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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가지 커피 로스팅 … 콕! 한 번만 누르세요

스트롱홀드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스마트 로스팅기계는 1㎏용량으로 커피 100잔 규모의 생두를 한 번에 볶을 수 있다. 생두가 초콜릿색 원두로 변해 나오는 시간은 최장 12분에 불과하다. 스트롱홀드의 우종욱 대표가 스마트 로스팅기계를 이용해 로스팅을 시연해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가마솥이 압력전기밥솥으로, 필름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변하듯, 세계 커피 산업도 그렇게 바뀔 겁니다.”

 서울의 서남쪽 끝, 구로구 고척동의 한 아파트상가 사무실에서 만난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 ‘스트롱홀드’의 우종욱(33) 대표는 커피 로스팅기계 분야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다. 창업 5년차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계 시장을 노린다. 커피 한 잔을 만들려면 우선 커피 생두를 볶고(로스팅:roasting) 빻아야 한다. 커피맛의 본질적 요소는 생두에 있지만,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은 ‘하늘땅’ 차이가 날수 있다. 로스팅은 섬세하고 숙련된 장인의 손길을 거쳐야하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 대표는 스마트 로스팅기계로 전문가의 영역인 로스팅을 일반인의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로스팅은 원래 원통처럼 생긴 기계에 원두를 넣고 가스불을 조절해 볶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나 불 조절을 잘못하면 생두가 타버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힘든 노동이기도 하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컴퓨터화했다. 전세계 커피 산지별로 최적화한 35가지의 로스팅 조리법(레서피)을 입력한 소형 컴퓨터를 달고, 가스가 아닌 전기로 열을 발생시켜 정밀하고 일정하게 콩을 볶을 수 있게 했다. 5만 개가 넘는다는 국내 커피전문점들이 모두 커피 로스팅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생두를 구입해 로스팅을 직접 하면 향이 뛰어나다. 생두는 향이 최장 2년까지 보존이 되지만, 원두(볶은콩) 상태에서는 2주면 향이 사라진다. 생두 값은 볶은 콩의 3분의1에 불과해 경제적이다.

 그는 “로스팅 레서피는 국내 유통되고 있는 생두를 샘플링하고 전문가들이 어떠한 식으로 볶는지를 조사해 평균치를 낸 것”이라며 “이후에도 계속 세계적 로스팅 전문가들과 협업해서 최적의 값을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이 스마트 로스팅기계로 2011년 독일 국제아이디어발명 신제품전시회(iENA)와 2012년 미국 피츠버그 국제발명전시회(INPEX)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두 전시회는 스위스제네바 국제발명품 전시회와 함께 세계 3대 발명전시회로 손꼽힌다. 올해 초에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한국 자회사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10억원을 투자받았다. 새로운 기기의 발명뿐 아니라, 상품가치도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마트 로스팅기계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로 돌아간다. 콩의 특성에 따라 최적의 값이 세팅돼 있어 버튼만 누르면 된다. [사진 스트롱홀드]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위현종 심사역은 “투자하기까지 2년간 스트롱홀드를 지켜봐 왔다”며 “제조업 기반의 정보기술(IT) 분야란 것과 새로운 시장을 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제조업을 융합한 기업이란 점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생산설비 확대를 위한 추가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롱홀드의 로스팅기계는 세 개의 원통이 나란히 붙은 모양이다. 왼쪽은 생두를 볶는 드럼이고, 오른쪽은 7인치 액정(LCD)모니터가 달린 소형컴퓨터가 들어 있다. 모니터 홈 화면 위쪽을 보니‘매뉴얼’ ‘스마트 로스팅’ ‘프로파일’과 같은 메뉴가 달려있다. 스마트로스팅은 전기압력밥솥으로 따지면, 현미·백미·오곡밥 등 미리 세팅된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코너다. 35가지 원산지 메뉴 중 ‘콜롬비아 수프리모’를 누르니 남아메리카 지도에 콜롬비아가 표시되고, ‘크랙1 169’ ‘크랙2 183’이란 숫자가 나타난다. 생두를 볶을 때 나타나는 균열과정과 온도를 뜻한다. 그 위에는 ‘라이트-시나몬-미디엄-하이-시티-풀시티-프렌치-풀시티’ 등 콩을 볶는 강도에 따라 7가지 사양을 선택할 수 있는 조그만 창이 뜬다. 일반적인 로스팅이 ‘시티’라면, 라이트는 맑게, 풀시티는 진하게 커피를 볶아준다. 앞쪽에 키낮은 드럼은 볶은 콩을 식히는 공간이다.

 ‘매뉴얼’은 자동 기능에 만족하지 않는 전문가를 위한 메뉴다. 단계별로 온도와 시간을 수동으로 설정할 수 있게 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따지자면, 조리개와 셔트 스피드 등을 조절할 수 있는‘M’에 해당한다. ‘프로파일’은 특정 전문가의 조리법을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한 메뉴다. 이 같은 전 과정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로 만들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주변기기와 손쉽게 연결할 수 있게 했다. 스트롱홀드는 스마트 로스팅기계 제조업체로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로스팅 비법을 스트롱홀드의 서버를 통해 공유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우 대표는 ‘창조경제’를 내세우는 박근혜 정부가 탐낼 만한 청년창업 모델이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아닌 창업으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고, 게임애플리케이션이 주류를 이루는 국내 스타트업계에서 제조업 기반의 IT융합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그렇다고 그가 컴퓨터를 전공하거나 처음부터 커피 전문가였던 것도 아니다. 그는 고려대 사회학과 학부를 졸업한 문과생이었다. 겉모습은 ‘참한 모범생’ 이미지이지만, 대학생활은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다. 2000년 대학을 입학했지만 졸업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전투경찰로 군복무하느라 2년을 보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와 별도로 3년을 더 휴학했다. 인도와 필리핀 등지에서 비정부기구(NGO) 멤버로 활동하며 학교도 짓고, 현지 학생도 가르쳤다.

 창업의 동기도 남다르다. 평생 꿈인 NGO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월급쟁이’보다 창업을 선택했다. 커피 로스팅은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다 얻은 결론이다. 국내에서 커피산업이 급성장하는 것을 보고, 그 중 블루오션으로 남아있던 ‘로스팅’을 자동화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2010년 5월 평소 발명과 개발에 소질이 뛰어났던 친구와 비슷한 또래의 프로그래머, 커피로스터 개발자, 전기배선 전문가, 판금 용접 전문가 등 4명을 아이디어 하나로 설득해 창업에 나섰다. 자본금 800만원으로 용산의 66㎡(약 20평) 남짓하는 월세 60만원짜리 상가에서 개발을 시작했다. 원하는 수준의 기계가 나오기까지는 3년여가 걸렸다. 5명이 청년들이 밥 먹듯 밤을 새고 한 달에 한 두 번 집에 들어가며 작업한 결과였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제품 덕에 판로개척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대당 1000만원짜리 기계를 지난해 50대, 올해는 최근까지 200대를 팔았다. 회사 겸 공장도 보다 싼 임대료에 넓은 공간을 찾아 용산에서 고척동으로 옮겼다. 이제는 연간 600대까지 생산규모를 갖췄다.

 우 대표는 “13억 인구의 중국 커피시장이 매년 15%씩 급성장하고 있다”며 “스마트 로스팅기계 뿐 아니라 커피 농장에서부터 원두에 대한 정보와 로스팅 비법 등 커피와 관련한 모든 것의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글=최준호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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