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시조 들은 미국인 기립박수 … 세계유산 안 될 이유 없어

선(禪) 수행과 시조 쓰기를 함께해온 설악산 신흥사의 오현 큰스님. “시조는 우리 민족의 삼박자 생활 리듬이 배어 있는 문학장르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쓰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큰절의 최고 어른) 무산(霧山·82) 스님은 시조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현(五鉉) 스님’으로 통한다. 대한불교조계종의 큰스님으로서 공식 법명은 무산이지만 직접 시조를 짓거나 시조집을 낼 때는 ‘무산 오현’ 혹은 ‘조오현’이라고 스스로를 밝혀서다. 오현은 스님의 출가 전 이름, 그러니까 속명(俗名)이다.

 사실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세간(世間)에 전하는 방편으로 시와 문장을 가까이 하는 전통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의 선시(禪詩)의 전통이 그러하고, 만해 한용운(1879∼1944)이나 법정(1932∼2010) 스님도 그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오현 스님은 2012년 문학전집 『적멸을 위하여』(문학사상)에 실은 시조 ‘나의 삶’에서 ‘내 평생 찾아다닌/것은/선(禪)의 바닥줄/시의 바닥줄이었다’고 담담하게 회고한 바 있다.

 1978년 첫 시조집 『심우도』(한국문학사)의 ‘자서(自序)’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비구나 시인으로는 경허(鏡虛·1846∼1912)를 만날 수 없었다. 동대문 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라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 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곳은 내가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떠나는 길목이자 결별의 순간인 것이다.”

 요컨대 구한말 거침 없는 선사(禪師)였던 경허의 경지에 이르는 데 선 수행과 시조는 둘이 아닌 하나의 출발점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굳이 시조여야 하는 걸까. 지난 18일 어렵사리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후원하는 월간 시 전문지 ‘유심’의 서울 압구정로 사무실에서다. 스님은 “사사롭게 나를 띄우는 인터뷰라면 사양하겠다”고 사전에 못을 단단히 박았다. ‘시조 진흥’에 관해서라면 얘기해볼만 하다는 것이었다.

 - 시조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왔습니다.

 “시조 이론이 궁금하면 성대 김학성 교수, 어떻게 쓰는지는 윤금초나 이근배 시인에게 들어보면 될텐데….”

 - 요즘 시절에 왜 시조가 필요하다고 보나요.

 “도리깨질을 아는지. 농부들이 도리깨질을 세 박자로 한다. 다듬이질도 세 박자다. 우리 민족의 생활 리듬이 세 박자다. 민족의 삼박자, 그게 초·중·종장으로 이뤄진 시조 아니냐.”

 - 외국인에게 고리타분하게 비치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 잘 통한다. 내가 겪어 봐서 잘 안다.”

 이 대목에서 스님은 198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화를 들려줬다. 70년대 이미 신흥사 주지를 지낸 스님은 훌쩍 미국 여행을 떠났다. 경비가 떨어져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다고 한다. 격식이나 틀에 매이지 않는 ‘격외(格外) 선사’의 면모다. 한국에서 온 승려라는 사실이 알려져 한 성당으로부터 한국 불교를 소개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스님은 강연 도중 ‘동짓달 기나긴 밤’으로 시작하는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을 낭송해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외국 사람들이 흥미있어 하는 게 수백 년, 수천 년 묵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지 하늘 찌르는 고층 빌딩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현 스님은 “시조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거다. “중앙일보가 시조백일장 지면을 한 30년 운영하며 시조시인을 1000명쯤 배출해 한국 시조단을 살렸다”고 본지의 노력을 평가하며 유네스코 유산 지정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시조는 승속,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쓸 수 있다. 잘 쓸 필요 없다. 그저 글자 수나 맞춰 자신의 진솔한 얘기를 풀어내면 된다. 그렇게 대중적인 시조 쓰기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80년 미국 여행이 깨달음을 나누는 만행(萬行)이었냐고 묻자 스님은 “만행은 무슨, 그냥 재미지…”라고 답했다. 승려입네 하지 않는 모습, 대중과 함께 어울릴 방편을 찾는 스님의 일상은 ‘시조 법문’으로 꽃을 피우는 듯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