서 연탄불에 구워 먹었지. 프라이팬이나 가스에 생선을 구우면 생선이 기름을 먹어서 담백하지가 않고 느끼해.”

 호남집 단골은 학원생들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맞은편엔 대형 입시학원이 있었다.


 “점심 때면 학생들이 좁은 가게에 가득했는데 힘내라고 생선도 좋은 걸로만 냈고, 밥하고 반찬도 넉넉히 줬어. 학생들이 커서 대학도 가고 직장인이 돼서 반갑다고 다시 찾아와. 40년 전 맛 그대로라고. 아들하고 딸 데리고 와서 같이 먹는 걸 보면 ‘세월이 흐르는구나’ 싶어. 덕분에 장사도 잘됐고.”

 가게 밖 생선 굽는 자리는 지금도 이씨가 지킨다. 개업부터 사용하던 40년 된 찌그러진 화로구이통을 이씨는 ‘파트너’라 불렀다. 익숙하고 편하다는 뜻에서다. 그는 “이 연탄통이 아니면 본맛이 안 날 것 같기도 하고, 낡았지만 이 녀석이 나랑 같이해온 세월이 얼만데”라며 살며시 만졌다.

1974년 개업부터 사용한 연탄 화로구이통 위에서 소금으로 밑간을 한 고등어가 자글자글 익어간다. [김상선 기자]
 이씨만의 생선 굽는 법을 물었다. 은은하게 굽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센 불에 구우면 껍질이 타고 속이 부드럽지 못하다. 은은한 불로 3~5번 정도 뒤집어주면 부드럽게 속살까지 잘 익는다. 생선이 으스러지지 않게 집게로 넓게 집고 한 번에 딱 뒤집는 것도 중요하다. 소금간은 적게 하는 편이다. “생선 본연의 고소한 맛을 느껴야지 짠맛으로 밥이랑 먹으면 맛이 덜하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호남집에서 시작한 생선구이가게는 그동안 14곳으로 늘어 동대문 생선구이골목이란 이름이 붙었다.

 “우리 집밖에 없을 때가 장사가 제일 잘됐지. 이웃에 생산구이가게가 들어섰다고 경쟁 의식을 갖진 않아. 이웃 덕분에 여기가 생선구이골목으로 특화된 것도 자랑스럽고 좋아.”

 이씨는 의류 쇼핑 1번지 동대문의 성장과 관광지로 변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가게를 열었을 때 종합원단시장이 막 지어지고 있었는데 처음엔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가게에 가득 찼다가 다음엔 원단 상인들이 몰려와 우리는 점심도 못 먹고 일할 때가 많았다니까. 몸을 쓰는 상인들이라 생선보다는 고기를 좋아했는데 건강에 관심이 생기면서 생선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늘었고. 지금은 단골 상인들도 많지만 일본이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어. 동대문도 바뀌고 있는 거지.”

 동대문 생선구이골목은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호남집엔 중국말을 하는 종업원도 뒀다. 중국 관광객 자오훙비(趙弘璧·21)는 “인터넷을 통해 생선구이골목을 알고 찾아왔다”며 “생선 굽는 방식이 중국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생선을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들이 몰려 있으니 특색이 있다. 겉이 하나도 타지 않고 살이 부드럽고 통통해 맛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중국인은 조기, 일본인은 삼치를 주로 찾지. 서양 사람은 바짝 익힌 생선을 좋아해”라고 말했다.

 이씨는 가게를 딸에게 물려줄 채비를 하고 있다. “인생 절반을 가게에서 일하며 생선을 구워 세월이 멈춰 있는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시장 가느라 매일 새벽 4시에 나와서 택시만 타고 다녀 버스비가 얼만지 3년 전에 알았다니까. 애들 손 잡고 와서 ‘자기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데 젊었던 친구들도 세월이 지나면 얼굴이 변해서 못 알아보겠더라고. 일요일에 가끔 쉬는데 내가 구운 게 아니면 생선 맛이 안 난다고 보채는 손님도 있어. 생선 굽는 것만으로도 내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살아 있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 한 번씩 인생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단골 손님이 찾아주니 그게 즐겁고 다시 또 굽고 그러는 거지.”

 ◆어떻게 둘러보나=동대문 생선구이골목은 서울시가 선정한 미래유산 중 하나다. 광장시장과 동대문 패션타운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어 관광객이 몰린다. 생선구이골목에서 점심을 먹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또 다른 미래유산 경동교회(김수근 설계)를 둘러보는 하루 관광 코스를 추천한다.

글=강기헌 기자·이은정 인턴기자(단국대 중어중문)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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