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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노령화 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요즘 눈에 띄는 TV 시청률이 있다. 평일 밤 10시의 황금시간대를 평정한 KBS1의 ‘가요무대’와 ‘생로병사의 비밀’이 그것이다. 지난 17일 가요무대는 15.1%의 시청률로 다른 채널을 압도했다. 엄청난 제작비의 동시간대 KBS2와 SBS의 간판 드라마보다 무려 세 배나 높다. ‘생로병사의 비밀’도 시청률이 10%에 육박해 월드스타와 소녀시대가 등장하는 수목드라마의 두 배에 가깝다. 이 두 프로그램의 공통분모는 ‘노령화’다. 노장층 시청자들이 TV시장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시사 퀴즈 하나를 풀어보자. 2년 전인 2012년 우리나라 100세 이상 인구는 2386명이었다. 언론들은 “술·담배 절제와 채식 선호, 규칙적 생활, 화목한 가족이 비결”이라며 장수만세 보도를 쏟아냈다. 그해 노인의 날(10월 2일)에 통계청은 이렇게 전망했다. “현재 90대 어르신 숫자를 감안하면 100세 이상 인구는 2030년에 1만 명을 넘고, 2040년에는 2만 명을 돌파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10월 말 현재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얼마나 될까. 주민등록에 따르면 정확히 1만4853명이다. 웬 2030년에 1만 명? 불과 2년 만에 (사망신고 기한 1개월을 감안해도) 1만 명을 넘어도 한참 넘었는데…. 통계청의 시뮬레이션조차 감당 못할 빛의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것이다.

 얼마 전 ‘싱글세’가 난도질당했다. 공무원 연금개혁도 진통 중이다. 하지만 인구 통계표를 본다면 너무 한심하고, 한가한 논쟁이다. 지난 50년간이 ‘압축 성장’의 시대였다면 앞으로의 화두는 ‘압축 노령화’다. 90세 이상인 17만 명은 별 문제도 아니다. 80대는 무려 110만 명이고, 70대는 314만 명이나 된다. 이에 비해 0~9세는 고작 459만 명이고, 10~19세는 600만 명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각각 800만 명이 넘는 40대와 50대의 베이붐 세대다. 이들이 은퇴하면 ‘고령화의 역습’이나 ‘세대 전쟁’이 눈앞의 현실이 된다. 어쩌면 해마다 연금을 수술하고, ‘싱글세’ 도입은 물론 ‘빨리 죽기 캠페인’까지 벌여야 할지 모른다.

 보편적 복지 진영은 65세 이상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을 ‘착한 적자’라 부른다. 잦은 나들이로 노인 건강이 좋아지고 자살률도 낮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의문이다. 이 제도가 도입된 1984년 65세 이상의 인구비중은 4%였으나 지금은 12.2%를 넘었다. 그동안 이 제도의 폐지는 21차례나 검토됐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2010년엔 국무총리가 혜택 축소를 입에 올렸다가 대한노인회에 몰매를 맞았다. 이 제도는 이제 성역이다. 노인층이 지지기반인 새누리당이 굳이 손댈 이유가 없고, 보편적 복지의 야당이 폐지에 앞장설 리도 없다. 하지만 공기업들의 자구노력과 함께 무임승차제도의 과감한 수술 없이는 지하철은 만년적자다.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으로 유명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맬서스의 처방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식량부족과 사회 붕괴를 막는 길은 두 가지뿐이라 했다. 하나는 ‘예방적 억제’다. 도덕과 절제를 통해 애를 덜 낳는 것이다. 하지만 맬서스조차 그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게 함정이다. 그는 오히려 전쟁과 굶주림 등 ‘적극적 억제’에 기울어져 있었다. “도시의 골목은 전염병이 창궐하게 더 좁게 만들어야 한다. 마을은 썩은 호수 옆에 세워야 한다. 의술(醫術)의 발전도 가로막아야 한다.”

 이미 한국은 고령화 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 할 판이다. 끔찍한 ‘역(逆)인구론’의 저주를 피하려면 냉철한 이성과 세대 간의 따뜻한 양보 외에는 해법이 안 보인다. 지금처럼 30년간 일하고 40년간 노인으로 지내는 건 지속불가능하다. 정부의 중장기전략위원회는 노인 기준을 일단 70세, 중장기적으로 75세로 끌어올리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도 거듭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땀과 눈물과 고통분담을 주문해야 할 정치권은 여전히 무상복지로 표를 낚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걱정이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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