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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일 통일 방식만 쳐다보지 말라

한국 사람들은 종종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분단된 나라가 한국과 독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도 쪼개졌다. 물론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단은 굉장히 짧았다. 미군과 소련군은 1945년 12월 각각 서부와 동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철수했다. 오스트리아는 훨씬 더 길었다. 독일처럼 오스트리아도 4개 연합군 점령 지역으로 나뉘었고, 수도 빈도 베를린처럼 4개 지역으로 쪼개졌다. 55년에 이르러서야 영세중립을 선언하는 조건으로 통일된 상태에서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가 통일과 독립을 얻을 확률은 한국보다 낮았다고 할 수 있다.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의 대립은 아시아보다 유럽에서 더 치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정치인들은 좌우를 떠나 통일을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앞세웠고 그 결과 연합군과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통일을 이뤄냈다.

한국도 그렇게 됐으면 좋았을 것이다. 해방 이후 48년 남북한 국가 수립까지 3년 동안 한반도의 통일을 논의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도 통일 논의가 벌어지고 있던 바로 그 기간, 한반도에서의 논의는 실패로 돌아갔다.

독일이 통일된 90년 남·북 예멘도 통일했다. 남북한이 한국전쟁에서 서로 싸운 것처럼 남·북 예멘도 72년과 79년 두 차례 동족끼리 전쟁을 벌였다. 남북한 회담처럼 결렬됐다 재개되기를 반복한 협상을 거쳐 예멘은 자본주의 북예멘이 대통령을, 공산주의 남예멘이 총리를 하는 조건으로 통일했다. 하지만 남예멘이 북예멘보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문제에 봉착했다. 남예멘은 94년 다시 독립하려고 했고 작은 전쟁도 치렀다.

성공한 통일 사례도 있지만 예멘처럼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일부 한국 사람은 한국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랍인들과 소말리인들도 여러 나라에 걸쳐 살고 있고, 쿠르드족도 독립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채 세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중앙아메리카의 사례도 강조하고 싶다.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 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니카라과·코스타리카는 하나의 국가였다. 하지만 1838년 내전 때 각각의 나라로 갈라졌고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 중미 국가들은 시간상으로 한국보다 2.5배는 더 길게 분단돼 있는 셈이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는 한국 사람들은 들어본 적이 없을 중앙아메리카통합체제(SICA)이라는 기구의 사무국이 있다. 이 기구는 중미 국가들이 완전한 통일의 전 단계로 합의한 사안들을 집행하는 업무를 한다. 중미 의회, 통합 대법원, 각종 경제기관 등이 그 합의 사안이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은 여권(旅券)도 같다.

영국의 통일 경험도 공유하고자 한다. 1707년까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엄연히 다른 나라였다. 하지만 그해 스코틀랜드는 혹독한 경제 상황에 직면했고 많은 국회의원이 재앙적인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을 잃었다. 이것을 기회로 본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 의원(귀족의 경우)들에게 오늘날 25만 달러(평민 의원에겐 절반)에 상응하는 뇌물을 제공하고 국회를 해산할 것을 종용했다. 많은 스코틀랜드 의원은 국회 해산에 찬성표를 던진 뒤 국민의 폭동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했다. 시작은 이렇듯 해괴했지만 두 나라는 현재까지 통일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국민투표도 잘 넘겼다.

한국은 이런 다양한 사례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 독일 방식 이외에도 다양한 통일을 향한 길이 있다. 독일의 사례는 한국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둘째, 통일 시도는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오래 협상을 해도 매우 어렵고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다. 셋째, 통일이 성공적이어도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넷째, 중앙아메리카의 사례에서 보듯 통일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통합 방식도 있다. 예를 들어 남북한이 개별 국가로 존속하면서도 둘 사이의 군사적 갈등 가능성이 없어지고, 자유롭게 서로 왕래할 수 있으며,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상태가 그것이다. 이 통합 방식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나는 모른다. 내가 제시한 사례들 중 어떤 것이 한반도 통일에 가장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반도 전문가들이 최대한 많은 사례들을 들여다보길 간절히 희망한다. 통일 논의에 창조적인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존 에버라드 전 영국 외교관. 벨라루스ㆍ우루과이 대사 거쳐 2006~2008년 주 북한 영국 대사 역임. 전 스탠퍼드대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센터 팬택 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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