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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사고를 없애면 일반고가 살아난다고?

김흥주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서울시교육감이 결국 6개 자사고를 지정 취소했고, 이에 맞서 교육부는 재평가의 위법 부당성을 이유로 시정명령을 내렸으며, 학교 측은 법적 투쟁을 선언했다. 지정된 기일까지 시정되지 않자 교육부 장관은 직권으로 그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에 서울시교육감은 계속 대법원에 소(訴)를 제기할 것으로 예측돼 상호간 법적 공방으로 교육계의 혼란과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로 인해 일반고가 침체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미 후보자 시절부터 그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자사고가 입시 위주 교육에 몰두해 당초 설립 취지를 잃고 있으며, 우수 학생이 자사고에 몰려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만 일반고에 수용됨으로써 교육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당한 주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반고 학생 중에는 자사고 학생보다 더 좋은 성적을 갖고 있는 학생도 많다. 또 자사고보다 더 우수한 학생이 모이는 외국어고(31개교), 과학고(26개교), 국제고(7개교) 등 특목고가 있고 그 숫자도 자사고(49개교)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1520개의 일반고가 자사고 때문에 침체되고 있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일반고의 실제 침체 원인은 학교 교육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많은 일반고가 학생의 교육과 진학지도에 열의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성적 향상에 대한 관심과 전략이 약하다. 학생·학부모에 대한 교육 서비스 수준도 낮고, 교육시설 및 설비도 낙후돼 있다. 일반고 학생의 진학지도와 정보 제공은 대부분 사설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일반고는 교육 서비스를 풍부히 제공할 인적·물리적·재정적 여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일반고를 살리려면 재정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우수 교원을 집중 배치하고 학생지도와 진학지도에 교육적 열의를 다해야 한다. 학생 개인별로 맞춤형 진학지도를 제공하고,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개설해야 하며, 개별 학생의 성적 향상과 진로지도 관리를 전략적으로 실천할 만한 교육 여건을 충분히 갖추어야 비로소 일반고는 좋은 학교로 인식될 수 있다. 자사고를 없앤다고 곧바로 일반고가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

 자사고 교원들은 재직하던 일반고가 자사고로 전환된 뒤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전보다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지도하며, 더 많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단도 더 많이 투자해야 하고 학교도 더 자주 학부모를 상대해야 한다. 일반고도 자사고처럼 더 투자하고 더 잘 가르치고 더 잘 지도하려는 열의를 다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침체될지도 모른다.

 자사고는 고교평준화 정책하에서 나타나는 사학의 자율성 저하, 고교 단계의 획일적 운영,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미흡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오랜 연구와 논의 끝에 시작된 학교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교평준화 정책의 골격을 유지해 고교교육의 보편성과 평등성을 확보하는 것이 옳지만 평준화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고교교육의 다양성 및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확대도 어느 정도 인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사립고등학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사립고의 비중이 약 10% 내외로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체 사립고 모두에 자율권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사립고교 중 7%에 불과한 자사고에 학교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조차 배척하려는 자세는 전체 고교체제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자사고는 지정 당시 약속한 것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5년마다 주기적으로 평가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언제든지 정당하게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법제화돼 있다. 이미 평가가 끝나 모두 재지정받게 돼 있던 자사고들을 교육감이 새로 취임하자 재평가를 시도해 없앤다면 결국 그 평가는 교육감 개인의 자사고 지정 취소를 위한 의도된 재평가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감은 자사고들이 당초 설립 취지에 맞게 올바로 운영되도록 지도하고 관리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폐지를 우선하면 자신의 책무를 왜곡하게 된다.

 일반고를 살리려면 자사고를 없앨 것이 아니라 먼저 일반고의 교육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사고를 굳이 선택하지 않고 자녀들이 일반고에 들어가도 충분하다고 믿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자사고와 일반고가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교육청의 집중된 교육투자 확대로 일반고가 좋은 학교로 인식되면 자사고는 자연히 축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제대로 학생들을 키워보자는 순수 교육적 열정을 가진 건전한 자사고만 남게 될 것이다.

김흥주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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