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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략] 민주국가를 독재국가보다 강하게 하는 건 ‘청중비용’

2010년 11월 23일 오후 북한의 포탄이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남측 영토인 연평도에 떨어진 직후의 모습. [중앙포토]
독재국가와 민주국가가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까. 또 독재자와 민주국가 지도자 가운데 누구의 위협이 더 통할까. 사람들은 독재자의 호전적 위협이 더 통하고 독재국가가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정반대다. 역사 통계에 따르면 민주국가의 승률이 독재국가보다 훨씬 높았다. 또 전쟁 일보 직전의 위기상황에서도 민주국가보다 독재국가가 더 자주 굴복했다.

⑤ 위기를 넘는 힘

꼭 31년 전인 1983년 11월 23일 소련을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이 서독에 배치됐다. 물론 소련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를 철회시키지 못했다. 62년에는 소련이 미국 바로 앞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했으나 미국의 강력한 반발로 성공하지 못했다. 냉전시대 미·소 간 대치상황에서 미국의 승리는 종종 국가 지도자가 대외 경고를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을 때 국내 정치에서 부담해야 할, 이른바 ‘청중비용(audience cost)’으로 설명된다. 청중비용을 피하려는 민주국가 지도자는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공개적인 경고를 실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국이 그 경고를 받아들인다. 이에 비해 독재자에게는 청중비용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11월 23일 저녁에 비상 소집된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벙커에서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매뉴얼대로’ 작동하면 북도 달라질 것
4년 전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도 쿠바 미사일 사건과 종종 비교된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0분쯤, 연평도 주민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의 포탄 세례를 받았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래 처음으로 북한이 남측 영토, 그것도 민간인을 향해 포탄을 퍼부은 사건이다. 연평도 포격 8개월 전에는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이른바 5·24조치 담화문을 통해 이명박(MB)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MB는 천안함 사건 직후 백령도를 방문한 데 이어 10월엔 연평도를 방문해 서해 영토·영해의 수호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11월 남측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해상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한다고 북측에 통보했다. 22일과 23일 아침, NLL을 인정치 않는 북측은 자국 영해에 남측 사격이 이뤄질 경우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가하겠다는 통지문을 남측에 발송했다. 남측으로서는 연례적인 호국훈련이라 예정대로 오전 10시 조금 넘어서부터 약 4시간에 걸쳐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남측 사격훈련이 끝난 직후인 오후 2시30분쯤부터 약 1시간에 걸쳐 북측은 연평도 군부대와 민가에 무차별 포격을 실시했다. 북측의 포격이 시작된 10~20분 후 남측의 대응 포격이 있었다.

<그림>은 A국과 B국 간의 간단한 위기대응 게임이다. 제1단계에서 A가 상대국 도발 시 강하게 응징하겠다고 천명할지 말지를 선택한다. 그런 경고가 없다면 상황은 A와 B 간의 대세에 따라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만일 A가 B에게 경고했고 제2단계에서 B가 이를 수용해 도발하지 않는다면 A의 승리다. 만일 A의 바람과 달리 B가 도발한다면 공은 다시 A에게 간다. 이 제3단계에서 응징이냐 아니냐는 두 가지 선택지가 A에게 주어진다. 응징하면 전쟁이고, 응징하지 않으면 B의 승리다. 제2단계에서 B가 도발할지 말지는 제3단계에서 A가 어떻게 할지에 대한 B의 추정에 달려 있다. A가 감히 전쟁까지는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B가 판단한다면 B는 도발을 선택하게 된다.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쌍방은 상대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북측은 MB의 5월 경고를 무시했고, 남측도 포격 사건 전날과 당일의 북측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격 사건 직후 열린 청와대 벙커 회의에서 MB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고 합참의장에게 지시했다. 오후 3시30분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확전 방지를 지시했다”고 언론에 알렸다. 이후 청와대는 언론에 배포한 대통령 지시 문구를 수차례 바꾸다 저녁 6시엔 청와대 홍보수석이 ‘확전 자제’라는 표현은 전혀 없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포격 직후 남측은 항공기 출격 여부, 그리고 출격 항공기의 공대지미사일 장착 여부와 관련해 오랜 시간 우왕좌왕했고, 또 교전규칙의 국제법적 해석을 두고 한미연합사와 수차례 전화하는 등 오랜 시간 설왕설래했다. <그림>에서 좌(응징)로 갈지 우(응징하지 않음)로 갈지 묻고 고민한다는 것은 우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전쟁은 남측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이런 남측의 전개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연평도 포격을 감행한 것이라면 전략적으론 옳은 선택이다.

‘도발 응징’ 약속 못 지키면 리더는 치명상
만일 <그림>의 제3단계에서 A가 좌로 갈지 우로 갈지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자동으로 좌(응징)로 가는 시스템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B는 도발 감행을 주저하게 된다. 남측이 정치적 고려 없이 매뉴얼대로 즉각적이고 심각한 대북 공격에 나설 것으로 북측이 예상했다면 북측은 아예 도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북한, 특히 북한 정권에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자동적으로 에스컬레이트 되는 사안에서 북한이 도발한 적은 없다. 연평도 포격 사건, 판문점 도끼 사건 등은 모두 즉시 가동될 남측의 응징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북한이 일으킨 사건이다. 역설적이게도 자동적으로 에스컬레이트 되는 응징시스템이 도발을 억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지지에 의존하는 민주국가 지도자는 자신이 천명한 대외 경고를 실천하지 못하면 정치 생명이 거의 끝난다. 따라서 외부를 응징하겠다고 천명했으면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MB가 연평도 포격을 받고 강력 대응하지 못했을 때 대통령 지지도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포격 사건 1개월 후 한국군은 연평도 앞바다에서 사격훈련을 다시 실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의 주권을 쏘았다”고 보도했다. 연평도 포격 당시 북한이 발끈했던 K-9 자주포는 딱 1발만 쏜 것이어서 동일한 강도의 훈련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굴복하지는 않았다는 대내적인 모양새는 갖췄다. 12월 사격훈련에 대해 북한 조선중앙TV는 남측이 북한군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격훈련 장소와 타격 지점을 변경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혁명 무력은 앞에서 얻어맞고 뒤에서 분풀이하는 식의 비열한 군사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독재자의 청중비용이 작다는 맥락에서 보면 북한 정권은 자신의 대남 경고를 꼭 실천해야 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12월 사격훈련에 대해 응징하지 않았다.

배후에 있는 국민을 이용하는 전략은 민주 정부만이 구사할 수 있다. 예컨대 정부 간 합의가 최종적으로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발효되는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협상에서 상대국의 양보를 얻기가 더 쉽다. 독재자보다 민주 지도자가 국민을 핑계로 상대를 더 잘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가격 흥정에서도 대리인을 내세우는 측이 유리할 때가 많다. 주인이 아닌, 대리인에 불과한 자판기에서 가격을 깎은 소비자는 별로 없다. 오히려 자판기가 돈을 먹고 상품을 내놓지 않아 자판기를 흔들다 깔려 죽은 사람이 훨씬 많다. 실제 미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위기상황은 보통 치킨게임으로 설명된다. 쌍방이 서로 마주보고 자동차를 몰았을 때 피한 측은 치킨(겁쟁이)이 되고, 피하지 않은 측은 영웅이 되는 게임이다. 상대의 양보를 강요하기 위해 상대가 보는 앞에서 자기 차의 핸들을 부숴버리고 자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임을 강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상대는 자기 차 핸들뿐 아니라 자기 차 브레이크까지 부수며 더 강경한 모습을 보여줘 이기려 할 수도 있다. 미친 개에 물리지 않으려면 미친 개와 싸우지 않고 피해야 하는데, 이를 이용해 실제 미치지 않았지만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해 상대로 하여금 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치킨게임에서는 선택을 바꿀 여지가 있는 자가 패배하고, 자신의 선택이 바뀔 수 없음을 상대에게 인지시키는 배짱 센 자가 승리한다. 그 배짱은 잃을 게 없어 ‘배 째라’는 식의 불리한 처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한쪽이 작은 것에 목숨 걸고 싸우면 다른 큰 것을 갖고 있는 다른 한쪽은 양보하게 된다.

상대방 심리 못 읽은 ‘배수진’은 자충수
벼랑 끝 전략(brinkmanship), 배수진(背水陣), 필사즉생(必死則生). 이런 전략을 잘못 쓰면 벼랑 끝에 떨어지거나 물에 빠지거나 아니면 죽을 수도 있다. 자충수(自充手), 즉 바둑에서도 자기가 놓은 돌이 오히려 자기의 수를 줄여 결국 패하게 될 때도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군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웠으나 참혹한 패배를 겪었다. 배수진에서는 비기는 것이 없다. 이기지 않으면 참패인 것이다.

치킨게임에서 나의 강경한 의지를 반대편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치킨 상황에서는 자신의 강경함을 상대가 믿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상대가 그렇게 믿지 않음에도 강경하게 밀어붙이면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가 발생한다. 상대의 강경한 모습은 ‘쇼’이고 상대가 궁극적으론 양보할 것이라고 쌍방이 확신하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상대를 압박해 상황을 주도하든지, 상대에게 밀려 양보하든지, 계속 밀리는 판을 뒤집거나 계속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몇 차례의 파국을 감수하든지, 이 가운데 어떤 전략이 나을지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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